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맞춤 아기’의 탄생을 막아라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한 모라토리엄 촉구

제니퍼 다우드나 UC 버클리 교수와 엠마뉴엘 샤펜티어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2012년 ‘사이언스’지 8월호에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1세기 생명과학 분야 최고의 발명으로 꼽히는 ‘크리스퍼 카스9’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특정 DNA에만 결합하는 RNA와 특정 DNA를 잘라낼 수 있는 이 기술을 사용하면 거대한 게놈에서 아주 작은 유전자서열을 정확히 찾아내 제거하거나 바꿀 수 있다. 이미 발간된 게놈이라는 방대한 저서 중 어느 문구라도 마음대로 수정해서 다시 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로 이 기술은 실험동물의 대표인 마우스를 비롯해 초파리, 소, 돼지 등의 동물은 물론이고 밀이나 쌀 등 식물의 유전자 수정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3년 후인 2015년 3월 ‘사이언스’지에 한 편의 원고를 게재했다. 크리스퍼 기술이 몰고 올 생명윤리학적 문제에 대해 국제회의를 조직해서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

7개국 18명의 과학자 및 윤리학자들이 인간의 생식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촉구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 ScienceTimes

7개국 18명의 과학자 및 윤리학자들이 인간의 생식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촉구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 ScienceTimes

동료 과학자들과 공개토론회를 거쳐서 정리한 그 원고에는 당분간 인간 유전체 편집을 자제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특히, 특정 질병의 가능성을 미리 제거해 태어나게 하는 ‘크리스퍼 아기’의 연구는 금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중국의 황쥔주 박사팀이 크리스퍼를 이용한 인간 수정란 유전체 편집 결과를 발표했다. 크리스퍼를 최초로 인간에 적용한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인간 유전체 편집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2015년 12월 미국국립과학원에서 열린 제1차 인간유전자편집 국제회의에서 합의문이 작성됐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흥분과 놀라움을 반영한 그 문서에는, 인간의 생식계열 편집에 대한 임상연구를 금지하자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중국 과학자, 크리스퍼 아기 탄생시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관련 사항의 안전 및 유효성 문제가 해결되고 제안된 연구 신청서의 적합성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까지는 인간 생식계열 편집에 대한 임상적 연구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적 합의에 의해 연구를 완전히 금지하는 모라토리엄 선언이 빠졌다며 비판했다. 결국 그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의 허젠쿠이 교수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에이즈에 대한 면역력을 갖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아기들을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과학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크리스퍼 연구는 치료법이 없는 심각한 질환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되며 그마저 배아의 착상은 금지한다는 연구윤리 합의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발표 직후 그가 소속된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교는 허젠쿠이는 휴직 중이며 관련 연구는 대학 밖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명함과 동시에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 정부도 허젠쿠이에 대한 정식 조사 방침을 공표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으며, 허젠쿠이 또한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더 이상 기다리다 못한 7개국 18명의 과학자 및 윤리학자들은 지난 14일 크리스퍼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크리스퍼 카스9 기술을 최초로 발견한 엠마뉴엘 샤펜티어를 비롯해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팀보다 먼저 크리스퍼 카스9 기술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펑 장 MIT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모라토리엄이 영구적인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즉, 이번처럼 ‘크리스퍼 아기’로 이어지지 않는 연구와 질병을 근절하기 위한 신체의 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 연구는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생식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에 대한 임상연구를 승인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국제적인 협의체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문제점

크리스퍼 기술의 개발자와 특허권자까지 나서서 모라토리엄을 주장한 데는 이유가 있다. 허젠쿠이는 유전자 편집 쌍둥이들이 에이즈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CCR5’라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제거했다.

그런데 이 유전자의 기능이 제거되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의 감염에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 이처럼 특정 유전자는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에 관여한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크리스퍼로 편집된 세포가 무심코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실 많은 질병들이 작은 돌연변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크리스퍼가 실수로 건드린 DNA가 하필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심각한 병에 걸릴 수 있다. 게놈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좀 더 좋게 수정하려다 원래 의도와 달리 처음보다 좋지 않은 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크리스퍼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이 불러올 또 하나의 역효과는 유전자 맞춤형 아기의 상업화이다. 인간의 특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유전자 회사의 달콤한 마케팅에 미래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만 남들보다 뒤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네이처’지에 의하면 현재 미국을 포함한 30개국이 생식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을 직‧간접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갖고 있다. 이번에 모라토리엄을 요구한 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국가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연구에 대한 조절을 적절하게 진행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미국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허젠쿠이의 조사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의혹을 사고 있는 중국도 과연 이번의 크리스퍼 모라토리엄에 동참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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