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훼손하나?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2)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눈이 안 보여. 온통 세상이 우유 빛깔이야.”

언제나처럼 번잡한 어느 출근길 아침, 파란 불 신호등이 켜졌지만 선두에 선 차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아우성치는 뒤쪽의 운전자들을 제치고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는 눈앞이 하얗게 보이는 ‘백색 실명(白色失明)’ 전염병에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실명(失明)하는 병에 걸린 도시. 오로지 단 한 명의 여성이 눈을 뜨고 보고 있다. 약육강식에 의한 폭력과 성 거래, 힘없는 자들의 수모와 모멸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자들의 세상에서는 기존의 사회질서가 부정되고 모든 것이 새롭게 재창조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격리소에서 인간의 삶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사진은 2008년 개봉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눈먼 자들의 도시’. ⓒ ㈜CM엔터테인먼트

거장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노벨상 수상작 ‘눈먼 자들의 도시(도서출판 해냄)’는 인간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재난을 가정하고 인간의 본질과 존재가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모두에게 찾아온 백색 실명 바이러스, 격리되는 사람들

모든 사회가 패닉에 빠져드는 재난은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찾아온다. 눈먼 남자와 그를 차에서 끌어내 집으로 데려다주며 선의를 베푸는 남자와의 대화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19 (covid-19) 팬데믹(Pandemic) 사태에 놓인 현재의 상황과 다름없다.

“이건 재난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거요. 오늘 아침에 내가 집을 나설 때 이런 무시무시한 일이 생길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눈먼 남자의 차를 몰아 선의를 베풀던 남자는 선의를 베푸는 것처럼 그와 대화하고 눈먼 남자의 차량을 탈취해 도망간다. 하지만 그는 차와 함께 눈먼 남자의 백색 실명 바이러스까지 같이 훔친 셈이 됐다.

눈먼 남자의 차를 가지고 도망친 남자는 ‘그 불쌍한 작자가 장님이 되었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돼라는 법은 없잖아. 그게 뭐 감기처럼 옮는 것도 아니고. 동네나 한 바퀴 돌면 괜찮겠지’ 생각한 후 차에서 내려 서른 걸음도 못 가서 눈이 멀고 말았다.

도둑과 의사에 이어 눈먼 남자를 도와준 병원의 간호사와 전날 병원에 왔던 소년까지 눈먼 남자와 접촉한 이들은 차례로 장님이 된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를 믿지 못했다. 사람들은 실명이 ‘눈이 먼 사람의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을 본다고 해서 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실명은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눈 사이의 사적인 문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최초의 노벨 문학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 ⓒ ㈜CM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것은 전염병이었다. 병의 전염성이 확인되자 환자들은 수학에서 복비례라고 부르는 비율에 따라 증가했다.

콜레라나 황열병이 창궐하던 시절, 전염병을 싣고 있거나 싣고 있다고 의심되는 배들은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고 먼바다에 사십일 동안 그대로 있어야 했다.

이 장면은 마치 코로나19로 인해 크루즈선들이 바다 한가운데를 떠돌며 항구에 정박하지 못하던 때를 떠올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환자가 대거 확인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는 26일 현재 확진자 712명에 사망자가 13명에 이른다.

아직도 바다를 헤매고 있는 크루즈선이 여러 척 있다. 지난 9일 영국 일간 가디언이 선박 추적 사이트를 분석해 퍼시픽 프린세스, 퀸 메리, 아르카디아, 아스토르, 마그니피카, 콜럼버스 호 등 총 8대의 선박이 6000 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 운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인간

정부는 전염병 환자를 한 데 모아 외곽 지역에서 관리하기로 결정한다. 전염병이라고 판명되자 병의 원인이 확실하게 확인될 때까지 눈먼 자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격리시킨다는 말이었다.

눈먼 자들의 공포는 극심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불행의 시작일 뿐이었다. 눈먼 자들을 모아놓은 그곳은 ‘지옥’이 된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단 한 명의 여성만이 볼 수  있다. 처음 눈먼 남자를 진료해 감염된 의사의 아내이다. 의사의 아내는 남편을 돌보기 위해 실명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진료소에서 공동 격리 생활을 시작한다.

전염병으로 무정부 사회가 된 곳에서는 총과 무력이 곧 법이 된다. 사진은 눈먼 자들의 도시 원작소설을 각색해 2008년 개봉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 ⓒ ㈜CM엔터테인먼트

진료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원래가 비워놓은 정신병원이었던 그곳은 애초에 사람이 지낼만한 곳이 아니었다. 침대와 화장실은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 안 좋은 것은 바깥의 사정이었다.

음식은 배급되었고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환자가 외부로 나갈 것에 대비해 군인들은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정부는 눈먼 자들을 치료할 의지도, 여력도 없어 보였다. 눈먼 자들을 지키던 군인들은 겁에 질려 눈먼 자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했고 정신병원 내에는 시체들이 쌓여갔다. 이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든 배설을 했고 똥이 묻은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에서 오는 음식을 탈취하는 ‘권력’이 생기면서였다. 약육강식의 세계를 인지한 이들은 정부가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병원 내에서 자신들만의 권력구도를 만든다.

그들은 침대에서 빼낸 나무 막대기와 쇠막대, 그리고 총으로 무장을 하고 가진 귀중품과 돈으로 음식을 사라고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들은 성매매까지 강요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총을 앞세운 이들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아직까지 눈이 멀지 않은 의사 부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눈이 보이는 그는 슬기롭게 장님이 된 이들을 인도했다. 부인은 총을 가지고 부정한 행위를 강요한 두목을 가위로 살해하고 화재를 틈타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도시는 눈멀기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은행은 물론 상점, 식료품 가게 등 모든 곳이 약탈당하고 있었고 눈이 멀어 집에 가지 못하는 자들은 닥치는대로 타인의 상점이나 집에 들어가 무단 숙식을 하고 있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존재했다. 거리는 부패한 시체들과 오물들로 더 이상 날 수 없는 악취와 연기를 풍겼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야 할 가치와 존엄성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멈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바이러스는 그저 인간의 잔혹함을 끄집어내는 도구였을 뿐.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건 바로 ‘인간’이었다. 강간, 폭행, 약탈 등 인간 존엄성이 말살된 도시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어디까지 지킬 수 있을까.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상황에서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주제 사라마구는 소설 속 작가의 말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세요.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 두지 마세요.”

 

(688)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