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러시아 우주인은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이름들의 오디세이(62)

2019.10.29 09:41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본 사람이 없으니 도통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정말 궁금하다. 현재까지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과학 이론은 ‘빅뱅’ 이론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인간적인 감정이나 생명의 따스한 온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사람의 입을 통해 수 천년을 전해져 온 전설이나 민담 속의 같은 창세(創世)신화가 더 살갑게 다가온다.

우리 민족의 창세신화는 무엇일까? 단군신화라고? 아니 그것은 고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신화다. 고조선을 세우기 전에 이미 이 땅에 존재했던 세상, 사람, 만물에 대한 창세신화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현존하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창세신화는 함흥 지방에 전해진 ‘창세가’에 있다고 한다. 창세가에 따르면 ‘미륵이 하늘과 땅을 분리한 후 땅 네 귀에 구리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히브리민족의 창세신화처럼 창조주가 등장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중국 신화에도 반고(盤古)라는 창조주가 등장한다.

그리스신화는 세상이 ‘카오스(Khaos)’에서 시작한다고 전한다. 카오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 여기서 처음으로 가이아(Gaea)가 나왔다. 땅의 여신이다. 가이아를 여성으로 보는 이유는 가이아가 출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이아는 제일 먼저 알을 하나 낳는데 여기서 에로스(Eros)가 나왔다.

에로스는 사랑의 원초적인 힘을 상징하며 여기저기를 떠돌며 사랑을 부추긴다. 이 때문이었는지 카오스는 낳는 즐거움을 느껴 에레보스(Erebos, 어둠)와 뉙스(Nyx, 밤)을 낳았다. 이 둘은 다시 아이테르(Aether, 신성한 공기)와 헤메라(Hemera, 빛)을 낳았다.

가이아도 낳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노스(Ouranos, 하늘), 우레아(Ourea, 산), 폰토스(Pontos, 바다)가 가이아의 몸에서 났다. 그뿐만 아니라 땅 속 깊숙한 곳에 타르타로스(Tartaros)도 낳았다. 타르타로스는 동굴로 이루어진 지하세계다.

우라노스는 가이아의 아들이었지만 남편이 되었다. 이 둘 사이에서 티탄족(Titan) 12신, 퀴클롭스(Cyclopes) 셋, 헤카톤케이레스(Hekatoncheires) 셋이 태어났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이 된 카오스는 상태였을까? 기원전 700년경에 활동한 그리스 시인 헤시디오스(Hesodios)는 ‘신통기(Theogony)’에서 그리스어로 ‘아주 큰 구멍’을 뜻하는 이름 카오스(Khaos)를 태초의 상태(카오스, Chaos)에 빗대어 불렀다. 아마 헤시디오스는 태초의 상태를 아주 캄캄하고도 큰 구멍 같은 것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700년이 지나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ilus Ovidius Naso)는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서 카오스는 ‘막막하고 펑퍼짐한 모양이며 아무 형상도 질서도 없는 덩어리’라고 설명한다. 헤시디오스의 ‘캄캄한 구멍’은 로마에서는 ‘무질서한 덩어리’가 되었다. 19세기 말에 푸앵카레가 카오스 이론을 주창했는데, 이를 우리는 ‘혼돈 이론’으로 번역한다. 필자는 카오스 이론이 정말 혼돈(混沌)과 관련된 이론인지 늘 혼란스럽다.

하여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이 카오스로부터 세상이 나왔다. 땅과 하늘이 나누어지고, 산이 솟고 바다가 내려앉고, 땅 아래도 채워졌다. 이제 세상은 무질서한 혼돈이나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반죽 덩어리가 아닌 조화롭게 잘 정리 정돈된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카오스를 대신한 새로운 세상을 ‘코스모스(Cosmos)’라 불렀다. 그리스어로 코스모스(Kosmos)는 질서와 조화를 뜻한다.

코스모스는 많은 이름과 뜻을 남겼다. kosmetike, kosmetikos kosmein 같은 그리스어들은 모두 꾸미다, 차려입다, 치장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에서 cosmetic(화장품)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cosmetic(화장품)과 surgery(수술)이 결합하면 미용(성형) 수술이 된다.

그런데 조화와 질서, 혹은 세상이라는 뜻의 코스모스는 우주(universe)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아마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코스모스를 우주라는 뜻으로 처음 쓴 듯한데, 12세기가 되면 영어에도 우주라는 의미로 등장하기 시작하다가 19세기가 되면 널리 쓰이게 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이전에는 코스모스는 가을 꽃 이름에 불과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이전에는 코스모스는 가을꽃 이름에 불과했다. ⓒ 박지욱

우리나라에서 코스모스는 우주나 세상 혹은 조화라는 뜻보다는 가을 들판에 피는 어여쁜 꽃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컬러 TV 방송이 처음 송출되었던 무렵인 1980년대에 TV에 방영되었던 ‘코스모스(Cosmos: A Personal Voyage)’ 덕분에 ‘코스모스=우주’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다. 물론 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던 미국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쓴 ‘코스모스’가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과학도들에게는 ‘코스모스=우주’ 혹은 ‘세이건이 쓴 우주에 관한 책’이 되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 박지욱

한편, 미국에서는 우주에 보내는 우주여행자를 애스트로넛(astronaut)이라 부르지만 러시아(구 소련 시절부터)는 코즈모넛(cosmonaut)이라 부른다. 코즈모넛은 cosmos(우주)+ naut(항해자)의 합성어로 글자 그대로 ‘우주여행자’이다. 하지만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우주인을 애스트로놋이라 부른다. astro(별)+naut(항해자)로 ‘별나라 여행자’란 뜻이다.

물론 이름만 다르지 하는 일은 똑같다. 하지만 러시아제 소유스 로켓에 나란히 앉아 우주로 나가고 들어오고, ISS에서 동료로 일하면서도 서로를 코즈모넛과 애스트로넛으로 구별해 부른다. 우주 개발에 대한 각 나라의 전통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훈련받아 최초의 우주인이 된 이소연 박사, 아마 애스트로넛이 아닌 코즈모넛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1975년의 아폴로-소유즈 프로그램 우주인. 미국의 애스트로넛과 소련의 코스모넛으로 이루어졌다.  ⓒ 위키백과

1975년의 아폴로-소유스 프로그램 우주인. 미국의 애스트로넛과 소련의 코스모넛으로 이루어졌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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