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막히게 하는 ‘스피치 재머’

2012년 이그노벨상 수상작(중)

“처음에는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점차 생각에 빠지게 하는 연구”에 상을 주는 ‘이그노벨상(Ig Nobel)’의 2012년 수상자들이 발표되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과학유머잡지 ‘에어(AIR)’는 지난 9월 총 11개 부문에 걸쳐 상을 선정했고 ‘짝퉁 노벨상’이라는 별명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밝은 얼굴로 참석해 시상식을 빛냈다. 지난번에 이어 △유체역학상 △음향학상 △의학상 △특별상을 살펴본다.

유체역학상 : 컵을 들고 걸으면 꼭 흘리는 이유

커피에 관한 비밀을 알아낸 연구가 유체역학상을 받았다.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Rouslan Krechetnikov), 한스 메이어(Hans Mayer) 등 러시아와 미국의 과학자들은 ‘커피를 들고 걸으면 꼭 흘리게 되는 이유(Walking With Coffee: Why Does It Spill?)’라는 논문을 학술지 ‘피지컬 리뷰 E(Physical Review E)’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http://pre.aps.org/abstract/PRE/v85/i4/e046117)

▲ 커피가 든 컵을 들고 걸으면 걸음의 속도, 컵의 모양과 크기, 커피의 양이 상호작용해 반드시 내용물을 흘리게 되어 있다. ⓒPHYSICAL REVIEW E

누구나 커피나 음료가 담긴 컵을 들고 걸어가다 내용물을 흘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걸음걸이에 따라 출렁이는 정도가 심해져 결국 손이나 옷을 적시게 된다. 요동역학(sloshing dynamics)의 선구자 핸리 에이브럼슨(Hanley Abramson)은 1967년 NASA 기술보고서에서 “액체가 담긴 작은 용기는 조심해서 옮기지 않으면 반드시 흘리게 된다”고 주장했지만 그 원리가 증명된 적이 없다.

수상자들은 다양한 조건에서 실제 실험을 진행하고 △걸음걸이에 대한 물리학적 분석 △커피 음료의 액체적 특질 △컵의 크기라는 세 가지 조건을 밝혀냈다. 자세를 꼿꼿이 유지한 채 직선 방향으로 걸어도 손은 앞뒤로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컵에는 앞뒤, 위아래, 회전 등 다양한 움직임이 동시에 전달돼 요동 현상이 발생한다. 요동의 크기와 주기는 걷는 속도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이는 오일러-라그랑주(Euler-Lagrange) 방정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연구의 결론은 단순하다. 일정량 이상의 커피가 든 컵을 들고 걸으면 반드시 흘릴 수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 마시고 걸어가든가 아니면 컵을 더 큰 것으로 바꿔야 한다. 쓸데없는 연구 같지만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음향학상 : 말문 막히게 만드는 기계 ‘스피치 재머’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어 말문이 막히게 하는 기계를 발명한 일본인 과학자들이 음향학상을 받았다. 카즈타카 쿠리하라(Kazutaka Kurihara)와 코지 츠카타(Koji Tsukada)는 ‘스피치 재머: 지연 청각 피드백을 이용한 인공 언어장애 유발 장치(SpeechJammer: A System Utilizing Artificial Speech Disturbance with Delayed Auditory Feedback)’라는 논문을 작성해 온라인 논문초고 등록사이트 ‘아카이브(ArXiv.org)’에 공개했다. (http://arxiv.org/abs/1202.6106)

▲ ‘스피치재머’는 말소리를 수십~수백분의 1초 후 되쏴주어 혼란을 유발해 입을 다물게 하는 기계다. ⓒarxiv.org

기계의 원리는 간단하다. 들리는 소리를 녹음했다가 수십에서 수백분의 1초 후에 그대로 다시 들려주는 것이다. 자신의 입에서 나간 소리가 미묘한 차이로 지연되어 다시 귀로 들어가면 언어 능력에 혼란이 생겨 말을 이을 수 없다. 뇌파를 조종하거나 전자파를 발산하지 않고 단순히 소리를 되쏴주는 기계이니 신체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직은 기계의 크기가 사람 머리보다 커서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개량을 통해 크기를 줄인다면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사람을 쫓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학상 : 장 세척 소홀히 하면 뱃속 가스 폭발한다

프랑스 과학자 에마뉘엘 벤수쌍(Emmanuel Ben-Soussan)과 미셸 앙토니에티(Michel Antonietti)가 대장 속 가스로 인해 환자의 배가 폭발할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 이그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전기소작술을 이용한 치료용 대장내시경 중 결장 내 가스 폭발 가능성(Colonic gas explosion during therapeutic colonoscopy with electrocautery)’이라는 논문을 학술지 ‘세계 위장병학 저널(World Journal of Gastroenterology)’에 게재했다. (http://www.wjgnet.com/1007-9327/13/5295.pdf)

▲ 1959년부터 2006년까지 모두 50건의 장내 가스 폭발 사고가 있었고 장 천공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World Journal of Gastroenterology

대장의 일부인 결장의 이상을 검사하려면 흔히 대장내시경을 실시한다. 그리고 종양 등이 발생해 문제가 생긴 부분은 강한 열로 지지는 전기소작술이나 아르곤 플라스마 소작술(APC)로 치료한다. 그러나 이 두 과정은 치명적인 위험이 따른다. 흔하지는 않지만 뱃속에 가득 찬 가스로 인해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상자들은 1952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된 관련논문을 모두 조사해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장 세척을 꼼꼼하게 또 충분히 실시한다면 시술 중 가스 폭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특히 마니톨(mannitol)이나 소르비톨(sorbitol)처럼 메탄이 포함된 세척액 사용을 금하고, 소작술을 시행하기 전에는 폴리에틸렌글리콜(PEG)이나 인산나트륨(NaP) 용액으로 장 내부를 깨끗이 세척하는 것이 비결이다.

특별상 : 예전 누락 밝혀져 이그노벨 물리학상 2관왕 차지

올해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지프 켈러(Joseph Keller) 교수가 특별상도 수상했다. 1999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 ‘비스킷에 얽힌 물리학(Physics takes the biscuit)’으로 렌 피셔(Len Fisher) 교수가 당시 물리학상을 받았지만, 이론적 토대가 된 1986년 논문에 켈러 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http://pof.aip.org/resource/1/pfldas/v29/i12/p3958_s1)

▲ 조지프 켈러 교수는 비스킷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뒤늦게 인정받아 특별상을 받았다. ⓒNature

원 논문은 홍차에 비스킷을 적셔 먹을 때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다. 비스킷은 곡물 가루를 당분으로 접착시킨 과자이며 뜨거운 액체가 닿으면 당분이 녹아 형태가 뭉개진다. 홍차에 비스킷을 너무 얕게 담그면 딱딱한 부분을 씹어야 하고 너무 깊게 담그면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가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피셔는 복잡한 방정식까지 적용해 계산한 끝에 “진저넛(Gingernut)이라 불리는 생강비스킷은 3초, 다이제스티브(Digestive)라는 두터운 비스킷은 8초 동안 담갔다가 꺼내 먹을 때 가장 맛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과학이 얼마든지 부드럽고 재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배경 이론을 제공해 준 켈러 교수는 올해 특별상을 받았고 이로써 이그노벨상 2관왕에 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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