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뇌과학이 만나는 곳

'뇌를 훔친 소설가' 출간

 

“공상의 행복한 힘으로/ 다시 살아난 허구의 인물들,/ 쥘리 볼마르의 연인,/ 말렉 아델과 드 리나르,/ 격정의 순교자 베르테르,/ 우리를 꿈길로 안내하는/ 저 독특한 그랜디슨/ 이 모든 인물들은 꿈 많고 어여쁜 소녀에게/ 하나의 형상으로 나타나 오네긴 속에서 합쳐졌다.”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시골 아가씨 타티야나는 주인공 오네긴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그동안 읽었던 모든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린다.

읽고 있던 소설 속에서 멋진 남자들이 등장하면 마치 실제로 만난 것처럼 설레던 타티야나의 탁월한 감정이입 능력은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거울 뉴런’의 활발한 작용 덕분이다.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책 ‘뇌를 훔친 소설가'(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쉽사리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문학과 뇌과학을 결합시킨 책이다.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여러 신경과학적 메커니즘들이 옛 문학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를 여러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예브게니 오네긴’ 속 타티야나는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사하는 신경세포인 거울 뉴런을 활발하게 작동시키는 동시에 이를 억제하는 ‘슈퍼 거울 뉴런’의 작용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거울 뉴런 탓에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곧 실제 삶으로 돌아오는 것도 바로 이 슈퍼 거울 뉴런의 메커니즘이다.

“다른 모든 인물이 그저 모방만 하는 데 반해, 타티야나는 모방을 하지만 모방이 모방임을 인식하고 그걸 통해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삶을 창조해 간다. 이 점에서 그녀는 푸슈킨의 창조성을 밝혀주는, 어찌 보면 푸슈킨의 분신과 같은 인물인 것이다.”(47쪽)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사랑도 뇌의 작용으로 읽어낸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은 오랫동안 사모해왔던 귀족 처녀 키티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자 “행복감으로 머리가 멍해진다”.

사랑에 빠진 레빈은 문득 주위 사람들이 모두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유달리 사랑해 주는 것만 같다.

사랑에 빠지면서 쾌감중추가 발화하는 역치가 낮아져 작은 일에도 도파민이 분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밖에도 몰입, 기억, 망각, 변화 등 뇌의 작용에 초점을 맞춰 문학작품을 색다른 방식으로 분석한다.

뇌과학의 연구 성과가 구축되기 이전에 쓰인 문학작품들이 뇌과학 이론을 정교하게 품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비밀을 파헤치는 문학의 기능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저자는 “자연과학적 사실이 문학적 내용을 보강해준다면, 혹은 문학적 내용이 자연과학적 사실의 해석에 도움을 준다면 문학이 주는 지혜는 더욱더 빛을 발할 것”이라며 “문학적 내용과 자연과학적 사실이 서로를 비춰주는 가운데 드러나는 삶의 지혜를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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