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멀티 플레이어, 췌장의 활약상

[인체 속 과학원리] 소리 없이 다가오는 췌장암, 조기 발견이 최우선

인체는 정교한 과학의 집합체이다. 현대 의학은 건강한 삶을 위해 인체의 과학적 원리를 규명하고 이에 입각해 수많은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인체 속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를 알아보고 스스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인체 속 과학원리’를 연속 게재한다.

최근 애플의 창립자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아 6주 내에 사망할 수 있다는 ‘스티브 잡스 시한부설’이 전해져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스티브 잡스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소문을 일축하는 듯 했으나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하는 그의 초췌한 모습에 다시금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앓고 있는 췌장암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렵고 발견한 뒤에도 암이 상당 부분 진행돼 있어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췌장암은 ‘소리 없는 암’으로도 불린다.

위(胃)의 뒤쪽에 위치한 췌장은 약 15cm의 가늘고 긴 장기로 내분비와 외분비 모두를 함께 겸하고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외분비는 혈액으로 들어가면 절대 안 되는 소화효소를 소화관으로 직접 분비하는 것을 뜻하고, 내분비는 혈액 내로 분비하는 호르몬 분비를 뜻한다.


췌장은 거의 대부분이 외분비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췌장 조직 구성의 재미난 점은 대부분의 외분비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 속에 내분비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존재한다는 것이다.

췌장의 조직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마치 외분비 조직이라는 넓은 바다 가운데 내분비 조직이 섬처럼 여기저기 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최초로 그 조직을 관찰한 조직학자 랑게르한스의 이름을 따서 그 내분비 조직을 랑게르한스섬(islet of Langerhans)이라고 부른다.

위산 중화시켜 장의 점막 보호

췌장은 하루에 약 1.5L의 액을 분비한다. 이 양은 췌장 무게의 약 10배가 넘는 양으로 대부분이 중탄산나트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탄산나트륨은 알칼리 성분으로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온 위산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의 위는 위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을 가지고 있지만 십이지장을 포함한 소장, 대장은 위산으로부터 장 점막을 보호할 막을 가지고 있지 않다. 때문에 위에서 넘어오는 일부의 위산을 췌장액이 중화시켜줌으로써 장의 점막을 보호하는 것.

이는 췌장의 여러 외분비 기능 중 하나다. 다른 외분비 기능으로는 십이지장으로 넘어오는 음식의 소화를 도와주기 위해 아밀라아제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것이 있다. 아밀라아제는 침에도 존재하는 소화효소로서 식도를 넘어가기 전 입안에서 음식과 적당히 섞여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 췌장에서 분비하는 췌장 아밀라아제 역시 음식을 소화시키는 소화효소로서 선포(Acinus)라고 하는 침샘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곳에서 분비된다. 이 효소는 췌장관을 통해 직접 십이지장으로 분비돼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다.

혈당 조정하는 내분비 기능까지

췌장은 직접 소화관으로 소화효소 등을 분비하기도 하지만 혈액을 통해 전달되는 인슐린(Insulin), 글루카곤(Glucagon), 소마토스타틴(Somatostatin)이라는 호르몬들을 분비하기도 한다. 이 호르몬들은 췌장을 둘러싸고 있는 혈관을 통해 전달돼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한다.

췌장에서 이 호르몬들은 랑게르한스섬(Islet of Langerhans)이라고 하는 둥근 모양의 내분비샘 세포의 무리에서 분비되는데 이 랑게르한스섬은 알파세포와 베타세포 그리고 델타세포로 이뤄져 있어 각각 분비하는 호르몬이 다르다.


알파세포에서는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은 간에 저장되어 있는 녹말 성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혈중으로 유리시켜 혈액의 당 농도를 높이는 일을 한다. 그렇다면 이 호르몬이 작용을 하면 당이 올라가서 당뇨병이 되는 것은 아닐까? 답은 ‘No’ 이다.

베타세포에서 혈액에 포함된 당분을 세포 내로 이동시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함께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몸은 스스로 혈액 속의 당 농도를 측정해 이 두 가지 호르몬의 완급을 조절해 항상 일정한 수준의 혈당을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델타 세포는 성장호르몬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소마토스타틴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시상하부에서도 분비하기 때문에 췌장에서의 역할이 주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췌장세포의 구성을 살펴보면 베타세포가 60~70%를 차지하고 있고 알파세포는 15~20%, 델타 세포는 5~10%에 불과하다.

이런 췌장이 망가진다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과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 모두의 생성에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혈당이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혈당이 낮아지지는 않고 혈당이 높아져 당뇨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글루카곤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호르몬은 있지만 인슐린 기능은 오로지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만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상복부 복통, 혹시 췌장염?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췌장염은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급성 췌장염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상복부의 심한 통증이다. 급성 췌장염은 췌장이 붓는 것이기 때문에 췌장을 싸고 있는 막이 늘어나면서 여기에 분포하는 신경이 자극을 받아 통증이 생긴다.

이 통증은 췌장염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매우 심한 통증을 경험한다. 그래서 급성 췌장염에서의 통증은 사람이 느끼는 가장 심한 통증 중 하나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급성 췌장염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발생빈도가 100만 명당 10내지 20명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국내의 정확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내의 보고들을 종합해보면 입원 환자수를 기준으로 10만 명당 약 40명으로 유럽과 미국 및 일본 등 다른 지역에서의 발생빈도와 비슷하다. 남녀 발생율은 2~3:1로 남성에게서 많이 보이고 특히 30대에서 50대 사이의 연령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급성 췌장염의 경우 알코올과 담석이 그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담낭과 담관에 있는 담석이 담관과 췌관이 만나는 총담관을 막게 되면 췌장액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때문에 췌관의 팽창이 유발돼 췌장 세포가 깨지고 췌장염이 발생한다. 알코올이 췌장 세포를 망가트리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세포 내의 칼슘농도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알코올에 의한 손상일 경우, 알코올의 양과 손상도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만성 췌장염의 원인은 만성적 음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췌장이 석회화·섬유화돼 췌장 기능이 망가지면 췌장의 효소가 음식물 소화 흡수에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복통에 체중 감소와 설사 등이 동반되기도 하고 췌장 손상이 더 진행되는 경우 당뇨병에 이르기도 한다.

췌장염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음주 외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항이 많지 않다.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췌장염 증상을 유발하는 담석이 있는 경우 수술 치료 등 적극적인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췌장암,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

전세계 누리꾼들은 스티브 잡스가 투병 중인 췌장암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췌장암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암 중에 2.4%로 9위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암에 비해 발생 빈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사망률은 5위에 이르고 발생하면 5년 생존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무서운 암이다.

췌장암의 3대 증상은 복통, 체중감소, 황달인데 암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서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다. 암이 췌장의 두부에 발생한 경우에는 해부학적 구조상 담즙이 내려가는 담관을 막을 수 있어 황달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체부, 미부에 발생한 경우에는 췌장을 둘러싸는 막을 침범해 복통을 유발한다. 또한 췌장 기능 감소와 암의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체중 감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외에 공통되는 증상은 식욕 부진을 비롯해 전신 권태감, 헛구역질, 구토, 설사, 변비 등 다른 소화기 질병 증세와 비슷해 초기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특별한 자각 증상 없이 암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췌장암은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 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상복부 불편감이나 소화관 검사로 설명되지 않는 소화기 증상이 있을 경우 검사를 통해 조기 발견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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