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뮤즈, 뮤지엄, 기억술 (1)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67)

“아빠, 이것 쉽게 외우는 법 없어요? 너무 어려워요.”

“그래, 어디 보자…. 앞 글자만 따서 외우면 어떨까? 아니면 이야기로 만들면 어때?”

종종 아이들은 외우기 어려운 것들을 만나면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 한때는 ‘암기왕’이었던 필자도 큰 도움은 못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꽤 많은 노래를, 시를,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창작의 소재는 대부분 시험을 위한 것들이었다. 외울 것들의 첫 글자를 따거나, 말이 안 되는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기억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암기법을 영어로 ‘mnemonic’이라 한다. 발음도 어렵고, 정작 그 철자는 외우기 어려운 모순적인 단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이름이 태어난 이유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천마(天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보자.

그리스 신화의 천마는 페가수스(Pegasus)라 부른다. 페가수스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Medusa)의 목을 칼로 내려쳤을 때 분수처럼 솟은 붉은 피에서 태어났다. 페가수스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힘찬 날갯짓을 해서 단숨에 헬리콘(Helicon)산으로 날아갔다.

산의 정상에 내려앉은 페가수스는 땅이 파이도록 힘차게 발굽질을 했고 그 자리에는 샘이 생겼다. 마르지 않는 그 샘을 ‘말(馬)의 샘’이란 뜻으로 히포크레네(Hippocrene)라 불렀다. 이 샘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사는 뮤즈들(Muses)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해주는 원천(源泉)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여신으로 알려진 뮤즈(Muse)는 모두 아홉 명이다. 뮤즈들은 저마다의 이름이 있었고, 특기가 달랐다.

뮤즈들의 리더는 칼리오페(Calliope)다.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뜻의 이름에 어울리듯 서사시를 낭독하고 웅변을 맡았다. 그녀는 아폴론의 아들 오르페우스(Orfeus)를 낳았다. 음악의 신 아폴론과 아름다운 목소리 칼리오페의 아들로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가수가 되었고, 어찌나 노래를 잘 불렀던지 산천초목도, 심지어는 저승의 신 하데스도 노래에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를 들고 있는 칼리오페. 그녀는 서사시를 담당하는 뮤즈다.  ⓒ 위키백과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를 들고 있는 칼리오페. 그녀는 서사시를 담당하는 뮤즈다. ⓒ 위키백과

나팔과 물시계를 들고 있는 뮤즈인 클리오(Clio)는 역사를 담당한다. 클리오의 나팔은 전쟁을, 물시계는 시간을 의미한다. 역사는 시간을 이기려는 인간의 기억이고, 전쟁은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뮤즈 에라토(Erato)의 이름은 사랑의 신인 에로스(Eros)의 여성형에서 왔다. 그 이름에 걸맞게 사랑의 시와 서정시를 맡는다. 뮤즈 우라니아(Urania)의 이름도 하늘의 신 우라누스(Uranus)의 여성형이다. 하늘의 일 즉, 천문학을 담당한다.

슬픈 표정의 가면과 몽둥이를 든 뮤즈는 멜포메네(Melpomene)로 비극(tragedy)을, 즐거운 표정의 가면을 든 뮤즈 탈리아(Thalia)는 희극(comedy)을 담당한다.

뮤즈 에우테르페(Euterpe)는 ‘기쁨을 준다’는 뜻이 있고, 음악을 담당한다. ‘많은 찬양’이란 뜻을 가진 뮤즈 폴리힘니아(Polyhymnia)는 찬양가 담당이다. 뮤즈 테릅시코레(Terpsichore)는 하프시코드 아니, 작은 하프를 닮은 악기를 든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담당은 춤이다.

헬리콘 산 정상에 사는 아홉 뮤즈들은 올림푸스 궁정에서 연회가 열리면 합동 공연을 하러 간다. 음악의 신 아폴론이 리라(lyra)를 뜯으며 분위기를 돋우면 뮤즈들의 한바탕 공연이 시작한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낭독하고, 클리오는 제우스가 싸워 이긴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에라토는 신들의 사랑을, 우라니아는 하늘의 이야기를, 멜포메네와 탈리아는 비극과 희극을 공연하고, 에우테르페는 즐거운 음악을. 폴리힘니아는 제우스를 칭송하는 노래를 선사하고, 테릅시코레는 춤을 추었다.

하지만 이 여흥의 핵심은 순위 경쟁을 위한 득표 조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일무이한 목적은 바로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를 칭송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음악과 예술을 전해주는 여신 뮤즈라는 이미지와 달리, 원래 뮤즈는 제우스를 칭송하고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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