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 연속된 공간이 만들어진 용천동굴, 약 3㎞ 길이의 해안에 발달한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연유산이다. 문화재청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자연유산과 유물, 유적지를 대상으로 3차원 정밀화 기록을 시작해 현재는 3차원 디지털 기록이 보편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여건에서 지난 3일과 4일 온라인 생중계로 ‘2020 디지털 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이 열려 세계 문화재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한국과학기술원이 주관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세계 문화유산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확인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정승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용천동굴 스캔 데이터와 드론 라이더로 얻어진 스캔 데이터를 매치시킨 모습을 보여줬다. ⓒ2020 디지털 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 캡처
디지털 기록, 문화재를 기억하는 또 다른 유산
디지털 기록화는 문화재 원본에 직접 손대지 않고, 원형의 형상을 정밀하게 기록해 맨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정밀한 부분을 인식하게 해준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유산 발굴과 기록은 국외에서 더욱 활발하다.
실크로드를 연구하는 드미트리 보야킨 국제중앙아시아학연구소 소장은 실크로드 내 수만 개 유적지와 유물을 발굴해 유네스코 등록을 준비 중이다. 그는 GPS를 이용한 ‘IG싱크로나이저(IG synchronizer)’라는 기록화 시스템을 개발해 디지털 측량기술로 500㏊ 규모의 카자흐스탄 건축 유적지를 발굴해 기록했다. 보야킨 소장은 “중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고고학적 자료를 인공위성과 특별한 장치·기술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보야킨 국제중앙아시아학연구소 소장이 실크로드 내 발굴한 유적지를 3차원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사례 ⓒ2020 디지털 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 캡처
디지털 기술은 접근이 제한되거나 파기된 건축물의 가치 복원에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벨기에에서는 철거된 건물을 3차원 디지털기술로 복원해 디지털 기록의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유산을 디지털 기술로 표현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피에르 알로 리에주대학교 교수는 철거된 델프트 타일의 건물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알로 교수는 “유산이 파괴됐을 때 디지털 표현이 유산의 잔존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정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궁극적 백업’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접근이 힘든 제주 용천동굴을 디지털 기술로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상과 지하를 이어주는 스캔 데이터와 광파 측량 좌표를 취득하고, 자체 조명을 탑재한 스캐너를 활용해 효율적인 촬영을 시도했다. 이런 정밀 스캔을 통한 지질학적 조사로 동굴 벽면에 수평과 수직 균열을 알 수 있는 데이터를 얻었다.
피에르 알로 리에주대학교 교수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사례 중 하나로 벨기에 중심가에서 철거된 델프트 타일의 건물을 세밀하게 3D로 재현했다. ⓒ피에르 알로(Pierre Hallot)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록은 해저에 분포하는 유산에도 적용된다. 아이마르컬쳐(iMARECULTURE)는 수중에 있는 문화유산을 발굴해 유럽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연구 단체이다. 이 단체는 지중해 동부 마조토스에 난파된 현장을 2006년부터 조사했다. 8m 길이의 현장에서는 4세기에 볼 수 있는 유적이 그대로 있지만 오랜 기간 바다에 있으면서 많이 부식된 상태. 연구진은 홀로그램, VR 장치를 이용해 3차원 모델을 구현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드미트리오스 스칼라토스 사이프러스 공과대학교 교수는 “색 재현과 형태를 가상의 공간에 구현하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해저 유물의 보전법과 기록의 방법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말했다.
디지털 유산의 새로운 해석
박물관에서는 이런 디지털 기록으로 구현한 소장품을 새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유럽의 박물관은 코로나19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3차원 디지털 기술과 가상증강 현실로 디지털 유산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UCL 페트리 이집트 박물관에서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3D로 구현해 누리집에서 제공하고 있다. ⓒUCL 페트리 이집트 박물관(www.ucl.ac.uk)
밤베르크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문화재를 스크린에 변형해 보여주기도 하고, 원본과 똑같은 유물을 3D프린터를 통해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UCL에 있는 페트리 이집트 박물관에서도 고대 이집트 유물을 3차원으로 구현해 마치 퍼즐을 푸는 방식처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원본을 보존하고, 관람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에 디지털 실감 영상관을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반응형 영상인 ‘꿈을 담은 서재, 책가도’를 시작으로 흥미 있는 4개의 주제를 폭 60m, 높이 5m 규모로 3면의 파노라마 스크린에 담았다. 또한 가상 증강 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영상관, 고구려 벽화무덤 영상관, 경천사 10층 석탑에 담긴 이야기가 있는 영상관 등이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북돋아 준다. 고루하다는 느낌의 박물관을 디지털 기술로 새롭게 해석한 셈이다.
모나 헤스 독일 밤베르크 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위기를 기회 삼아 디지털 자산의 보급과 소통을 향상해야 많은 사람이 박물관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0일에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실감 영상관.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복제품의 신뢰성
한편,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록이 확대되면서 파생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이 정밀해지면서 복제라는 기준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점이다. 피에르 알로 교수는 “원형의 유물 정보를 어떻게 취득하고, 취득과정에서 어떻게 디지털로 기록해야 하는지 상관관계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정의해야 한다”며 “규정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은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은 “3차원 디지털기술로 구현한 유물은 복제 불가능한 원형을 대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복제라는 확장성을 갖고 있어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원본 자체에 표현되지 않는 부분 재현 시 어려운 점도 있다. 평면 형태의 그림과 유물을 3차원 형태로 구현할 때 원본과 달라질 수 있다. 역사적 고증과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다. 문화재청은 모범사례가 실린 ‘문화유산 3차원 스캔 데이터 구축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개정해 배포하고 있다.
장은정 학예연구원은 “얼마든지 다양한 창작은 할 수 있지만, 문화유산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전제하에 디지털 콘텐츠로 무엇을 전달할지 방향성과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로 문화재 기록과 보존, 복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운택 카이스트 AR 연구센터 소장은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시대에 디지털 트윈이라 부르는 가상 증강현실이 주목받고 있다. 유적지에서 다양한 센서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모은 정보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AI를 통해 해석하고, 해석된 정보를 디지털 트윈에서 가시화하고, 가시화된 정보를 다시 일상으로 되돌리게 된다면, 앞으로 대비해야 할 문화재 보존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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