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먹고, 뛰고, 노래하고…수학과 함께 하는 하루

[사이언스 릴레이 페어] 3월 14일 파이데이 이모저모

매년 3월 14일은 과학기술인에게 의미가 깊은 날이다. 저명한 물리학자 2명의 생사가 엇갈린 날이기 때문. 아인슈타인의 생일이자 스티븐 호킹의 기일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이다. 하지만 3월 14일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지 않다. 이 날이 오면 많은 이들이 모여 수학을 주제로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만들며, 묵념을 하기도 한다. 원주율 파이(π)를 기념하는 일명 파이데이(Pi Day)다.

원주율 파이는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눈 수를 말한다. 3.14159265358979323846…로 끝없이 이어지기에 보통 근삿값인 3.14를 사용하는데, 3월 14일이 파이데이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다. 3월 14일을 앞두고 파이데이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보자.

파이 던지고, 사진 찍고, 달리고… 다채로운 행사 이어져

파이데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음식 파이다.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파이(Pie)는 물론이고 파인애플(Pineapple), 잣(Pine nuts), 피자(Pizza) 같이 파이(Pi)가 이름에 들어간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수학의 의미를 음미하는 것은 파이데이에 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풍경이다. 파이가 들어간 옷을 입고, 파이 송을 부르기도 한다.

매년 3월 14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이(Pi)가 이름에 들어간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수학의 의미를 음미한다. ⓒ Flickr / koka_sexton

각종 행동으로 파이를 기념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각종 과학 관련 단체들이 주최하는 3.14마일(약 5km) 달리기 대회. 이 밖에도 차를 몰고 정확하게 3.14마일만 주행하거나, 원을 그리며 행진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파이를 기념할 수 있다. ‘π’ 모양으로 한데 뭉쳐 사진으로 찍는 것 역시 인기 있는 기념 행위 중 하나다.

원주율 숫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3.14159’에 맞춰 오후 1시 59분에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시간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하거나 파이를 던지고 춤을 추는 등 보통 유쾌한 방식으로 세레머니를 진행한다. 사물을 3.14로 전환하는 장난 역시 신선하면서도 파이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어 ‘31살(31 Years Old)’ 청년의 나이는 하루 동안 ‘9파이살(9 Pi Old)’로 바뀐다.

한편 파이데이를 기념하는 사이트(https://www.piday.org/competition/)에서는 원 모양의 과자를 활용해 파이를 설명하는 대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 사이트에서는 지난 11일 3시 14분까지 관련 동영상을 접수받았으며, 올해 수상자에게는 공식 파이데이 티셔츠와 함께 31.41달러를 수여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원과 연관된 퀴즈 풀기, 관련 시 만들기, 파이 쌓기 등 다양한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된다. 국내에서도 각종 과학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관련 행사가 매년 진행되고 있다.

알수록 어려운 원주율, 어디까지 왔을까

이렇게 다양한 파이데이 행사의 꽃은 단연 원주율 외우기다.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를 외우면서 무한의 진실에 도전하는 인류의 의지를 시험해보는 것. 원주율 암기는 예로부터 수학자나 암기 능력자들의 주된 도전과제 중 하나로 꼽혀오기도 했는데, 물리학자로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 특히 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생전 “여기까지 외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던 소수점 이하 762~767번째 자리를 파인만 포인트(feynman point)라 하며, 9가 6번 연속으로 이어져 수학의 신비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현재 이에 대한 인류의 도전정신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2020년 3월 기준 기네스북에 등록된 것은 무려 소수점 이하 7만 자리. 주인공은 라즈비르 미나(Rajveer Meena)라는 인도 청년으로서 2015년 눈을 가린 채 암송에 도전했다. 7만 자리를 읊는 동안 걸린 시간만 약 9시간 27분.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에 불과해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컴퓨터는 어떨까. 원주율 계산은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이 부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곳은 글로벌 IT 기업 구글 연구진이다. 클라우드 연구원인 엠마 하루카 이와오(Emma Haruka Iwao) 박사가 2019년 1월 21일 구글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해 내놓은 결과는 소수점 이하 31조 4159만 자리. 가상 CPU 96개, 메모리 디스크 1.4TB , 스토리지 240TB 등 엄청난 자원을 투입하고도 무려 121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작년 원주율 계산 1위의 자리에 등극한 엠마 하루카 이와오 박사가 이를 자축하며 파이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 ⓒ Google Students/Facebook

문장 암기 통해 나도 암기왕에 도전해볼까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이가 아니더라도 원주율 암기에 도전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이를 위한 재미난 방법이 존재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바로 노래를 활용한 것이다. 주로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이 방법은 간단한 멜로디에 원주율을 가사로 붙여 그대로 외우는 것이다.

이보다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문장을 통해 외우는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르(A. C. Orr)라는 사람이 고안한 문장으로 각 단어의 글자 수가 원주율과 일치한다. 딱딱한 숫자를 암기할 필요 없이 문장으로 외우면 저절로 소수점 30자리까지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Now I, even I, would celebrate
In rhymes unapt, the great
Immortal Syracusan, rivaled nevermore,
Who in his wondrous lore,
Passed on before,
Left men his guidance
How to circles mensurate…

비슷한 예로 ‘How I want a drink, alcoholic of course after the heavy lectures involving quantum mechanics!’라는 영어 문장이 유명하며, 각 언어별로 원주율 암기를 위한 문장이 각기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쟁이’라는 잡지에서 ‘돌고래가 모직 남방 만들며 아침 산책 도는 동안 럭비나 봐라’라는 문장을 만든 적도 있는데, 각 글자의 초성을  ‘ㄱ=1, ㄴ=2,ㄷ=3, ㄹ=4, ㅁ=5, ㅂ=6, ㅅ=7, ㅇ=8, ㅈ,ㅊ=9’라는 법칙에 입각해 대입하면 소수점 이하 23자리까지 무리 없이 외울 수 있다.  흥미가 있는 독자들은 자신만의 원주율 암기 문장을 만들어 보는 것도 파이데이를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이다.

파이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 Pixabay

파이,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 중 하나

이렇게 3월 14일만 되면 원주율을 외우고, 파이를 먹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만큼 파이가 인류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이가 있음으로써 인류는 원과 구의 부피와 넓이 등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그릇, 바퀴, 기둥 등 문명과 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파이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파이의 활용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속도계와 내비게이션. 자동차 바퀴 지름에 파이를 곱해 그 둘레를 알아내고, 여기에 회전수를 곱하면 자동차의 올바른 주행거리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다리 건설과 같은 건축, 강수량 측정과 같은 기상예보에서부터 인공위성 궤도 계산까지 파이의 활용은 분야를 막론하고 이뤄지고 있다.

이에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매년 합격자 발표를 3월 14일에 진행해 파이에 대한 인류의 존경심을 표현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탐험박물관에서 매년 이맘때 3분 14초간의 묵념을 하는 것도 파이와 수학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때론 진지하고 엄숙하게, 때론 유쾌하고 장난스럽게 수학과 함께 하는 하루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비록 코로나19 창궐로 관련 행사 진행은 불투명하지만, 온라인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도 있으니 파이와 함께 주말을 지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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