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말썽 많은 스테로이드가 노벨상을?

[노벨상 오디세이] 노벨상 오디세이 (99)

최근 유소년 야구 교실을 운영하던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청소년 선수들에게 불법 스테로이드를 주사한 혐의로 구속돼 파문이 일었다. 여기서 사용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테스토스테론에서 유래된 합성 물질인데, 부작용이 심해 운동선수에게는 금지된 약물이다.

이 스테로이드와 병원에서 주로 처방되는 스테로이드는 다른 약이지만, 사실 스테로이드가 처음 선보일 때만 해도 페니실린과 함께 현대 의약 치료의 혁명을 일으킨 ‘기적의 약’으로 꼽혔다. 특히 스테로이드가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미국 의사 필립 헨치는 그 다음 해인 195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만큼 주목을 끌었다.

1896년 2월 29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헨치는 1916년 라파예트대학을 졸업한 후 이듬해 미국 의료부대에 들어가 의학을 배워 1920년에 피츠버그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네소타 의과대학원인 메이요재단의 연구원이 된 그는 1926년 류머티즘 질병 부서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만성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을 20년 동안 꾸준히 치료하던 중 헨치 박사는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관절염 환자들이 임신을 하거나 황달에 걸릴 경우 오히려 관절염의 통증이 줄어들거나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스테로이드 등을 발견한 이들에게 주어졌다. 왼쪽부터 켄들, 라이히슈타인, 필립 헨치 박사. ⓒ 노벨상위원회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스테로이드 등을 발견한 이들에게 주어졌다. 왼쪽부터 켄들, 라이히슈타인, 필립 헨치 박사. ⓒ 노벨상위원회

황달은 담즙산을 신체 내에 머무르게 하고, 임신을 하게 되면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된다. 이에 따라 헨치 박사는 관절염이 박테리아 감염보다는 호르몬과 관련해 유발되는 것으로 의심했다.

그 무렵 공교롭게도 헨치 박사의 의심을 시험시켜줄 만한 환자 한 명이 입원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던 젊은 여성 환자는 담당의였던 헨치에게 자신의 병을 고쳐줄 때까지 병원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화합물 E 투여하자 만성 관절염 환자 완치

이때 헨치가 떠올린 묘안은 바로 같은 병원의 생화학자 에드워드 켄들이 소의 부신에서 분리해낸 ‘화합물 E’라는 물질이었다. 그 물질을 투여하자 헨치를 괴롭히던 그 환자는 관절염의 통증이 사라져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당시 켄들이 망설이며 헨치에게 소량만 건네준 화합물 E는 바로 코르티손이었다. 헨치와 켄들 등은 코르티손의 만성 류머티즘에 대한 놀라운 효과를 정리해 1949년 4월 논문을 발표했다.

부신에서 생산되는 부신피질호르몬인 코르틴을 처음으로 분리한 건 1920년대 말이었다. 켄들 박사는 1934년에 코르틴을 결정 형태로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실험실도 규명했다. 하지만 겨우 얻어낸 코르틴은 단일 물질이 아니라 20개 이상의 물질로 된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후 스위스의 라이히슈타인 박사와 켄들 박사는 코르틴을 구성하는 물질의 기능을 밝혀냈고, 그런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화합물 E로 알려진 코르티손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필립 헨치와 켄들, 라이히슈타인 박사는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코르티손으로 대표되는 스테로이드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와 항알레르기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때문에 관절염뿐만 아니라 천식, 아토피성피부염, 건선 등 다양한 만성질환의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스테로이드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약물 효과에 상응하는 엄청난 부작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상처에도 쉽게 피를 흘리거나 위궤양이 생기고 살이 쪄서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도 있었다. 심한 경우 척추뼈가 으스러지는 부작용을 보이는 이들도 나타났다.

뛰어난 효과만큼 부작용도 많은 스테로이드

이는 코르티손을 최초로 환자에게 투여한 필립 헨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조차 스테로이드를 환자들에게 처방할 때 치료 기술을 잘 익혀서 해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으며, 평소에도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했다.

세포의 성장 및 분화를 촉진하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1958년 근육성장촉진제로 미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남자 육상 100m 종목의 금메달을 획득한 벤 존슨은 경기 후 실시된 도핑테스트에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메달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남성 호르몬인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심혈관계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간을 손상시킬 수 있다. 또한 남성의 경우 복용 중단 시 남성호르몬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가 생기거나 여성이 복용할 경우 목소리가 굵어지고 체모가 발달하는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이 약물의 제조 및 판매를 중지하는 제약사들이 증가했으나,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아 위조품이 등장해 이번의 유소년 야구교실 사건처럼 음지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의 지시에 따라 단기간 사용할 경우 부작용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천식에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흡입약의 경우나 피부에 바르는 연고제의 경우 전신으로 흡수되는 양이 미미해 부작용이 거의 없다. 제대로 알고 정확히 쓰기만 하면 스테로이드는 여전히 기적의 치료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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