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루스벨트의 뉴딜과 과학기술 발전 전략

[TePRI Report] Zoom Out

1932년 32대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대공황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공화당 허버트 후버 후보는 점진적 경제 회복을 선호했던 반면,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후보는 연방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과감한 해결 방법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새로운 합의(New Deal)’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루스벨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수많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산업생산 능력제고와 함께 시급한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는 공헌했으나 대공황의 막을 내리지 못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좌파와 우파 양쪽의 압력에 직면하게 되자 새로운 경제 및 사회적 조치를 담은 제2차 뉴딜정책을 1935년부터 추진했다.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위키피디아

제2차 뉴딜정책은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해 실업률을 낮추고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933년 연방긴급구조법을 기반으로 FERA(Federal Emergency Relief Administration)을 설치해 약 2000만 명에게 공공시설 확충과 국유지 개발을 담당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실업문제가 개선되지 않자 1933년 FERA는 CWA(Civil Works Administration)를 설치하고 8억 달러를 투입해 430만 개의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으나, 1935년 12월 설치근거법 시효 만료로 업무가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과 SSA(Social Security Admin- istraion)으로 이관되었다.

제2차 뉴딜의 핵심 실업구제 기관인 WPA는 복지수당보다 일거리를 제공하려는 시도였다. WPA가 폐지된 1943년까지 약 110억 달러 규모의 연방 정부 지출로 850만 명가량을 취업시켰으며, 도로 104만 6000km, 공공 건축물 12만 5000호, 다리 7만 5000개, 공원 8000개, 공항 800개 이상을 건축해 900만 명이 도움을 받았다. 루스벨트 뉴딜정책의 성공 여부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대공황은 1939년까지 지속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막대한 전쟁 물자 공급을 미국이 담당하면서 마비 상태에 있던 미국 산업 활성화가 대공황을 빠져나오게 했다는 논의도 있다.

뉴딜의 일환으로 명명되진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4년 10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직접 작성한 4개의 질문이 담긴 질의서를 과학기술 고문인 바니바 부시에게 전달했다. 부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계획관리 추진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메멕스(MEMEX)라고 불리는 기억 확장 개념을 최초로 주장해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의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바니바 부시가 루스벨트의 요청에 따라 작성한 보고서는 현재까지도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기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위키피디아

 

[참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질의서(1944. 10)

(1) 전쟁 중 연구되고 개발된 과학지식이 전쟁 후 어떻게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가?

(2) 계속적인 질병 퇴치를 위해 의학 연구 프로그램이 어떻게 설계될 수 있는가?

(3) 공공과 민간 연구기관을 연방정부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

(4) 미래 우수 연구인력 확보를 위해 과학적 재능이 있는 젊은이들의 효율적 지원 프로그램은 어떻게 제안될 수 있는가?

루스벨트의 질의서는 과학기술 분야 진흥이 아니라, 사실은 재임 기간 추진한 뉴딜 정책과 같이 제2차 세계대전에 많은 역할을 수행한 과학 기술이 경제와 산업 진흥을 위한 수단이란 인식하에 작성되었다. 결과적으로 1945년 7월 발간된 ‘과학-끝없는 프런티어(Science-The Endless Frontier)’ 보고서는 미국국립과학재단 설립 근거가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기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바니바 부시의 보고서 ‘과학-끝없는 프런티어’ ⓒUnited States.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1980년대 이후 부시 보고서에서 제시된 선형모델과 연구자의 자율성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도 했으나, 1998년 미국 하원은 도전적 연구능력을 강조한 부시의 철학이 계승돼야 함을 인정하고 창의적, 도전적 연구 촉진을 위한 조치를 권고하기도 했다.

올해는 해당 보고서가 발간된 지 75주년이다. 아쉽게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5년 4월 12일에 사망해 해당 보고서를 보지는 못했지만, 바니바 부시는 보고서 서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겨 뉴딜과의 연속성을 암시했다.

“개척자 정신은 여전히 미국에서 활발합니다. 과학은 개척자들에게 그들의 역할을 수해할 도구를 가진 도전자들에게 미지의 탐사 공간을 제공합니다. 국가와 국민 개인들에게 이러한 탐험의 보상은 위대합니다. 과학의 발전은 국가 안보, 더 나은 건강과 일자리, 삶의 질과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하나의 필수적인 열쇠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에 대응해 경제침체를 극복하고 구조적으로 경제를 대전환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2025년까지 총 160조 원을 투자해서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를 넘어 다음 정부로 이어지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한국판 뉴딜의 양축은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 그리고 양 뉴딜의 융복합이 핵심이다. 결과로는 D.N.A(Data, Network, AI) 기반의 똑똑한 나라, 사람-환경-성장이 조화되는 그린선도 국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더 보호받고 더 따뜻한 나라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계획에 제시된 목표를 위한 추진체계만 보일 뿐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앞으로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포스트 코비드-19를 대비하기 위한 과학기술정책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길 바라본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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