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인식 ‘로제타 스톤’ 개발

암 면역요법과 감염병 진단 치료에 활로

우리 몸의 면역계가 어떻게 항원을 인식하고 그에 결합하는지를 알아내는데 도움을 주는 ‘로제타 스톤’같은 역할을 하는 알고리듬이 개발됐다.

미국 성 유다 어린이병원과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 연구원들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최근 호 온라인판에 발표한 이 연구는 개인 맞춤형 암 면역요법 개발과 감염병의 진단 및 치료를 한층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 면역체계는 T세포 표면에 있는 T세포 수용체 분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종양 및 기타 위협으로부터 나오는 외래 항원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함으로써 작동된다.

유전체를 재배열하면 많은 수의 상이한 T세포 수용체를 늘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모든 개인은 일란성 쌍둥이에서도 거의 겹치지 않는 약 1억개의 서로 다른 수용체가 들어있는 T세포 목록을 가지고 있다. 이 목록에 들어있는 각 수용체들이 서로 다른 항원을 인식하고 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것.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성 유다 면역학부의 폴 토머스(Paul Thomas) 박사는 “이 수용체들이 워낙 다양해 지금까지 동일한 항원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는 T세포 수용체를 분류해 보려는 노력이 번번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토머스 박사와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 및 워싱턴대에 적을 두고 있는 필립 브래들리(Philip Bradley) 박사는 이번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로 등재돼 있다.

연구를 수행한 폴 토머스 박사(왼쪽)와 논문 제1저자인 프레이디욧 대쉬 박사.  Credit: St. Jude Children's Research Hospital / Peter Barta

연구를 수행한 폴 토머스 박사(왼쪽)와 논문 제1저자인 프레이디욧 대쉬 박사. Credit: St. Jude Children’s Research Hospital / Peter Barta

T세포 수용체 잘 분류 안돼 질병 대처에 어려움

토머스 박사는 “T세포 수용체가 제대로 분류되지 않음으로써 면역 인식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면역력을 이용해 새로운 바이러스나 암 유발 돌연변이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개발한 알고리듬으로 같은 항원을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의 주요 특징을 식별하고 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며, “이는 면역 수용체가 암이나 새로운 바이러스를 인식하도록 설계하는 기초가 된다”고 밝혔다.

이 알고리듬은 T세포 수용체가 에피토프(epitope)라고 불리는 항원 결정기(決定基) 부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개발한 도구로 만들었다. 에피토프는 우리 몸을 순환하는 면역세포 표면에 표시되며, 이 에피토프를 통해 T세포가 항원과 결합해 면역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다중 에피토프는 같은 바이러스와 종양 및 기타 위협으로부터 생성된다. 각각의 에피토프는 T세포 풀(pool)에 의해 표적화되며, 이 풀에는 항원을 인식해 반응하는 각각 다르고 특이적인 T세포 수용체가 모여있다.

이 도구에는 TCRdist가 포함돼 있어 항원을 인식하는 중요 부위의 아미노산 배열과 같이, 연구원들이 T세포 수용체의 주요 특징 가운데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을 계산하는데 활용했다. TCRdist는 같은 에피토프를 인식하는 T세포 수용체를 식별해 낼 수 있다.

TCR-α 및 TCR-β 사슬, CD3 및 ζ 사슬 보조 분자를 갖는 T 세포 수용체 복합체. Credit: Wikimedia Commons

TCR-α 및 TCR-β 사슬, CD3 및 ζ 사슬 보조 분자를 갖는 T 세포 수용체 복합체. Credit: Wikimedia Commons

독감 에피토프 최대 90% 정확도로 예측

논문 제1저자로 토머스 랩 연구원인 프레이디욧 대쉬(Pradyot Dash) 박사는 “이 분석 도구는 이전보다 더 일관된 방식으로 특정 항원에 대응하는 T세포 목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며, “주어진 에피토프에 상응하는 T세포 수용체를 그룹화하면 목록의 대부분을 특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고문서 학자들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사용한 로제타 스톤처럼 연구원들은 4600개 이상의 T세포 수용체를 가진 알고리듬을 학습해 10개의 서로 다른 바이러스 에피토프 중 하나에 인체 T세포의 81%와 쥐 T세포의 78%를 올바르게 할당해 냈다. 이 ‘훈련 자료’는 인플루엔자 또는 사이토 메갈로 바이러스(CMV)에 감염된 78마리의 쥐와, CMV 또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32명으로부터 생성됐다. 각 T세포의 에피토프는 이전에 이 방법과 달리 매우 노동집약적인 방법으로 만들었었다.

연구팀은 에피토프-수용체 인식에 대한 지식 없이 독감에 감염된 쥐 세 마리에 대해 이 알고리듬을 시험했다. 그 결과 세포가 인식하는 독감 에피토프를 최대 90%의 정확도로 예측해 냈다.

일반적인 항원-항체 반응. 항원이 나타나면 T 세포가 자극돼 ‘세포 독성’ CD8+ 세포 또는 ‘조력자’(helper) CD4+ 세포가 생성된다. Credit: Wikimedia Commons

일반적인 항원-항체 반응. 항원이 나타나면 T 세포가 자극돼 ‘세포 독성’ CD8+ 세포 또는 ‘조력자’(helper) CD4+ 세포가 생성된다. Credit: Wikimedia Commons

T세포 수용체 85% 새로 확인

토머스 박사는 “실제로 분류된 T세포 수용체의 85%는 이전에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이번에 개발한 방법이 새로운 항원 특이성 T세포를 분류하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또 에피토프들이 핵심적인 유사성을 공유한 T세포 수용체 무리와 함께 유사성이 덜한 ‘국외자(outliers)’ 수용체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토머스 박사는 T세포 수용체의 10% 정도가, 면역계로 하여금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다른 위협요소의 탐지가 지연될 수 있는 돌연변이를 인식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외자 수용체라고 추정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논문 공저자인 프레드 허친슨의 토머 허츠(Tomer Hertz) 박사가 토머스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하면서 시작돼 5년여 간 연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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