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마음가짐

[TePRI Report] hiS&Tory

성공과 실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성공한 사람은 존경하고 본받아야 마땅하고 실패한 사람은 외면하거나 손가락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눈앞의 현상을 그냥 지켜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유를 탐구하는 것은 무릇 학문의 길에 나선 삶의 기본자세이므로, 이유가 있다는 믿음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이 너무 강해서 인간사에 늘 끼어들기 마련인 우연의 몫을 깡그리 부정하는 지경에 이를 때 불거진다. 그 지경으로까지 증폭되면, 이유가 있다는 믿음은 삶과 학문에 이로운 길잡이의 구실을 하기는커녕 기득권을 옹호하는 형이상학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만사에 이유가 있다는 믿음의 대표적인 예를 철학사에서 꼽으라면, 세기 후반부에 활동한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을 댈 수 있다. 어떤 사건이든지 그것의 발생을 강제할 이유들이 충족되었기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라이프니츠는 가르쳤다. 통제 불가능한 우연 따위의 개입은 없었다. 성공할 이유를 충분히 갖춘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며, 오로지 그런 사람만 성공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을 명쾌한 계산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철학자 겸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현실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세계였다. 왜냐하면 가능성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되는 것은 일종의 성공인데, 그렇게 성공했다는 것은 다른 세계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유복한 보수주의자의 낙관론을 보는 것은 무리한 시각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디지털 시대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라이프니츠 풍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 게티이미지

그러나 우리가 사는 디지털 시대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라이프니츠 풍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보라! 특정 채널이나 게시물이 순식간에 엄청난 구독자와 조회수를 획득하여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데, 그 채널이나 게시물에 어떤 객관적 가치가 내재하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경우가 무척 드물지 않은가. 오히려 어떤 내재적 이유도 없이 그저 운이 좋아서, 그냥 인기가 더 큰 인기를 부르는 피드백 작용의 결과로, 스타가 된 유튜버들을 지목하기가 훨씬 더 쉽다.

일반인들에게 디지털 시대의 본격화를 상징하는 두 사건은 1998년의 구글 창립과 2004년의 페이스북 창립이다. 유튜브는 2005년에 설립되어 이듬해 구글에 합병되었다. 이 회사들이 보유한 막강한 힘은 주로 검색 및 추천 알고리즘에서 나온다. 구글 검색에서 첫 페이지에 뜨지 않는 사이트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세간의 말이 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 화면을 한참 아래까지 스크롤 해서 저 밑의 게시물들을 보는 사용자는 거의 없다. 상위 20위나 30위 내에 들지 못한 게시물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튜브의 추천 목록 상위권에 들지 못한 동영상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학술계도 이 같은 디지털 시대의 규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04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학술 문헌 검색엔진 ‘구글 스칼라’에서 검색 결과의 상위에 뜨는 것은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성취다.

그 성취를 위해서는 다른 학자들로부터 많은 인용을 받아야 한다. ‘구글 스칼라’는 논문의 인용 회수를 기준으로 검색 결과들을 배열하니까 말이다. 과거에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지금 학계에서 인용 회수는 학자와 논문의 가치를 매기는 주요 척도다. 요컨대 대중과 전문가를 막론하고, 현재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우리에게 ‘생존하기’란 ‘검색 결과의 상위에 뜨기’와 사실상 동의어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를 지배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검색 및 추천 알고리즘이 속된 말로 ‘잘 되는 놈 밀어주기’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물론 애당초 그 알고리즘을 고안한 사람들이 그 효과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구글의 원조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은 특정 웹페이지로 향한 링크들의 개수를 기준으로 그 웹페이지의 중요도를 평가했고, 중요도가 높은 웹페이지들을 검색 결과의 상위에 띄었다. 즉,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중이 실제로 많이 방문하고 거론한 웹페이지들을 우대한 것이다. 이 방침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실감하려면 구글 이전의 포털들이 웹사이트의 중요도를 어떻게 평가하여 검색 결과를 배열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 포털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그 분야를 다루는 웹사이트들을 평가하게 했다. 예컨대 포털 사용자가 ‘와인’을 검색하면, 와인 전문가들이 우수하다고 평가한 웹사이트들이 검색 결과로 떴다. 반면에 지금 구글에서 ‘와인’을 검색하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막론하고 무릇 인터넷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웹사이트들이 검색 결과의 상위에 뜬다.

요컨대 구글의 최초 방침은 대단히 민주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 민주적 원리는 일종의 부작용으로 ‘잘 되는 놈 밀어주기’ 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인기가 약간 더 높아서 검색 결과의 상위에 뜬 페이지와 게시물은 더 많은 사용자들에게 노출되어 더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인기의 미세한 차이가 나중 인기의 엄청난 차이를 낳는 경우가 발생한다.

웹사이트들 자체의 질은 거의 같은데도, 처음에 조금 더 인기 있던 A 사이트는 해당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에 오르고, 처음에 조금 덜 인기 있던 B 사이트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강력한 쏠림이 일어나면서 불평등이 극심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 대목이 가장 흥미로울 법한데, 디지털 시대 이전에도 이 땅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는 ‘잘 되는 놈 밀어주기’가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우리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경향이 원래 강했다. 그래서 늘 쏠림이 일어났고 상당히 뚜렷한 대세가 있었다. 적잖은 지식인들이 그런 쏠림과 대세의 문화를 비판했지만, 좋건 싫건 간에 그 문화는 이제 전 세계를 지배한다.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겠지만,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더 심해지고 더 광범위해진 쏠림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 시대의 성공을 완전히 우연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완전히 내재적 가치의 귀결로 인정하는 것도 어리석은 태도일 테지만, 성공에서 우연히 차지하는 몫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는 점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쏠림이 강하게 작동하는 판에서 성공과 실패는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가볍게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사회문화적 성공은 이미 과거에도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지금 디지털 시대에는 거품 방울보다 더 가볍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승자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자가 현실적 승자가 된다는 라이프니츠 풍의 생각은 이제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가능한 승자들 가운데 한 명이 우연히 현실적 승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성공과 실패를 더 담담하고 유연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디지털시대가 요구하는 마음가짐이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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