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말라리아 약명이 ‘퀸’으로 끝나는 이유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85)

미국 FDA는 지난달 30일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19 감염증의 응급 치료약으로 승인했다. 미국 대통령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극찬했고, 미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파우치 소장은 예단하기에 이르다며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FDA는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오래된 말라리아 약이다. 클로로퀸 외에도 다른 말라리아 약들이 많은데, 그 이름들은 대부분 ‘퀸’으로 끝난다. 이 퀸은 무슨 뜻일까?

인류가 처음 쓴 말라리아 특효약은 남아메리카 인디오의 전통 처방이었던 키나(quina) 나무껍질이다. ‘기나수피(幾那樹皮)’ 혹은 ‘기나피(幾那皮)’로 번역되기도 한다.

인디오 말로 ‘키나’는 ‘최고의 나무껍질’이란 뜻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 즉 풀뿌리와 나무껍질에서 약재를 찾던 시절에 키나 나무껍질은 자연이 내려준 최고의 생약이었다는 말이다. 페루에서 선교를 하던 예수회 수사가 이것을 유럽으로 전하면서 예수회 나무껍질(Jesuit’s Bark), 페루산 나무껍질(Peruvian bark), 신코나 나무껍질(cinchona bark)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신코나(cinchona)는 1742년에 린네가 키나나무에 붙인 학명이다. 린네는 이 귀한 나무에 스페인 지명 친촌(Chinchón)을 라틴어식으로 고쳐 신코나로 명명했다. 친촌은 지금의 마드리드에 속한 곳이다. 이곳의 백작이 식민지 페루의 총독으로 있을 때, 그의 아내가 말라리아에 걸렸고 키나나무껍질을 먹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린네 덕분에 친촌은 말라리아 역사에서 꽤 유명한 곳이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이것은 말라리아가 만연하던 유럽에서 정말 반가운 약이었다. 하지만 손에 넣기 어려웠다. 예수회가 납품하는 스페인 왕실이 독점했기 때문에 아주 비싼 가격이 매겨졌다.

한편 영국과 네덜란드는 밀반출된 키나 나무 씨앗을 이용해 자국 식민지에서 직접 재배를 시작했다. 영국령 동인도(지금의 인도)와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 재배에 성공하자 키나 나무껍질 공급에도 숨통이 트였다.

유럽 열강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본국에 만연한 말라리아도 문제였지만 열대 식민지 진출을 위해서도 키나 나무껍질이 반드시 필요했다. 말라리아에 대한 대책 없이 식민지 개척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 약리학자는 1820년에 키나 나무에서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약효 성분을 추출했다. ‘키나(quina) 나무+성분(-ine)’이란 뜻으로 ‘quinine ‘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것이 키니네(혹은 퀴닌)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주둔군에 키니네를 보급했고, 효과가 좋았다.

열대지방에 식민지가 있는 독일도 키니네가 필요했다. 영국과 네덜란드와 달리 자국 식민지에서 충분한 양을 구하기 어려웠던지라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수급은 더 어려워졌다. 말라리아 때문에 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전력에 구멍이 생길 정도였다.

전쟁이 끝나자 독일은 이 아픔을 잊지 않고 키니네를 합성할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다. 식민지도 빼앗긴 터라 더 이상 자연산 키니네를 얻기 어려워지자 화학을 이용해 키니네를 합성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독일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화학강국이었으니까 충분히 가능했다. 덕분에 말리리아 약들이 많이 만들어진다.

독일 B제약사의 연구원이던 로엘(Wilhelm Roehl)은 자연산 키니네 화학에서 중요한 ‘퀴놀린(quinoline)’구조를 이용해 수백 가지의 화합물을 만들고 약효 실험을 진행했다. 1924년 파마퀸(pamaquine/pamaquin)의 항말라리아 효과를 발견했고, 1927년 B제약사에서 플라스모퀸(plasmoquine/plasmoquin)이라는 상품으로 발매했다.

