기획·칼럼

박쥐를 자살 폭격기로 사용한다?

[밀리터리 과학상식] 미군의 황당한 생물 병기 아이디어

멕시코 큰귀 박쥐 ⒸWikipedia

황당하기까지 한 첨단 과학 병기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것들이 가장 유명하지만, 다른 나라 역시 만만치 않았다. 승전국 미국 역시 여러 가지 황당한 첨단 병기를 개발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박쥐 폭탄이다.

박쥐 폭탄의 개념은 다음과 같았다. 본체로 내부에 1000여개의 작은방이 있는 용기를 사용한다. 이 작은방에는 시한장치가 달린 소이탄을 매단 박쥐가 동면 상태로 한 마리씩 들어 있다. 이 용기를 일몰 이후에 항공기에서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하면, 떨어지면서 용기가 자동적으로 열려 박쥐들을 배출한다. 동면에서 깨어난 박쥐는 날아서 반경 32~64km 이내의 일본 가옥 처마 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시한장치가 작동해 소이탄이 격발되면, 대부분이 목조 건물인 일본 가옥들은 활활 불타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박쥐 폭탄을 제안한 사람은, 당시 영부인 엘레노어 루스벨트 여사의 친구인 치과 의사 리틀 S. 애덤스였다. 그는 박쥐들이 낮에는 동굴이나 건물 처마 밑 등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 아이디어를 냈고, 진주만 공습 직후인 1942년 1월에 이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루스벨트는 이 아이디어를 승인했다. 어찌 되었건 일본을 폭격하게 하기 위해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나은 아이디어로 여겨졌던 것이다. 후일 미국이 독일을 상대로 만 2년 이상 전략 폭격을 벌이면서 수천 대의 항공기와 수만 명의 승무원을 잃은 것을 감안한다면 나름 타당한 선택이었다.

이 박쥐 폭탄의 연구 개발 임무는 육군 항공군에 돌아갔다. 애덤스 의사는 그곳에서 인력들을 모아 박쥐 폭탄의 연구를 진행했다. 이 임무에 동원될 박쥐로는 멕시코 큰 귀 박쥐가 제일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체중이 14g 정도인 이 박쥐는 최대 18g까지의 짐을 지고 날 수 있었으므로, 박쥐가 매달 폭탄의 무게도 그 이하로 해야 했다. 폭탄은 셀룰로오스제 용기에 담겨, 접착제로 박쥐의 배에 붙이게 되었다. 폭탄으로는 당대의 최신 병기인 네이팜탄이 선택되었다. 이 박쥐들을 실을 용기의 크기는 길이 5m, 직경 76cm로 정해졌다. 이 용기는 1200m 고도에서 낙하산을 전개하고, 측면의 뚜껑이 열려 박쥐들을 배출한다.

박쥐 폭탄의 투하용기. 이 속에 동면 상태의 박쥐 1000마리가 소이탄을 안고 들어간다. ⒸWikipedia

박쥐 폭탄 실험 중 사고로 불타는 칼스바드 육군 항공 기지. ⒸWikipedia

느린 연구 속도로 인해 프로젝트 중단

그러나 1943년 5월 15일, 실험 도중 이 박쥐들이 뉴멕시코 주 칼스바드에 위치한 육군 보조 항공 기지를 불태워 버리는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 건 때문에 육군은 같은 해 8월 박쥐 폭탄 연구를 해군에 이관하고 만다. 해군 역시 같은 해 12월 이 프로젝트를 해병대에 이관하게 된다. 미 육군 화학전국의 유타 주 더그웨이 실험장에 세워진 모의 일본 도시를 표적으로 진행된 최종 실험에서는 의외로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당시 사용되었던 항공기용 소이탄보다 중량 대 파괴력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같은 중량의 소이탄보다 화재 발생 건수가 10~20배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박쥐 폭탄 프로젝트는 미 해군 원수 어니스트 J. 킹에 의해 취소되었다. 당시 금액으로 미화 200만 달러의 연구 예산이 투입된 이후였다. 많은 예산에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무산된 이유는 연구 개발 속도가 느려 1945년 중반까지 실용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이 그 해 11월 일본 본토 상륙전을 실행할 계획이었고, 박쥐 폭탄에 비해 원자 폭탄의 연구 개발이 더욱 빠르게 진척된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타당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구 총책임자 애덤스는 박쥐 폭탄이야말로 더 적은 미군과 일본군의 희생으로도 일본의 항복을 얻어낼 수 있는 대안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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