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모든 군중을 뜻하는 ‘팬데믹’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82)

세계보건기구(WHO)가 3월 11일(현지시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으로 본다’고 발표했다. 이미 전 세계 모든 대륙의 114개 나라에서 11만 8000 명의 확진자와 429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시점이다. 기다렸다는 듯 증시가 폭락하고, 각국이 입국 관문을 걸어 잠그고, 도쿄 올림픽 연기설까지 나왔다.

2009년 신종 플루(H1N1, swine flu) 팬데믹으로 이듬해까지 전 세계 191개국에서 1만 85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76만 명이 감염되어 26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당시 팬데믹 선언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각국 정부들이 백신을 구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했지만, 이후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300만~500만 명을 감염시키고, 30만~6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계절성 독감보다도 덜 심각했기 때문이다.

2009년 신종 플루 팬데믹.© 위키백과

이에 전문가들은 WHO의 성급한 선언이 제약회사의 압력 때문이라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WHO는 해명에 진땀을 흘렸고, 이후 팬데믹 선언이 몰고 올 파장을 고려해 팬데믹 발령에 대한 기준을 없앴다.

그래서 이번 공표는 ‘팬데믹이다!’가 아닌 ‘팬데믹으로 본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번 공표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데믹 선언 이후 각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면서 팬데믹 공표 자체가 ‘패닉(panic)’을 불러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원생생물, 프리온이 있다. 감염병은 전파 양상에 따라 풍토병(엔데믹), 유행병(에피데믹), 세계적 유행병(팬데믹)으로 나눌 수 있다.

풍토병(endemic)이란 특정한 지역에서 환자가 꾸준히 생기는 ‘토종’ 감염병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디스토마라 불린 간흡충증과 폐흡충증, 상피병을 일으키는 사상충증,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어 발생하는 낭미충증 등이 기승을 부린 적이 있었다. 외국의 경우에는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장티푸스, 말라리아, 록키산 홍반열, 샤가스병, 맨슨주혈흡충증 등이 유명하다. 이런 병들은 현지 여행을 통해 걸릴 수 있으므로 해외여행 전에 사전 정보를 얻고 대비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가면 해외 질병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다. <관련 자료>

유행병(epidemic)은 특정 인구 집단에서 많은 사람에게, 단기간(보통은 2주 이내)에, 빠른 속도로 퍼지는 감염병을 일컫는다. 유행병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돌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019년 사모아와 콩고민주공화국의 홍역, 2018~2019년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의 에볼라, 2018년 인도의 니파, 2017년 인도의 일본뇌염, 2016~2017년 예멘 콜레라, 2016년 앙골라 황열 등이다.

이러한 유행병이 수그러들지 않아 특정 지역을 벗어나 여러 나라와 다른 대륙으로 퍼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면 세계적인 유행병 즉, 팬데믹이라 부른다. 대유형이나 범(汎)유행으로도 부른다. 2009년 신종 플루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시작되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은 2019년 12월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으로 악명을 떨쳤던 병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페스트, 두창(마마, 천연두), 콜레라, 폴리오, 스페인 독감, 에이즈 등. 하지만 매년 겨울에 전 세계를 휩쓰는 계절성 독감은 그 피해가 심각하지만 팬데믹으로 부르진 않는다.

돌림병을 묘사한 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 1562)’. © 위키백과

풍토병을 뜻하는 ‘엔데믹(endemic)’은 en(속, 內)+demos(군중), 유행병을 뜻하는 ‘에피데믹(epidemic)’은 epi(달라붙은)+demos(군중), 세계적 유행병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은 pan(모든)+demos(군중)을 뜻한다. 접두사만 다른 ‘자매’단어들로 각각 특정 지역민들에게, 사람들 사이에 널리, 전 세계인들에게 전염되는 병이란 뜻이 된다.

모든, 전부를 뜻하는 접두사 pan- 은 그리스신화 속에 나오는 목동의 신(牧神) 판(Pan)의 이름에서 따왔다. 양치기 목동들은 목가적인 느낌이 나지만, 목신 판은 아주 흉측하게 생긴 데다가 성격도 고약해서 흉폭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두려운 존재다.

판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나타나기에 사람들은 ‘모든’란 뜻의 접두사로 pan-을 썼다. Pan-demic(모든 사람), Pan-America(아메리카 전체, 汎美), Pan-Asia(아시아 전체, 汎亞), Pan-Ocean(바다 전체, 汎洋), 파노라마(pan-orama), 파놉티콘(pan-opticon)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오래전 지구상의 모든 땅덩어리가 한데 모여있던 것은 판게아(Pan-gea), 모든 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은 파나케아(pan-acea), 온갖 선물을 받은 여인의 이름은 판도라(Pan-dora)이다.

말썽꾸러기 판은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명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닷없이 판과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를 패닉(pan-ic)이라 부른다. 극심한 공포, 공황 상태를 일컫는다.

목신 판.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 박지욱

WHO의 이번 팬데믹 선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거에는 팬데믹 선언이 ‘큰 혼란을 대비하라!’는 뜻으로 쓰였다면 이번은 ‘경각심 고취’의 성격이 크다고 한다. 사태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부 나라 정부에겐 경종을 울리는 뜻도 있다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뜻은 팬데믹 선언으로 패닉에 빠지지 말고, 이제 전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코로나19과 싸우기 위해 ‘인류 모두(pan+demos)’의 힘을 모으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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