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드럼통 속 빨래, 페달만 밟으면 끝!

[인류를 지키는 적정기술] (49) 바이슬아바도라와 제로스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은 가족들의 옷과 수건 등을 빨래하는 것이 하나의 집안 행사다. 사용할 물도 부족하고 전력 공급도 어렵다 보니, 오로지 사람의 수작업에 의지해서 빨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저소득 국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하나의 공간에 3대나 4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가족이 모여 살다 보니 빨래거리가 매일 산더미처럼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 빨래를 일일이 손으로 세탁해야 하는 여성들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지치기 일쑤다.

자전거와 드럼통을 합친 바이슬아바도라의 모습 ⓒ MIT.edu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적정기술 전문가들이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을 위한 세탁 시스템을 개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전기가 없어도 옷을 깨끗하게 빨 수 있는 ‘자전거 형태의 세탁기’와 물의 양이 적어도 거뜬하게 세탁을 마칠 수 있는 ‘물 절약 세탁기’가 그 주인공들이다.

인력으로 작동하는 자전거 형태의 드럼 세탁기

전기가 없어도 옷을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는 자전거 모양 세탁기의 이름은 ‘바이슬아바도라(Bicilavadora)’이다. 바이슬아바도라는 스페인어로 자전거라는 뜻의 ‘bici’와 세탁기라는 의미의 ‘lavadora’를 합친 조합어다.

이 세탁기의 장점은 별도의 전력 공급 없이도 빨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슬아바도라는 자전거 차체와 드럼통이 결합되어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의 힘으로 페달을 돌리면 드럼통이 돌아가며 세탁이 되는 원리다. 일종의 인력 드럼 세탁기인 셈이다.

이처럼 저개발 국가 여성들의 일손을 덜어준 인력 세탁기를 개발한 사람은 미국의 MIT 공대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인 ‘라두 라두타(Radu Raduta)’다. 봉사활동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저개발 국가를 방문했다가 여성과 어린이들이 손빨래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바이슬아바도라를 개발하게 됐다.

라두타는 바이슬아바도라를 그 해에 개최한 MIT 공대의 혁신 아이디어 경연 대회에 출품했고, 그 결과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시상식에서 저개발 국가 주민들을 위해 전기 없이도 오랫동안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개량된 바이슬아바도라를 통해 여성들은 과중한 빨래 업무에서 해방되고 있다 ⓒ euronics.es

라두타는 곧바로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과테말라를 방문했다. 그리고 현지 NGO 단체와 함께 본격적인 자전거 형태의 세탁기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바이슬아바도라의 초기 모델을 현장에서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적응력을 높여 나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바이슬아바도라 상용화 모델은 자전거에 달린 기어를 이용하여 변속이 가능하다. 따라서 세탁물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힘을 조금만 쓰기 때문에 최대 100W의 출력으로 손쉽게 빨래를 할 수 있다.

저개발 국가에서 사용하는 만큼 내구성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라두타는 “매일 사용해도 10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라고 소개하며 “가격 또한 15만 원 정도이므로 가난한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바이슬아바도라의 등장 이후 저개발 국가 주민들의 삶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우선 여성들의 노동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손빨래를 할 때보다 세탁 시간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어린이들에게는 바이슬아바도라가 하나의 놀이시설처럼 여겨져서 장난하듯이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즐거운 놀이 문화를 만들고 있다.

기존 물 사용량 대비 2%만으로 세탁 가능

미국 MIT 공대의 봉사활동 동아리가 전력 공급이 필요 없는 세탁기로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을 돕고 있다면, 영국 리즈대의 연구진은 쌀알 크기의 고분자 구슬을 활용한 물 절약 세탁 방법을 개발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리즈대의 고분자공학과에 재직하고 있던 ‘스티븐 버킨쇼(Steven Burkinshaw)’ 교수는 3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한 폴리머(polymer) 구슬을 상용화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바로 스타트업을 분사시켜 고분자 구슬의 제조와 판매를 시작한 것.

제로스(Xeros)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이 제조하고 판매하는 이 고분자 구슬은 아주 적은 물만으로도 말끔하게 빨래를 마칠 수 있는 세탁기와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고분자 구슬을 개발한 버킨쇼 교수는 “직경이 5mm 정도인 초소형 폴리머 구슬은 빨래와 함께 세탁기에 들어가 얼룩을 지우는 일종의 빨래방망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소개하며 “가장 큰 특징은 물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쌀알만 한 크기의 고분자 구슬은 세탁기의 물 사용량을 최소화할 수 있다 ⓒ Xeros

스타트업의 이름을 제품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제로스로 불리는 폴리머 구슬은 최소한의 물 사용량을 자랑한다. 10kg의 정도의 옷을 세탁한다고 가정했을 때, 폴리머 구슬 20kg만 있다면 소량의 세제와 물 한 컵만 있어도 세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개발사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리즈대의 연구진이 실험한 바에 따르면 폴리머 구슬을 이용하여 빨래를 했을 때, 일반 세탁기에 필요한 물 사용량을 98%나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물 사용량이 줄어들면 전기 사용량도 줄어들게 되는데, 기존 세탁기의 물 사용량에 비해 2% 정도만 가지고 세탁을 하면 전기 사용량도 30% 정도 절약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제의 양도 상대적으로 기존 세탁 방식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에 버려지는 화학세제의 양도 매우 적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을 절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과 바다를 깨끗하게 보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세탁 시스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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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정소희 2020년 6월 9일9:28 오전

    전기세탁기가 흔하고 흔한 우리나라지만, 이런 세탁기가 우리나라에도 판매되면 좋겠다.
    전기부족 물부족 국가니까 현실적으로 매우 유용할 것이고, 환경보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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