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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바이러스성 질병 치료제에 대한 궁금증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7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 환자들 중 완치자가 나와 퇴원한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확산일로에 있는 새로운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얻어낸 결실이다.

현재 20명이 넘는 환자들이 국가 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 신종 바이러스 질병을 무슨 약으로 치료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칼레트라, 타미플루, 인터페론 같은 약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렘데시버의 효과에 대해서도 검증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흔히 우리가 세균 감염에 쓰는 항생제(antibiotic)가 아닌 같은 ‘항바이러스 약물(antiviral)‘이기 때문이다.

원래 에이즈(AIDS) 치료제로 쓰였던 칼레트라(Kaletra)는 로피나비어(lopinavir)와 리토나비어(ritonavir)로 이루어진 복합제다. 타미플루(오셀타미비어, oseltamivir)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플루엔자(독감) 치료제이고, 인터페론 역시 항암제로도 쓰는 생체 면역 단백질이다. 렘데시버(Remdesivir)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르그부르크 바이러스 감염증 치료제로 쓴 약이다.

의사들은 어떻게 처음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이런 약들을 쓸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메르스(MERS) 사태(2015년)를 겪으며 쌓은 경험이 중요했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는 2003년의 사스(SARS)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사스, 메르스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이고, 메르스 사태 때 효과를 보았던 항바이러스 약물들을 제일 먼저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클로버. ⓒ 위키백과

20세기 말에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처방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 약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헤르페스 뇌염이나 대상포진 환자에게 쓰던 아시클로버 정도였다. 하지만 한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항바이러스 약물들이 등장했다. 심지어는 약도 없다고 했던 ‘독감(인플루엔자)’에 타미플루를 처방하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한국인을 괴롭히던 바이러스성 간염도 항바이러스 약물로 치료하고 있다.

현재까지 90개 정도의 약이 항바이러스 약물로 승인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90개의 바이러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9종의 바이러스에만 쓸 수 있는 약이 있다. 이 바이러스는 헤르페스바이러스(HSV), 제1형 인간 면역결핍바이러스(HIV-1), 거대세포바이러스(CMV), 인플루엔자바이러스, B형 간염바이러스(HBV), C형 간염바이러스(HCV),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다.

그러고 보니, 바이러스 질환 중 가장 흔한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에 대한 약은 없다.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약이 많이 부족하다.

세균을 공격하는 항균물질(antibacterial)은 1910년에 처음 나왔고, 194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우리가 항생제로 부르는 약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왔다. 미생물학이나 감염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항생제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구분할 정도다.

하지만 항바이러스 약물의 역사는 한참이나 뒤처졌다. 최초의 항바이러스 약물은 1961년에 등장한 이독수리디딘(idoxuridine)이다. 이 약은 1950년대에 항암제로 개발되었다가 헤르페스 눈병 치료제로 소속을 바꾸었다.

이후로 비다라빈(vidarabine, 1960년), 트리플루리딘(trifluridine, 1964년), 아만타딘(amantadine, 1964년), 리바비린(rivabirin, 1972년), 아시클로버(acyclovir, 1971년), 그리고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 아지도티미딘(AZT, 1985년), 발라시크로버(valaciclovir, 1987년), 팜시클로버(famciclovir, 1989년), 라미부딘(lamibudine, 3TC, 1989년) 등이 바이러스 공격수로 나섰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쓰는 로피나버(lopinavir, 1998년), 리토나버(ritonavir, 1996년), 오셀타미버(oseltamivir, 1997년) 모두 20세기 말에 발견된 약물이다. 항암제로도 쓰는 인터페론(interferon)은 1954년에 발견된 유서 깊은 약물이다. 현재 치료 효능을 시험 중인 렘데시버(remdesivir)는 2013~2016년 에볼라 유행 때 처음 쓴 항바이러스 약물이다.

대부분의 항바이러스 약물은 특정 바이러스, 특정 바이러스 중 특정 아형(subtype)이나 유전형(genotype)에 해당하는 바이러스에만 듣는다. 다시 말하면 보통 돼지고기는 안 먹고 제주도산 흑돼지만 고집하는, 입맛이 아주 까다로운 편식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일부 극소수 항바이러스 약물은 여러 바이러스에 두루두루 듣는다. 헤르페스와 대상 포진에 쓰는 아시클로버, 발라시크로버, 팜시클로버가 먹성이 그나마 좋은 편이다. 또한 에이즈치료제로 쓰는 라미부딘, 간염과 인플루엔자에 쓰는 리바비린도 먹성이 좋다. 그렇다 해도 몇 가지의 바이러스에만 효과가 한정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에 썼거나 효능 검증 중인 약들은 에이즈, 인플루엔자, 메르스, 에볼라 등에 썼던 약들이다. 물론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약들에게서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일종의 재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류의 대책이 항바이러스 약물 말고는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백신을 개발하면 좀 더 쉬운 방법으로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다. 간염, 자궁암, 대상포진, 수두, 인플루엔자, 폴리오(소아마비), 일본뇌염, 황열, 볼거리, 홍역, 풍진, 광견병 등은 예방 접종으로 병을 사전 차단하는 방법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더 많아질수록 더 많은 치료제와 접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다.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개인 건강과 면역력이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건강한 생활 습관과 자기 관리로 키워야 할 것이다.

한편, 항바이러스 약물의 이름은 왜 ‘-버’로 끝날까? ‘-vir’가 바로 ‘virus’를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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