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백신 이야기] (15) 차세대 ‘치료백신’ 기대, 먹는 약 등장도 성큼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잘못된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백신 이야기’를 총 1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백신’이라는 말은 본래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Vacca’에서 나왔다.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법을 이용해 천연두 예방약을 개발할 때 이 말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루이 파스퇴르가 여기서 이름을 조금 바꾸어 백신‘Vaccine’이라 명명한 것이 세계적으로 굳어졌다. 재미있는 부분은 Vaccine의 독일어 철자가 Vakzin인데, 이 말을 일본에서 ‘왁찐’이라고 발음했고, 한국에서도 아직 백신을 왁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즉 좁은 의미에서 백신은 ‘소’에서 얻어온 생백신(약독화백신)’ 정도의 뜻이며, 넓게 보아 생백신, 더 나아가 사백신(불활성화 백신)을 포함해 그 이후 개발된 예방약을 모두 포함한다. 현대에는 ‘항원항체 반응을 통해 후천성 면역을 얻어 질병을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약’ 정도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항원항체 반응에 기반을 두지 않는 다양한 방법으로도 질병의 예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병을 예방하기 위해 치료제를 미리 사용하는 경우, 인체의 선천성 면역을 높여 질병을 예방하는 경우, 타고난 유전자를 교정해 질병을 예방하게 만드는 경우도 현대에는 불가능하지 않다. 역으로 백신을 통해 강력한 면역반응을 유도해 이미 발생한 난치병의 치료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약이 백신이 되고, 백신이 치료약이 되는 상황이 많아지고 있어 ‘백신’이라는 이름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할지도 애매한 감이 있다. 다만 질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한다는 점에서 차세대 백신의 바람직한 모습의 하나로 보는 경우가 많다. 다가올 미래에 등장할 백신은 어떤 질병에, 어떤 형태로 쓰이게 될까.
사망률 1위, 암 예방 가능할까
텍사스 암 나노 의학 센터(TCCN)가 개발한, 암 치료를 위한 입자 기반 백신의 모습. 면역세포를 자극하는 분자와 면역 반응을 지시하는 암 항원(단백질)을 이용한다. 백신 기술은 이미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국립암센터
먼저 짚어야 할 질병으로 ‘암’을 꼽을 수 있다. 2019년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국내 10만 명당 158.2명이 암으로 사망해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위인 심장질환(60.4명)의 2.6배에 달한다. 3위와 4위인 폐렴(45.1명) 및 뇌혈관 질환(42.2명)과 비교하면 3.5배, 3.7배다. 백신을 통해 암을 정복할 수 있다면 인류의 수명과 건강이 극도로 개선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백신, 즉 예방약을 통해 암의 발생을 막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사실 암 백신은 이미 일부분 개발돼 쓰이고 있다. 원인이 바이러스인 경우다. 대표적인 것이 자궁경부암인데,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일으킨다. 자궁경부암 이외에도 남성 성기나 항문 주위의 암, 편도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 바이러스 자체를 예방할 수 있게 돼 암 예방이 실제로 가능해졌다. 사실 간암도 일부 예방이 가능한데, B형 간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생긴다. 간암의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0.7명으로, 암종으로 인한 사망 원인 중 2위에 해당할 정도이며, 그 원인 중 61.1%는 B형간염이 발전한 것이다. 즉 B형간염을 예방할 수 있으면 간암도 높은 확률로 예방할 수 있다. B형간염 백신은 간암백신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간접적인 방법 이외의 암 예방 방법으로 ‘치료백신’이 논의되고 있다. 암은 우리 몸속 세포가 변이되면서 생긴다.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체가 들어와 원인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외부 자극성 요인(발암물질이나 자외선 등)에 노출되는 경우, 노화의 경우 등 원인이 수없이 많으며,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인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전통적인 항원항체반응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경우를 특정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몸에 병원체에 그대로 대응하는 형태의 백신이 아니라, 세포에 암이 생기는 즉시 치료해 버리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이 이른바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이다. 우리 몸속 선천성 면역체계는 변이를 일으킨 암세포 역시 적으로 간주하지만, 암세포는 이것을 속여 살아남는다. 과학자들은 암세포의 면역체계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고, 면역세포의 활성을 높여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찾아서 제거하게 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인 셈이다. 이 방법을 찾아내는데 큰 공을 세운 제임스 앨리슨 미국 MD앤더슨암센터 교수와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는 201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이런 면역항암제를 백신처럼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며, 치료와 예방이 모두 가능한 형태라 이 역시 ‘치료백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면역항암제는 한 번 치료를 받으면, 암세포 자체를 면역세포들이 기억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같은 암종에 대해 10여 년 이상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사전에 투여해 암 예방 백신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막대한 항암치료 가격 때문에 환자가 아닌 사람이 선택하긴 무리가 있지만, 앞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암종이 많아지고 대량생산 역시 가능해진다면 다양한 암 치료 백신의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리를 통해 난소암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치료백신 연구도 늘고 있다.