파마퀸은 para+amino+methoxy(+a)+quinine에서 온 이름이고, 플라스모퀸은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충인 플라스모디움(plasmodium)과 키니네(quinine)의 이름을 합쳐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파마퀸은 키니네를 따라가지 못했다. 많은 양을 쓰면 부작용이 심했다. 로엘은 다시 퀴놀린 구조를 뒤졌다. 이번에는 메파크린(mepacrine) 혹은 퀴나크린(quinacrine)으로 불리는 약을 만든다. 메파크린은 me(thoxy)+p(entane)+acr(id)ine에서 온 이름이고 퀴나크린은 quin(ine)+acr(id)ine에서 온 이름이다. 1932년에 아타브린(atabrine/atabrin)이라는 상품명으로 발매했다. 미국에도 수출했다.

메파크린은 키니네만큼 우수한 약이었다. 하지만 피부가 노랗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 부작용을 이용해 중일전쟁 때 중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미국 자원병들은 자신의 피부색을 노랗게 물들이기 위해 메파크린을 애용했다.

하지만 이것이 맘에 안 들었던 독일인들은 퀴놀린 구조를 이용해 존토킨(Sontochin)과 클로로퀸(chloroquine)을 합성한다. 둘 다 약효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부작용이 덜한 존토킨이 먼저 상품으로 출시되었다. 클로로퀸은 독성 우려로 당장에는 상품화되지 않았다가 1950년이 되어서야 레조킨(Resochi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발매됐다. 클로로퀸은 염소(chloro)+퀴놀린quin(olin)의 합성어이고, 레조킨은 reso(rcinol)+(olin)의 합성어다. chinolin과 quinoline은 같은 뜻이다.

키니네의 화학 구조를 통해 합성 말라리아약들이 만들어진다. © 위키백과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키니네의 수요는 다시 급증한다. 전장이 아시아, 태평양, 아프리카 지역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은 말라리아 약에 느긋한 반면, 연합국이 키니네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자연산 키니네 물량의 95%를 공급하던 자바(인도네시아)를 일본군이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중요한 군수품인 키니네를 연합군에게 수출할 일본이 아니지 않은가? 별문제 없이 자바산 키니네에 의존해왔던 연합국들은 당장 키니네 확보가 어려워지자 하는 수없이 독일처럼 화학 연구실에서 키니네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은 메파크린을 합성했지만 독일군의 존토킨보다는 뒤지는 약이었다. 말라리아 약의 전쟁에서는 독일이 연합군보다 여전히 한 수 위였다. 그러던 중 북아프리카에서 생포한 독일군 포로를 통해 존토킨을 입수한다. 미국은 이것을 분석해 새로운 말라리아 약을 만들어냈는데 바로 클로로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클로로퀸을 양산했고, 독일은 레조킨을 양산했다. 둘은 같은 약이다.

독일산 레조퀸. © 위키백과

미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클로로퀸과 구조가 유사한 아모디아퀸과 파마퀸 유도체에서 프리마퀸(primaquine)을 내놓았다. 라틴어로 프리마(prima)는 최고라는 뜻이다.

하지만 댄싱 퀸, 아니 클로로퀸도 1970년대가 되면 내성이 생겨 약효가 많이 떨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그레이드된 메플로퀸(mefloquine)이 나왔다. 이름은 화학식me(thyl) + fl(uor)o + quin(olin)e에서 따왔다.

우리도 개항기에 중국을 통해 키니네를 들여왔다. 중국에서는 ‘찐지나(金鷄蠟)’로 불렀고 우리는 ‘금계랍’이라 불렀다. 당연히 학질(말라리아) 치료약으로 썼지만 해열진통제로 오남용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쓴맛을 이용해 아기들 젖떼는(離乳) 약으로도 썼다.

클로로퀸 역시 말라리아 외에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루푸스 같은 병에도 쓴다. 메르스(MERS)에도 일부 효과를 보았다. 이번에 코로나19에도 쓰게 되면 적용 사례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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