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에서 영감 받은 나노응집제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한 번에 다양한 오염물질 없애는 정수 시스템 실현

최근 경기도와 인천시 일부 지역의 수돗물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쇄도했다. 알아보니 팔당상수원에 냄새 물질인 ‘2-MIB’의 농도가 기준치인 0.020㎍/L를 넘어 최고 0.152㎍/L에 이른 곳도 있었다. 기준치를 넘어도 이 정도는 몸에 무해하지만 흙이 연상되는 냄새가 난다. 다만 휘발성이 있어 물을 끓이면 냄새가 사라진다.

역시 팔당상수원의 물을 씀에도 서울과 다른 경기 지역의 수돗물에서는 흙냄새가 안 난 건 정수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팔당상수원의 물은 고도정수장 18곳과 일반정수장 20곳을 통해 수돗물로 바뀌어 공급되는데, 고도정수장은 말 그대로 오존 살균과 활성탄 흡착 등 ‘고도’의 추가 처리로 오염물질이 좀 더 완벽하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일반정수장의 수돗물을 먹는 국민들로서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정보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편이다. 지구촌 인구의 10%에 가까운 6억6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상수도 시설 없이 살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각종 유해물질도 함께 마시고 있다. UN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다양한 오염물질을 상당 수준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의 정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앞에서 봤듯이 당장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이런 인프라를 완벽히 갖추지 못한 형편이다. 하물며 원조에 크게 의존하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벅찬 일이다.

나노공이 뒤집히며 오염물질 흡착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11월 26일자 온라인판에는 정수할 물에 넣어주기만 하면 오염물질을 빨아들여 함께 덩어리를 이루는, 해양생물 말미잘에서 영감을 얻은 나노응집제를 만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중국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해파리가 먹이를 포획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나노응집제를 개발했다. 촉수를 활짝 펼치고 있는 해변말미잘(학명 Actinia equina)의 모습이다.  ⓒ 위키피디아

중국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해파리가 먹이를 포획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나노응집제를 개발했다. 촉수를 활짝 펼치고 있는 해변말미잘(학명 Actinia equina)의 모습이다. ⓒ 위키피디아

베이징대와 미국 예일대 등 중국과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액티니아(Actinia)속(屬) 말미잘이 먹이를 포획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들은 평소에는 촉수를 몸통 속으로 오므리고 있다가 순간 바깥쪽으로 확 뒤집으며 뻗어 주변의 먹이를 붙잡는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순식간에 뒤집기를 할 수 있는 나노물질을 설계했다. 즉 긴 사슬 모양의 분자의 한쪽 끝은 소수성(물을 싫어하는 성질)인 탄화수소로, 다른 쪽 끝은 암모늄과 실리콘-알루미늄 산화물의 염 형태로 만들었다.

이 분자를 산성의 물에 넣으면 소수성 부분은 서로 뭉치고(물을 싫어하므로) 암모늄과 실리콘-알루미늄 산화물 염은 양이온 형태가 되면서 서로 밀친다. 그 결과 마이셀(micelle)이라고 불리는, 지름 50㎚(나노미터. 1㎚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공 모양 나노구조물이 만들어진다. 나노구조물의 안쪽은 소수성 부분이 바깥쪽은 양이온 부분이 배치돼 있다.

이 나노구조물을 정수할 물에 넣어주면 순간적으로 마이셀의 안팎이 뒤집어지면서 소수성 부분이 바깥으로 뻗어 나가고 양이온 부분이 안쪽으로 몰린다. 이 모습이 말미잘이 먹이를 포획할 때 촉수의 변화와 비슷해 연구자들은 ‘액티니아 유사 마이셀 나노응집제(AMC)’라고 이름을 지었다.

응집제란 정수 과정에서 넣어주는 물질로, 물속의 오염물질을 포획해 덩어리로 가라앉히는 물질이다. 콩물에 간수를 넣어주면 단백질 덩어리가 생기는데, 콩물에 녹아있던 단백질이 오염물질이라면 간수가 바로 응집제다. 그런데 응집제가 나노구조물이라 나노응집제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질산염 제거에 특히 뛰어나

연구자들이 AMC와 기존 정수 과정에서 쓰이고 있는 세 가지 응집제를 대상으로 정수 능력을 비교한 결과 AMC가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기존 응집제들은 오염물질의 유형에 따라 제거 능력이 들쑥날쑥한 반면 AMC는 대부분 90% 이상 제거했다. 특히 다른 응집제들은 10%도 제거하지 못하는 질산염까지 90% 이상 없앴다.

‘액티니아 유사 마이셀 나노응집제(AMC)’의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모식도다. 오염된 물에 AMC를 넣어주면(왼쪽) 바깥쪽 양이온 껍질에 콜로이드와 미세입자가 달라붙으면서 구조가 뒤집혀 안쪽 소수성 부분이 노출되며 물에 녹아있던 유기물질과 무기물질이 달라붙는다(오른쪽). 그 결과 뒤집힌 AMC와 오염물질 혼합물의 용해도가 떨어져 서로 뭉쳐 덩어리로 침전되면서 물이 깨끗해진다.  ⓒ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액티니아 유사 마이셀 나노응집제(AMC)’의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모식도다. 오염된 물에 AMC를 넣어주면(왼쪽) 바깥쪽 양이온 껍질에 콜로이드와 미세입자가 달라붙으면서 구조가 뒤집혀 안쪽 소수성 부분이 노출되며 물에 녹아있던 유기물질과 무기물질이 달라붙는다(오른쪽). 그 결과 뒤집힌 AMC와 오염물질 혼합물의 용해도가 떨어져 서로 뭉쳐 덩어리로 침전되면서 물이 깨끗해진다. ⓒ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연구자들은 말미잘 촉수가 연상되는 뒤집기가 그 비결임을 밝혔다. 즉 정수할 물에 AMC를 넣으면 콜로이드와 미세입자가 AMC 바깥쪽의 양이온 부분에 달라붙으면서 전기적으로 중화되면서 구조가 불안정해져 뒤집힌다.

그 결과 소수성 부분이 바깥으로 노출되면서 탄소로 이뤄진 유기화합물 분자들이 달라붙을 공간을 마련해 준다. 즉 AMC를 이루는 사슬분자의 소수성 부분이 말미잘의 촉수인 셈이다.

이렇게 뒤집힌 AMC의 안팎으로 오염물질이 들러붙으면서 전기적으로 중성이 되고 그 결과 용해도가 떨어지면서 서로 뭉쳐 덩어리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이 덩어리만 걸러 없애면 다양한 오염물질을 90% 이상 없앤 정수한 물이 나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AMC가 저비용 고효율의 정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기술들 덕분에 지구촌 6억6000명의 사람들이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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