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대웅양을 뜻하는 ‘북극해’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97)

몇 해 전에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서 홍콩으로 날아간 적이 있다. 객실에 제공되는 위성 지도를 보니 내가 탄 비행기가 대략 북위 85도를 날고 있었다. 다행히 창밖은 환했고 나는 실눈을 뜨고 저기 어디에 북극점이 보이지 않을까 열심히 찾아보았다. 북극점이라면 볼만한 표식이나 기지 아니면 하다못해 깃발이라도 하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하얀 빙원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북극점 자료를 검색해보니 북극점에는 아무 표식이 없었다. 100미터도 안 되는 산 정상 위에도 비석을 세워 두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북극점은 왜 아무것도 없을까?

북위 85도 상공. 실제 북극점에는 아무 표식이 없다. ⓒ 박지욱

인류가 북극점에 도달한 것을 확인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채 안되는 1926년이다. 하지만 그전에 북극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았다. 바로 북극성을 따라가거나 나침반의 N극을 따라가면 되었다.

북쪽 밤하늘에 붙박이로 떠있어 북쪽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은 뱃사람들은 물론이고 여행자들에겐 큰 도움을 주는 별이다.

북극성을 폴라리스(Polaris)라고 불렀는데, 이는 ‘지구’의 북극 방향에 있는 별이라는 의미보다는 ‘하늘(天球)’의 북극(north celestial pole)에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라틴어로는 stella polaris (스텔라 폴라리스)인데, 이를 줄여 polaris로 불렀다. Pole star(폴 스타), the North Star(노스 스타) 로도 불린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바라본 북극성,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 위키백과 자료.

폴라리스가 지구의 북극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극점에 서면 북극성은 머리 위 90°에 뜬다. 그러므로 북극성의 고도가 바로 그 지점의 위도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북극성은 적도에서는 고도가 0°이므로 남반구에서는 지평선 아래의 별이라 볼 수가 없다. 남반구의 밤하늘에는 엄밀한 의미의 남극성은 없고, 남십자성이 밤하늘의 남극에 가깝다.

그런데 pole이란 영어는 장대, 막대를 뜻한다. north pole이란 의미는 우리가 지구본을 볼 때 지구 자전축의 남북에 꽂힌 막대기가 있듯 그 자리에 있는 가상의 지축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지축이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점이 바로 북극점과 남극점이다.

남극점은 남극대륙 지표면에 있지만 하늘에서 보는 북극점은 하얀 빙원 위에 있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뭍이라 해도 700km나 떨어진 북극점을 품은 빙원이라 해도 북극해 위에 떠있는 해빙(海氷)이므로 속절없이 떠내려가 버린다. 그러므로 빙원 위에 깃발을 꽂아 두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2007년에 러시아는 북극점에 해당하는 북극해 4261m 해저 지점에 잠수함을 동원해 그 자리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우리가 북극성으로 부르는 작은곰자리 알파성은 아주 우연의 일치로 지구 자전축의 북쪽 연장선상에 있어서 지구 자전과 무관하게 언제나 북쪽 하늘 붙박이별 북극성이 되었다.

북극성이 가리키는 그곳, 북극성의 고도가 90°가 되는 북극점은 지도에도 the North Pole로 씌어 있다. 하지만 북극점이 있는 바다는 the North Pole Ocean이 아닌 the Arctic Ocean이다. arctic의 뜻은 무엇일까? 답부터 말하면 곰(㷱)이다. polar bear(북극곰) 때문에 이 바다의 이름이 the Arctic Ocean이 된 걸까? 물론 아니다.

북쪽 지방으로 갈수록 곰을 만날 기회는 많아진다. 밴쿠버 거리에 붙은 ‘곰 조심’ 안내판 ⓒ 박지욱

그리스인들은 북쪽 지방을 아르티코스(arktikos)라 불렀다. 곰을 뜻하는 그리스어 arktos(아르크토스)에서 온 말이다. 북쪽 땅에 곰이 출몰해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고, 북쪽 지방으로 갈수록 밤하늘에 작은곰자리 알파성(북극성)의 고도가 높아지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결국 가장 북쪽 땅인 북극점에 다다르면 북극성의 고도는 90° 즉, 머리 위에 뜬다.

아르크토스가 라틴어 arcticus(아르크티쿠스)를 거쳐 우리가 북극해로 번역하는 the Arctic Ocean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그대로 살리면 대웅양(大雄洋)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북극양도 아닌 북극해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북극해는 5대양에 포함된 대양이다.

우리가 북극해로 번역하는 바다 이름은 대웅양이란 뜻이다. 1720년의 북극해 지도. ⓒ 위키백과

남극을 뜻하는 영어 안타르크티카(Antarctica)에도 남쪽이란 뜻은 없다. 아레스(Ares, 화성)에 맞서는 별이란 뜻으로 안타레스(anti+Ares)란 이름이 붙은 것처럼 acrtic의 반대(anti+Arctica)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남극점에는 빈약하지만 막대(pole)가 꽂혀 있다. 남극점의 아문센-스콧 기지(미국) 곁에 있다. 거기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이발소 표시등처럼 보이는 이 막대 주변으로는 원조(元祖) 남극 조약에 서명한 12개국의 국기도 게양되어 있다. 북극과 달리 남극점에 막대를 꽂아 두는 것은 남극점은 떠내려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남극점에 처음 도착한 이는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이 이끈 노르웨이 탐사대다. 1911년 12월 19일에 남극점에 도착했다. 두 번째 도착팀은 영국의 스콧 탐험대로 한 달여가 뒤처진 1912년 1월 17일이었다. 아문센은 남극점을 확인하기 위해 육분의를 썼지만 스콧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아문센이 세워둔 노르웨이 깃발로 남극점을 알 수 있었으니까.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아문센의 노르웨이 탐사대. ⓒ 위키백과

반면 북극점에 최초 등정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한때는 미국의 프레데릭 쿡(Frederick Cook, 1865~1940)이나 피어리(Robert Edwin Peary, 1856~1920)가 처음으로 북극점에 갔다고 주장했지만, 쿡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고, 피어리는 북극점에 40km 못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아문센은 인류 최초로 남북극을 모두 가 본 이로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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