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미세먼지와 ‘고등어의 아이러니’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주방이 실내 대기오염의 발원지

“길이가 두 자 가량이며 몸이 둥글다. 비늘은 매우 잘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다. 맛은 달고 시고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 수는 있어도 회나 어포는 할 수 없다.”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 중 고등어를 설명한 부분이다. 고등어는 예나 지금이나 서민과 함께하는 대표적인 국민생선이다. 우리의 시와 소설, 영화, 대중가요 등에는 고등어를 굽고 조리하고 먹는 장면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가정주부 P씨는 요즘 저녁 밥상에 고등어구이를 자주 올렸다. 두 살배기 아이를 둔 P씨가 고등어구이를 선택한 것은 바로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고등어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미세먼지를 잡는 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는 음식이라고 들었던 것.

집에서 고등어구이를 할 때 대기 미세먼지 농도 ‘주의보’ 기준보다 25배나 많은 미세먼지가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 morgueFile free photo

집에서 고등어구이를 할 때 대기 미세먼지 농도 ‘주의보’ 기준보다 25배나 많은 미세먼지가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 morgueFile free photo

오메가-3 지방산은 기도의 염증 완화에 좋으며 폐질환 증상에도 효과적이다. 또한 고등어는 고단백질이라서 성장을 앞둔 어린이들에게 매우 좋으며, DHA가 풍부해 두뇌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올봄부터 유난히 심한 황사와 거의 매일 발효되는 미세먼지 주의보로 인해 P씨는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가급적이면 외출을 삼갔고, 어쩌다 외출을 할 때면 아이에게도 꼭 마스크를 씌었다. 이런 마당에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데 조금이라도 좋은 음식을 만드는 건 주부이자 엄마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요리 시 미세먼지 등 각종 유해물질 배출돼

그런데 P씨는 최근에 뉴스마다 ‘고등어구이 주의보’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환경부에서 지난 23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집에서 고등어구이를 할 때 발생하는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무려 2290㎍/㎥에 이른다는 것. 이는 주택의 평상시 초미세먼지 농도(49㎍/㎥)보다 45배나 높으며, 대기 미세먼지 농도 ‘주의보’ 기준(90㎍/㎥)보다도 25배나 높은 수준이다.

또 삼겹살을 할 때는 1360㎍/㎥, 계란 프라이 1130㎍/㎥, 볶음밥 183㎍/㎥ 등의 순으로 나타나 대부분의 재료 종류별 요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농도가 대기 미세먼지의 주의보 기준보다 훨씬 높았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새집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과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주로 나오는 이산화질소,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건강에 치명적인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물질도 함께 배출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2년 발표에 의하면 공기오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700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그중 실내오염으로 숨지는 사람이 430만명이다. 집안의 공기가 주로 오염되는 발원지는 바로 주방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50~71세 남녀 약 46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조사 결과에 의하면,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은 남녀가 비슷했지만 비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1.3배 더 높았다. 중국에서는 가스로 음식을 볶아서 요리하는 주방장들의 폐암 발생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의 국립암센터 폐암센터에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3년간 수술을 받았던 831명의 여성 환자 중 흡연 경력이 없는 환자가 730명(87.8%)이었다. 그중 50대 여성이 220명, 60대 여성이 264명으로 주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주부들의 폐암 발생, 주방 요리와 관계 있어

흡연을 하지 않은 여성들의 폐암 발생이 주방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하는 연구결과들인 셈이다. 실제로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요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리할 때 배출되는 유해물질들은 특히 영유아에게 치명적이다. 이런 유해물질들은 공기보다 가벼워 바닥에 가라앉으므로, 기어다니는 영유아들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의 악영향은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진이 2014년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임신 중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된 산모일수록 자폐증에 걸린 자녀를 출산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연구진의 조사 결과에서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에 거주한 산모일수록 순환기가 기형인 아이를 낳은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정주부 P씨는 평소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중국과 날로 증가하는 경유차 등을 탓해 왔다. 그런데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집안의 주방이 미세먼지 배출의 온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미세먼지에 좋은 음식인 고등어구이를 할 때 가장 많은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니, 정말 ‘고등어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실내 공기오염의 위험성에 대해선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부와 유아들의 경우 하루 중 80% 이상을 실내에서 생활하므로 실내 오염에 대한 영향이 더욱 크다. 그마나 다행인 건 주방에서 요리할 때 나오는 미세먼지와 유해물질들은 창문을 열어서 15분만 환기를 해도 평상시 수준의 농도로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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