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바다의 신의 이름을 딴 ‘해왕성’

이름들의 오디세이(66)

2019.11.26 09:28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1989년에 발사된 무인탐사선 보이저 2호에 만약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고독한 이 여행자는 지구를 떠난 지 4년 만에 토성을, 9년 만에 천왕성을, 11년 반 만에 해왕성을 만나게 됐을 것이다.

태양계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 울트라마린(ultramarine) 색으로 빛나는 이 거대한 가스 행성을 보았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지구의 바다가 생각났을 것이다. 우주의 공허한 무중력과는 다른,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물의 촉감을 그는 그리워하며 ‘바다의 왕(海王)’ 혹은 ‘바다의 신(Neptune)’이란 이름이 이 행성에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울트라마린 빛의 행성에 붙은 이름은 바다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보이저 2호가 보내온 해왕성 사진(1989년).  ⓒ 위키백과

보이저 2호가 보내온 해왕성 사진(1989년). ⓒ 위키백과

1800년대 초에 천왕성(우라누스, Uranus)을 관측하던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의 공전 궤도가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천문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천왕성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느리게 움직였는데, 이는 주변에 천왕성을 잡아당길 정도의 강력한 중력을 가진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1845년에 케임브리지 천문대의 청년 존 쿠치 애덤스(John Couch Adams)와 1846년 파리 천문대의 위르뱅 르 베리에(Urban Le Verrier)는 서로의 연구를 모른 채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애덤스의 발견은 애송이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왕립천문대의 고명한 천문학자들에게 무시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르 베리에가 먼저 이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새로운 행성의 발견 예상 위치까지 밝혔다.

르 베리에는 베를린의 천문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Johann Gottfried Galle)에게 그 위치에서 행성을 한번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편지로 보냈고, 갈레는 편지를 받은 그날 밤에 그 자리에서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

이렇게 1846년에 태양계 제8 행성이 발견된다. 하지만 갈레는 자신이 아닌 르 베리에에게 새 행성 발견의 업적을 양보했다.

르 베리비에와 갈레. ⓒ 위키백과

르 베리비에와 갈레. ⓒ 위키백과

일단 새 행성은 ‘천왕성 너머에 있는 행성(the planet exterior to Uranus)’ 혹은 ‘르 베리에 행성(Le Verrier’s planet)’으로 불렸다. 하지만 천문학의 발견과 그 명명을 두고 나라별 갈등이 첨예한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새로운 행성의 이름을 두고 갈등이 일었다.

18세기에 천왕성을 두고 발견자인 허셜(Frederick William Herschel)이 영국 왕 조지 3세의 이름을 따 ‘조지星’으로 부르자고 제안하자 주변 국가들의 반발에 부딪힌 적도 있었다. 그러니 프랑스 천문학자의 이름을 행성 이름으로 받아줄 리 만무했다.

특히 영국은 천왕성(Uranus)를 ‘허셜’로 바꾸는 조건으로 새 행성 이름을 르 베리에로 인정한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갈레는 두 얼굴의 신 ‘야누스(Janus)’를 제안했고 영국도 바다의 신 ‘오케아누스(Oceacus)’를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최종 명명권자인 르 베리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넵튠(Neptune)’으로 정했다.

이 이름은 이미 천왕성 작명 논란 때 스웨덴 천문학자가 제안했던 이름이기도 했다. 굳이 바다의 신의 이름으로 정한 이유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신들 중 행성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만해도 해왕성이 바다를 닮은 울트라마린의 빛깔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제우스/주피터는 목성에, 아폴론/아폴로는 해에, 아르테미스/디아나는 달에, 대지의 신 가이아는 지구에, 헤르메스/머큐리는 수성에, 아레스/마르스는 화성에, 사르투누스/새턴은 토성에, 우라노스는 천왕성에 이미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를 포함해 온 세상의 물을 다스리는 포세이돈/넵튠이 아직 행성 이름에 붙여지지 못한 것은 태양계 행성의 절대수가 부족해서였던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바다의 신은 그리스에서는 오케아누스(Oceanus)-포세이돈(Poseidon)으로 이어졌다. 로마에서는 넵투누스(Neptunus)였고 영어로는 넵튠으로 부른다. 바다의 신은 서양의 분수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넵튠은 바다뿐만 아니라 모든 물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넵튠이 누워있는 투리아 분수대(Turia fountain). ⓒ 박지욱

넵튠이 누워있는 투리아 분수대(Turia fountain). ⓒ 박지욱

해왕성은 14개의 위성을 거느린다. 이름은 모두 신화에서 오케아누스/포세이돈/넵튠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뿔고둥을 부는 트리톤(Triton)과 둔갑술의 귀재 프로테우스(Proteus)는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데스피나(Despina)는 포세이돈의 딸이고, 라리싸(Larissa)는 포세이돈의 연인이다.

네레이드(Nereid)는 바다의 님프, 나이아드(Naiad)는 물의 님프, 탈라사(Thalassa)는 바다의 여신, 히포캠프(Hippocamp)는 포세이돈의 마차를 끄는 해마(海馬)다. 할리메데(Halimede), 세이오(Sao), 라오메데이아(Laomedeia), 싸마데(Psamathe), 네소(Neso), 갈라테아(galatea)는 모두 네레이드(Nereid)의 이름이다. 네레이드는 쉰 명이나 되기 때문에 당분간 해왕성 위성의 이름은 고갈 사태를 겪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세이돈과 트리톤. 포세이돈은 히포캠프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고, 아들 트리톤은 해마의 고삐를 잡고 뿔고둥 나팔을 불고 있다.  ⓒ 박지욱

포세이돈과 트리톤. 포세이돈은 히포캠프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고, 아들 트리톤은 해마의 고삐를 잡고 뿔고둥 나팔을 불고 있다. ⓒ 박지욱

1940년까지 원소주기율표의 가장 마지막 원소는 우라늄이었다. 하지만 핵물리학이 발전하면서 1940년대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교(UC Berkeley) 교수들이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냈다.

이 신생 원소들은 주기율표의 93번과 94번에 놓이게 되었고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교수들은 천문/화학적으로 천왕성(Urnus)-우라늄(uranium, 92U)의 다음 자리에 어울린다고 해왕성(Neptune)-넵튜늄(neptunium, 93Np), 명왕성(Pluto)-플루토늄(plutonium, 94Pu)으로 정했다.

멘델레프의 주기율포(1871). 우라늄 이후로는 빈칸이다.  ⓒ 위키백과

멘델레프의 주기율포(1871). 우라늄 이후로는 빈칸이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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