치료+예방 가능한 ‘치료백신’으로 다양한 난치병 정복 기대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동시에 진행하는 ‘치료백신’ 개념은 이미 여러 곳에서 연구 중이다. 후천선면역결핍증(AIDS) 연구도 사례로 꼽히는데, 2020년 미국 유타 보건대 연구팀은 새로운 AIDS 치료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원숭이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연구진은 AIDS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가 세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 이런 약물은 주로 펩타이드(아미노산중합체, 아미노산과 단백질의 중간 형태) 형태로 만드는데, 인체 내에서 효소 등에 의해 분해돼 쉽게 배출되므로 약효가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다. 연구진은 펩타이드 구조를 거울에 비친 것처럼 뒤집은 ‘D-펩타이드’ 형태로 만들어 약효가 오래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신체 단백질 분해 요소가 해당 펩타이드의 인식 자체를 못하게 만든 결과 신체 내에 길게 머무르며 충분히 약효를 나타내게 된다. 이 약물이 임상을 거쳐 실용화 된다면 앞으로 AIDS 환자의 치료가 가능할 뿐 아니라 예방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
일반 백신의 특징인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해 역으로 질병을 치료하려는 노력도 있다. 즉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하는 백신을, 이미 발병한 사람에게 투여해 예방을 넘어서 치료까지 해 보겠다는 역발상이다. 많은 백신의 종류 중, ‘DNA 백신’이 이런 치료백신에 적합한 형태라는 분석이 많아 미래에 새롭게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DNA 백신은 우리 몸속 세포에 병원체의 DNA 일부를 삽입하고, 그로 인해 항원을 지속해서 생산하기 때문에 효과가 장기적이다. 또 체액성 면역반응과 세포성 면역반응이 같이 유도되므로 병원체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강한 면역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비슷한 원리의 바이러스벡터 백신 역시 같은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C형간염이다. C형 간염은 아직 완전히 실용화 된 백신이 없는데, 연구자들은 앞으로 백신이 개발되면 치료 역시 가능한 ‘치료백신’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간에 자리 잡은 C형 간염 바이러스(HCV)를, 백신을 통해 우리 몸속 다른 곳에서 강한 후천성 면역을 얻어내고, 이를 통해 강력한 T세포 면역반응을 유도해 HCV 자체를 치료하는 식이다. 아직 완전히 실용화 되진 않았지만 비슷한 원리에 따라 신약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인간이 가진 면역력 그 자체를 이용하는 치료기술의 개발은 미래로 갈수록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백신과 치료제의 구분 역시점점 모호해져 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신은 꼭 주사로 맞아야 할까
백신을 접종받고 있는 모습. 첨단 백신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접종방식은 주사에 의존하고 있다. ⓒUnsplash
다양한 첨단 백신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백신을 우리 몸에 투여하는 방법만큼은 여전히 제너의 우두법을 개발 당시처럼 주사기나 흡입기를 사용한다. 둘 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므로 편리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의료진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등에선 백신을 공급하기 어렵다. 백신을 알약처럼 간편하게 먹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보관과 유통이다. 백신은 기본 성분이 식품과 비슷해서 ‘상하면’ 쓰지 못한다. 유전자 백신은 핵산구조로 온도변화에 취약해 영하의 관리가 필요하다. 재조합백신을 비롯해 전통적인 약독화 백신, 불활성화 백신 등은 단백질 입자로 된 항원을 그대로 사용하므로 대부분은 냉장유통이 기본 조건이다.
최근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늘고 있다. 우선 짚어볼 만한 것이 ‘건식백신’이다. 동결건조 기술을 이용해 항원 입자를 라면스프와 비슷하게 건조 시켜 만드는데, 아직 효과는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지만 개발에만 성공하면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멸균 수액과 혼합해 주사로 맞을 수 있고, 비강을 통해 투입할 수도 있다. 천식약과 비슷하게 흡입기를 통해 들이마시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백신이 폐포를 통해 흡수되며, 혼자서도 백신을 투여할 수 있다. 만약 장에서 흡수되게 할 수 있다면 먹는 약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다국적 제약회사 얀센, 스웨덴 아이코노보(Iconovo), 지쿰(Ziccum) 등의 회사가 앞다퉈 건조백신 기술을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항원이 살아있어야 하는 약독화 백신, 세포 속으로 직접 유전물질을 전달해야 할 mRNA 백신 등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불활성화 백신, 재조합백신 등은 충분히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면 복잡한 과정 없이 누구나 먹는 백신을 공급 받을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백신 성분을 담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유전자 형질전환을 통해 항원과 똑같은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개량한 식물을 대량 재배한 다음, 그 식물을 수확해 약으로 만들어 먹는 방식으로 흔히 ‘그린백신’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물을 길러 음식처럼 섭취해도 예방효과가 있겠지만 실제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르는데, 입으로 먹은 항원이 위산을 통과해야 하는데다, 섭취량을 정확히 가능하기 어려워 약효나 부작용의 통제도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식물에서 다시 필요성분만을 추출해 알약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방법이 기대되고 있다. 과학계에선 우선 B형간염, LTV(설사병의 일종) 등을 예방하는 ‘먹는백신’ 개발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의료란 질병과 인간의 끝없는 숨바꼭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질병의 정복에 한 발 더 다가가면,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그만큼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결국 끝없는 싸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가 정착되기 전인 불과 수십여 년 전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분명 이 숨바꼭질에서 계속 이겨 나가고 있다. 앞으로 모든 질병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생활은 백신으로 인해 점점 더 건강하게, 더 쾌적하게 바뀌어 가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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