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으로 인한 사회격차 심화될 것”

[인터뷰] 'SF영화와 로봇 사회학' 펴낸 민경배

# 1 영화 <아이, 로봇>에 나오는 주인공은 로봇을 혐오한다. 사고로 자신이 탄 차량과 어린아이가 탄 차량이 함께 물에 빠졌을 때 로봇이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를 구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로봇 입장에서는 프로그래밍된 대로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을 구한 것일 뿐이다.

# 2 2015년 3월 일본 치바현의 어느 사찰에 로봇 강아지를 안고 온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든다. 소니가 1999년 개발해 2006년 단종시킨 애완용 로봇 아이보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다. 아이보는 7년동안 15만대 가량이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부품 부족을 이유로 소니가 수리 서비스를 중단하자 이를 슬피 여긴 주인들이 합동 장례식을 마련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절하고 기도하고 슬퍼하며 진짜 사람을 떠나보낸듯 여겼다.

# 3 지난해 4족 보행 로봇견 스팟을 개발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스팟이 넘어져도 금새 일어나 보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비디오에서 직원들은 지나가는 스팟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 비틀비틀 일어나면 또다시 발로 차면서 스팟의 능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뜻밖의 동정심과 공분을 자아낸다. 비록 로봇이지만 인간으로부터 학대받는 모습이 불쌍하며 인간들이 잔인하다는 것이다. 하와이대학의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2007년 로봇을 인격체로 간주하는 로봇 권리장전의 제정을 주장했다.

사이버문화와 디지털사회를 깊이 연구해 온 민경배 교수는 이번 저서를 통해 로봇의 사회적 의미를 SF영화로 풀어냈다. ⓒ 민경배/ ScienceTimes

사이버문화와 디지털사회를 깊이 연구해 온 민경배 교수는 이번 저서를 통해 로봇의 사회적 의미를 SF영화로 풀어냈다. ⓒ 민경배/ ScienceTimes

로봇은 이처럼 현재와 미래, 현실과 공상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권과 마찬가지로 로봇권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 것인가, 로봇을 가진 자와 아닌 자의 격차(Robot Devide)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로봇이 사고를 쳤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섹스봇의 등장으로 인류의 재생산 체제가 위협을 받을 것인가…

그러나 현재 로봇 담론은 기술 개발, 산업 육성, 그리고 일자리 대체 등 일부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학자인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최근 <SF영화와 로봇 사회학>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리얼스틸>부터 <엑스 마키나>, <트랜센던스>까지 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총 10편의 SF영화를 통해 도구로서의 로봇, 공포로서의 로봇, 동반자로서의 로봇 등 다양한 사회적 관점으로 로봇을 바라본다.

오랜 기간 사이버 문화와 디지털 사회를 연구해온 저자의 학문적, 체험적 경험을 바탕으로 로봇 시대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민 교수는 로봇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로봇과 공존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융합적 연구들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를 만나 사회학자가 바라보는 로봇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 90년대 말부터 사이버 문화를 연구하면서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이 지점까지 왔다. 머지 않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새로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로봇을 말하는 사람들은 공학자나 과학자 뿐이다. 로봇 윤리에 대한 논의는 일부 있지만 사회과학적인 접근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으름을 부리거나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부터라도 시작해보자는 의미였다.

왜 SF영화를 매개로 삼았나.

= 우리가 열광하면서 본 SF영화는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990년대 나온 <토탈리콜>에서 나온 전신 투시 검색대라든가 1993년작 <데몰리션 맨>에서 여주인공이 핸들을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 안에서 화상전화를 하는 장면들은 이미 현실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또 어떤가. 여기 나오는 3명의 예지자는 빅데이터의 또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영화는 다가올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텍스트다. 현존하는 로봇이나 진화된 로봇 이미지들은 당초 개발자들의 연구실이 아닌 SF 영화에서부터 먼저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민교수는 책에서 이 부분을 ‘로봇에게 SF영화란 자신들을 잉태한 자궁이며 동시에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향과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SF영화를 통해 보다 더 생생하게 로봇을 이해하고 인간이 로봇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지를 성찰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구로서의 로봇, 공포로서의 로봇, 협력자로서의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의 관점이 소개돼있다. ⓒ 조인혜/ ScienceTimes

이 책에는 도구로서의 로봇, 공포로서의 로봇, 협력자로서의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의 관점이 소개돼있다. ⓒ 조인혜/ ScienceTimes

 

준비는 어떻게 했나. SF영화를 많이 봤을 것 같은데.

