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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마늘 주사로 불리는 각기병 치료제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70)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맘때면 술자리가 많아진다. 반가운 이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감당 못 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현상’을 겪는 사람들도 생긴다. 전문가들은 이런 알코올성 ‘블랙아웃’이 잦으면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말하곤 한다.

세르게이 세르게비치 코르사코프.  ⓒ 위키백과 자료

세르게이 세르게비치 코르사코프. ⓒ 위키백과 자료

세르게이 세르게비치 코르사코프(Sergei Sergeivich Korsakoff, 1854~1900)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러시아를 대표하는 신경-정신의학자이다. 정신병의 원인을 단순히 정신의 문제로만 몰아가지 않고, 정신이 발생하는 곳 즉, 두뇌에서 문제를 찾는 연구를 했다.

코르사코프는 특히 알코올 중독에 관심이 많았다. 환자들이 정신병 증상에 더해 신경 마비 증상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환자들의 팔다리가 가늘어지는(근육 위축) 현상은 정신병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신경 마비 때문으로 보았다.

아울러 코르사코프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건망증이 심하며 거짓말을 잘 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 거짓말은 기억의 공백을 그럴듯한 다른 이야기로 채우는 것이 특징이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뜻으로 작화증(作話症)으로 부른다.

코르사코프는 알코올 중독을 정신과 신경이 함께 망가진 것으로 보고 알코올로 인한 ‘중독성 정신-두뇌 질환’으로 결론지었고 이것이 바로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신경의 문제는 제외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건망증과 작화증을 말한다(amnesic-confabulatory syndrome). 이런 건망증은 초기에 잘 치료해서 치매로 진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코르사코프 자신은 몰랐겠지만, 코르사코프 증후군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도 걸릴 수 있다. 술을 입에 댈 수 없는(!) 전쟁포로나 교도소 수감자, 입덧이 심한 임신부, 심한 장 질환이나 거식증 환자도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걸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실한 반찬으로 상징되는 영양 부족, 영양소 흡수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걸리는 걸까?

그 답은 지구 반대편에서 밝혀진다. 뜻밖에도 우리가 매일 먹는 쌀 속에 숨어있었다.

아시아인들은 1만 년 이상 쌀농사를 지었다. 인도와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쌀농사 덕분에 지금도 아시아인들에겐 쌀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논에서 수확한 벼는 거친 겉껍질로 둘러싸여 있어 그대로 먹을 수가 없다.  벼(열매)의 겉을 싸고 있는 거친 껍질(왕겨)을 벗겨낸 것이 짙은 색의 현미(玄米)다. 현미는 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된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쌀겨’와 ‘씨눈’을 깎아내는데 이것이 흰쌀(白米)이다.

이렇게 벼 → 현미 → 백미로 만드는 과정을 도정(搗精)이라 하고 도정으로 깎여 나가는 쌀겨에는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고, 쌀(씨) 눈에는 지방이 풍부하다. 마지막으로 남는 흰쌀은 탄수화물 덩어리인 ‘씨젖’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도정미로 밥을 지어먹는 아시아인들이 영양 불균형에 빠지지 않으려면 고기, 야채 등과 함께 먹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반찬’이라 부른다. 도정이 많이 된 쌀밥만 먹고 다른 영양소를 섭취하지 않는다면 영양실조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각기병(脚氣病)이라 부른다.

현미와 백미. 자세히 보면 쌀(씨)눈도 안 보인다.  ⓒ 박지욱

현미와 백미. 자세히 보면 쌀(씨) 눈이 안 보인다. ⓒ 박지욱

각기병은 힘이 없고 피로를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점점 다리가 부어오르고, 다리에도 힘이 없어 다리를 질질 끌게 되면서 걸음도 나빠진다. 이 다리 증상 때문에 각기병(脚氣病)으로 불린다. 더 진행하면 결국 신경계와 심장이 망가져 목숨을 잃는 무서운 병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병을 ‘beriberi(베리베리)’라 불렀고 이 이름이 서양에 그대로 전해졌다.

각기병은 아시아에서 드물지 않았다. 일본, 말레이반도, 필리핀 군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각기병으로 해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1870년대 증기식 도정기계가 도입되면서 ‘더 잘 깎아내기’ 시작한 것과 각기병은 관련성이 컸다. 당시 도정미는 가격이 저렴해 농민, 병사, 죄수들에게 먹였는데, 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된 반찬을 먹지 못했고, 이는 쉽게 각기병에 걸리곤 했다.

1879년 네덜란드 의사 반 레인트(Van Leent)는 한배를 탄 선원들이라도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 선원들만 각기병에 걸리는 것을 보고 그들이 주식으로 삼는 쌀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들의 쌀을 조사해 보아도 오염원이나 중독성 물질을 찾지는 못했다.

1890년 동인도에서 근무하던 네덜란드 군의관이자 세균학자 에이크만(Christiaan Eijkman, 1858~1930)은 도정미를 먹여 키운 닭이 각기병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닭을 키우던 사람이 바뀌면서 이전에 먹던 현미 대신 도정미를 먹인 후 각기병에 걸린 것을 알아차린 에이크먼은 다시 닭에게 현미를 먹여 각기병을 치료했다.

에이크먼은 현미와 도정미의 차이 즉, 도정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겨’에 병을 ‘예방’하는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병에 걸린 닭에게 현미 대신 ‘겨’를 먹였다. 물론 닭은 각기병에서 회복되었다,

에이크먼은 자신의 결론을 재확인하기 위해 동인도에 있는 100개 이상의 감옥에 수감된 죄수 25만 명을 조사한다. 도정미를 먹는 죄수들이 현미를 먹는 죄수들에 비해 각기병이 무려 3900배나 발병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에이크먼과 풍크.  ⓒ 위키백과

에이크먼과 풍크. ⓒ 위키백과

1911년에는 폴란드 생화학자 풍크(Casimir Funk, 1884~1967)는 새(鳥)의 신경염을 고쳐준 물질을 분리해 ‘생명(vita)’에 필수적인 ‘아민(amine)’이란 뜻으로 ‘비타민’으로 불렀다. 비타-아민 아니, 비타민은 음식 속에 아주 조금만 있지만 이것이 부족하면 병을 일으킨다.

1926년에는 쌀겨에서 신경염을 예방하는 물질을 분리했다. 이것으로 신경염을 치료할 수도 있고, 이것을 미리 투여하면 신경염이 예방된다는 것도 알았다. 1931년에는 효모에서 이 물질을 추출했고, 1936년에는 화학적으로 합성도 했다.

이 물질은 ‘신경염 예방 비타민’이란 뜻으로 ‘아뉴린(aneurin, anti-neuritic vitamin)’으로 불렸다가, 티아민(thiamin, 황(thio) 함유 아민이란 뜻)을 거쳐 오늘날의 티아민(thiamine, e가 추가)이 되었다.

티아민의 유도체인 푸르설티아민(Fursultiamine)은 각기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질친화성을 높인 물질로, 혈관 주사로 맞으면 코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황 성분 때문에 나는 것으로 마늘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냄새가 인상적이어서 ‘마늘 (냄새) 주사’라고 부른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마늘 주사에도 마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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