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 폭격을 위한 독일의 카드, 젱거의 질버포겔

[밀리터리 과학상식] 1940년대판 X-37?

질버포겔의 모형

지금이야 비밀 임무를 띠고 궤도 비행을 하는 미국 우주기 X-37B가 심심하면 언론에 소개되지만, 이와 비슷한 이동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무려 근 한 세기 전에 한 사람이 있었다. 독일의 항공공학자인 오이겐 젱거(Eugen Sänger, 1905~1964)가 그 주인공이다. 그라츠 빈 공대에서 토목을 전공하던 그는 헤르만 오베르트의 책 <로켓을 이용한 행성 간 여행(원제: Die Rakete zu den Planetenräumen)>에 감명을 받고 항공공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그는 오베르트가 이끌던 독일의 우주여행협회(Verein für Raumschiffahrt, 약칭 VfR)에도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는 1933년, 1935년, 1936년에 로켓 비행 관련 논문을 오스트리아 학회지 <플루크> 지에 냈다. 이 논문들은 독일 항공성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유럽이었다. 독일 항공성은 젱거의 아이디어를 응용하면 유사시 독일에서 출격해 미국 본토를 폭격할 수 있는 폭격기(일명 아메리카 봄버 프로젝트) 개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독일 항공성은 젱거에게 브라운슈바이크 인근의 연구소와 액체 산소 공장, 100톤급 엔진의 실험 시설을 주어 이 아이디어를 구현하도록 했다.

 

물수제비식 비행으로 미국을 폭격하라

그리하여 젱거는 아내 이레네 젱거 브레트와 함께 <질버포겔(Silbervogel, 은빛 새라는 의미의 독일어)>이라는 이름으로 로켓 엔진을 사용한 아메리카 봄버의 개념 구상을 해냈다.

이 항공기는 길이 3km 레일 위에 얹혀 외부 부스터를 사용해 시속 1,930km로 가속 및 이륙한 다음, 이륙한 다음에는 부스터를 분리해 버리고 자체 로켓 엔진을 사용해 가속 및 상승, 고도 145km, 속도 시속 21,800km에 도달한다. 로켓 엔진이 연료를 다 써버린 후에는 지구 중력으로 인해 고도가 서서히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대기권에 재돌입할 시 늘어나는 공기밀도로 양력을 얻어 다시 고도를 회복하고, 그렇게 날아가다가 또 고도가 낮아지면 다시 양력을 얻어 또 상승하는 식의 이른바 물수제비식 비행을 하는 식이었다. 물론 대기권에 튕길 때의 고도는 매번 낮아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비행하고도 독일을 출발 미 본토 상공에 가서 4톤급 폭탄을 투하하고, 태평양상 일본령 도서지역에 착륙할 수 있는 항속 거리(19,000~24,000km)가 나와준다고 판단되었다.

젱거는 1941년 12월 3일 이러한 개념 구상안을 독일 항공성에 제출했다. 그러나 독일 항공성은 이 안이 너무 비싸고 복잡하다고 생각해 반려했다. 젱거는 발터 그레고리 교수의 조언과 지도를 받아 더욱 간략화한 개념 구상안을 1944년 9월에 독일 항공성에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에 밀려 오늘 내일 하고 있던 나치 독일은 젱거의 아이디어를 채택 및 구현할 여력이 없었다.

 

결실 맺지 못했지만 긴 족적 남겨

전후 분석에 따르면 질버포겔의 설계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질버포겔이 대기권 재돌입 시 받는 대기 마찰열은 젱거의 예상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대기를 이용해 물수제비 비행을 하기는커녕, 질버포겔을 대기 마찰열로 공중분해시켜버릴 수준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욱 방열 성능이 좋은 방열판을 장착해야 했는데, 그러면 폭탄의 탑재 중량이 줄어든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도 젱거의 연구는 꽤 긴 족적을 남겼다. 종전 후 질버포겔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한 소련은 젱거 부부를 납치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므스티슬라프 브세볼로도비치 켈디시 박사 휘하에 연구팀을 꾸려 젱거의 아이디어를 독자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 연구팀은 로켓 엔진 대진 램제트 엔진을 단 질버포겔 개념 설계를 완성하기도 했다. 이 개념 설계를 통해 1960년대 초반 여러 가지 순항미사일 설계안도 나왔지만, 이 중 실제로 생산된 것은 없다.

미국에서도 젱거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1960년대 미국의 실험용 유인 우주기인 X-20 다이나 소아는 분명 질버포겔의 배다른 형제격인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가다듬어진 우주기 관련 기술은 1980년대 우주왕복선, 그리고 현재의 X-37에 이르기까지 계승 발전되어 오고 있다.

또한 질버포겔 설계에서 쓰인 재생 냉각 재생 엔진 설계는 현재 거의 모든 로켓에 사용되고 있다. 이 설계는 로켓 엔진의 벨 노즐을 휘감은 튜브 속으로 연료 또는 산화제를 순환시켜 벨 노즐의 온도를 낮추고, 연료 또는 산화제의 압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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