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획·칼럼

‘미친 천재’와 함께 살아가려면

[심재율의 영화이야기] 스티브 잡스

영화 ‘스티브 잡스’(Steve Jobs 감독 대니 보일, 주연 마이클 패스벤더)는 큰 인기를 끌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수 십 명이 들어가는 아주 작은 스크린에서는 상영되는 영화이다. 그의 괴팍스런 성격을 이해하려면, 몇 개 안되는 스크린이지만 찾아가서 볼 만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다보면 스티브 잡스 같이 껄끄럽기 이를 데 없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인물을 만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때로는 회사의 보스이기도 하지만, 실험실 대장일수도 있고 연구소 원장이나 프로젝트 매니저일수도 있다. 아니면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1

요컨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당신의 목줄을 죄는 위치에 섰을 경우에 대비해서 (혹은 한 이불을 덮고 잘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살아가려면

왜냐하면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지나치게 열을 받거나 눈살을 찌푸리면, 당신만 손해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그런 면이 잘 못 됐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거나, 아니면 나이가 한참 들어 기운이 떨어질 때 쯤에야 겨우 철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이상한 정신상태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단어가 하나 있다.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라는 단어이다. 스타트랙이라는 괴상한 영화에서 처음 나온 단어인데, 잡스와 애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이 잡스에게 붙여줬다.

현실왜곡장은 ‘잡스가 한 말이면 이상하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도 가능한 일로 변화한다’는 뜻이다. 이 사기 같은 마법에 걸리면, 주말에도 밤 새워 일을 하거나,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평가하는 일을 단시간에 달성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잡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3번에 걸친 신제품 런칭 행사를 하는 동안 무대 안팎에서 어떤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3번의 신제품 런칭은 1984년 매킨토시 런칭, 1988년 넥스트 큐브 런칭 그리고 1998년 아이맥 런칭이다. 모두 다 디지털 역사에서 빠뜨리기 어려운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이었다. 6명의 인물이 3번씩 등장하는데, 3번의 프리젠테이션 시작 전 40분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거의 실시간으로 담았다. 행사 2분 남았을 때 딸을 만나 한참 입씨름 하다가 무대에 나가는 식이다.

1984년 런칭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현실왜곡장’은 부하직원 반쯤 죽여놓기이다. ‘헬로’라는 음성 지원 시스템이 고장 나자 “발표 시작 전까지 못 고치면 공개망신을 주겠다”며 앤디 허츠펠드(마이클 스털바그)를 집요하게 압박한다. 행사장을 찾아온 전 여자친구 크리산 브레넌(캐서린 워터스턴)과는 치사하게 양육비 몇 백 달러를 가지고 흥정하는가 하면, 다섯 살 딸 리사(맥켄지 모스)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아주 이상한 몹쓸 인간으로 나온다.

3번째 1998년 아이맥 런칭 행사는 위기에 처한 애플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잡스를 다시 CEO로 발탁, 일체형 PC 아이맥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아이맥이 나온 이후, 애플은 현재와 같은 위치에 올라섰다.

3번째 런칭행사 때에야 잡스에게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홍보담당관이자 오피스 와이프인 조안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릿)이 “최고 컴퓨터를 만드는 것보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게 중요하다”면서 19세 된 딸 리사(펄라 하니 자딘)와 화해할 것을 설득한다.

스티브 잡스2

 

그렇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조안나의 강압에다 심정적인 변화까지 겹치면서 잡스는 결국 리사를 붙잡는다. 행사장을 떠나려는 리사를 따라 옥상 주차장까지 따라간 잡스에게 딸은 “(어렸을 적에) 리사 컴퓨터가 네 이름을 딴 거라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없었냐”고 따진다. 잡스는 “네 이름을 딴 것이 맞다”고 인정하고, 리사가 그럼 왜 거짓말을 했는지 따져 묻자 “난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으니까” 할 때 아버지와 딸의 마음은 통했다.

현실왜곡장을 치료하는데는 자녀가 특효약? 

이때 리사는 언제나 처럼, 무겁고 둔탁한 소니 카세트 플레이어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약속된 런칭 시간까지 늦추면서 리사와 화해를 모색하던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네 주머니에 음악을 담아 줄게. 500곡에서 1000곡까지.” 스티브 잡스가 자기 방식대로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고, 아이팟이 나온 동기를 설명한 장면이다.

그리고 드디어 잡스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무대로 내려온다. 리사가 자랑스럽게 보는 가운데, 잡스 역시 줄곧 웃으며 시선을 리사에게 돌리면서. 3번째 프리젠테이션이 끝나면서 영화도 막을 내렸다.

보통 사람이 현실왜곡장에 빠진 사람을 만나볼 기회는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없었다면, 당신의 인생은 참으로 평화로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비례해서 도전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5749)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