= 원래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SF다. 예전에 죄다 봤던 영화들인데 책을 쓰기 위해 여러 번 다시 봤다. 수십 편을 다시 보고 그 중에서 로봇에 대한 관점이 각각 다르고 사회적 의미가 강한 영화 10편을 골랐다. <공각기동대>와 같은 애니메이션도 포함시킬까 했으나 워낙 심오한 해석들이 많아 입문서로 쓰고자 한 이번 책에는 넣지 않았다. 6개월동안 논문과 자료 등도 60여편쯤 읽었다. 처음에는 묵직한 연구서를 내려고 하다가 문제를 던지는데 주안점을 둔 대중서로 방향을 바꿨다. 앞으로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을 접목시킨 고민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로봇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 로봇은 등장 그 자체로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로봇 종주국인 미국은 국방, 탐사의 도구로 로봇이 필요했다.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은 노인을 케어하고 도와주는 소셜 로봇이 가장 중요하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을 위해 달려온 국가답게 산업용 로봇이 강하다. 아마도 제 3세계에서 필요한 로봇은 사뭇 다를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적 구조와 필요에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로봇이 출현할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로봇이 필요한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로봇이 가져올 미래상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 단정하기 어렵다. 책에서도 문제제기만 할 뿐 어떤 결론을 내지 않았다. 대체로 공학자들은 지나치게 기술 중심으로 흐르며 낙관하고 있는데 좀 위험해 보인다. 물론 당위적인 방향은 인간과 로봇이 협업해서 잘 공존하는 것이다. 로봇은 생명체는 아니지만 존재물로서 권리는 인정돼야 한다. 가령 보행 로봇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 차별이나 폭행을 당하면 안된다. 이때 로봇권은 인격권이 아니라 로봇 소유자의 재산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로봇 디바이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책에도 썼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우리는 전례없이 부유해졌지만 모든 부가 로봇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사회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아이언맨>에 나오는 최첨단 외골격은 일반인은 꿈도 못꾸는 장비다.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로봇을 통해 신체 능력을 확장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이미 계급에 따라 삶의 질과 수명 격차가 있지만 로봇은 이를 훨씬 더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다소 도발적이지만 인공지능 정당은 어떨까, 국회의원이 필요할까라는 질문도 해볼 수 있다.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입력한 다음 빅데이터 분석으로 주권자의 요구를 반영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며 로비도 없고 몸싸움도 없다. 공무원 로봇, 사회복지사 로봇 등도 충분히 가능한 개념이다.  이것 역시 SF로 들리겠지만 로봇이 가져오는 미래는 우리가 그려가는 미래이기도 하다.

민경배 교수는 앞으로 공학자와 기술자는 물론 법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로봇 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 민경배/ ScienceTimes

민경배 교수는 앞으로 공학자와 기술자는 물론 법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로봇 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 민경배/ ScienceTimes

앞으로 어떤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나.

= 로봇 사회학은 이제 시작일 뿐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내년에는 사회학회 내에 로봇분과를 만들어 이런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로봇 시대를 잘 준비하려면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로는 안된다. 로봇공학자, 과학자는 물론 법학자, 정치학자, 행정학자, 사회학자 등 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학계, 산업계, 정부 등의  전문가가 함께 모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필요한 법을 개정하고 하나씩 준비해나가야 한다.

인터넷이 태동할 때 인프라 구축에만 신경을 쓰느라 법제나 문화, 리터러시 측면을 등한시했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로봇 개발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 또 로봇을 배척하는 그룹과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는 그룹,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그룹으로 나눠 로봇과 함께 지내도록 한 다음 이후 의식과 행동 변화를 추적하는 실험연구도 흥미를 갖고 있다.

민경배 교수는 고려대 사회학과에서 정보사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말 사이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인터넷 문화와 디지털 사회에 관한 연구와 강연, 저술 활동을 펼쳤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처음 만나는 사회학>, <인터넷 윤리와 정보보안 대응 전략>, <사이버스페이스의 사회운동>, <뉴미디어와 시민사회>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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