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이 곤충 후각도 마비시킨다

오존 농도 높으면 나방이 꽃향기 못 맡아

오존으로 인한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 꽃가루받이를 하는 곤충들이 꽃향기를 잘 맡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오존에 의해 향기가 변하면 박각시과 나방(tobacco hawkmoth, 학명 : Manduca sexta)들은 평소 좋아하던 담배꽃의 향기에 대한 매력을 상실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꽃가루받이는 주로 곤충들에 의해 수행되는 생태계의 중요한 작용이다. 꽃은 향기를 이용해 곤충을 유인하는데, 거기에는 꽃가루받이 곤충들이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화학적 신호가 담겨 있다. 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꽃과 곤충 사이의 공진화 관계의 결과물이다.

박각시과 나방이 담배꽃에 앉아 꿀을 빨아먹고 있는 모습. © Anna Schroll

하지만 최근까지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이 같은 생물 간의 화학적 소통을 촉진하는 자연 향기 분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연구소와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공동 연구진은 공기 중의 오존 오염이 꽃가루받이 곤충인 박각시과 나방이 선호하는 꽃의 향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오존은 인간에게 호흡기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응성이 매우 높은 화학물질이자 오염물질이다.

연구진이 박각시과 나방을 실험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이 나방들이 꽃향기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시각을 이용해 꽃을 찾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후각을 사용할 수 없으면 시각이 대체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에 적합한 모델인 셈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마르쿠스 크나덴 박사는 “박각시과 나방을 유인하는 꽃은 특정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으며, 밝은 흰색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눈에 띄기 쉽다”고 말했다.

오존 농도 높으면 담배꽃 찾아가지 않아

연구진은 가스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해 오존 함량의 증감에 따른 꽃향기의 정확한 성분과 개별 향기 성분의 농도를 파악했다. 또한 꽃향기에 영향을 주는 오존 정도를 알기 위해 더운 날에 박각시과 나방의 자연 서식지에서 측정할 수 있는 오존 농도를 이용했다.

그 후 나방이 원래의 꽃 냄새와 오존에 오염된 꽃 냄새를 모두 맡도록 하면서 풍동 장치로 나방의 반응을 시험했다. 그 결과 오존 농도가 올라가면 나방들이 담배꽃 냄새에 대한 선천적인 매력을 완전히 상실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 나방들은 과연 오존 때문에 식욕을 상실한 것일까 아니면 오존으로 인해 꽃향기를 맡지 못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박각시과 나방들에게 설탕물을 주면서 오존에 오염된 꽃향기를 맡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식욕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면 오염된 꽃향기라도 그것을 음식으로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방들은 오존으로 오염된 꽃향기라도 설탕물이 있으면 잘 찾아가 식사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꽃이 아니라 대롱 형태여도 설탕물만 있다면 오존의 오염 여부에 상관없이 주둥이를 내밀었다.

이에 대해 공동 저자로 참여한 버지니아대학의 브린 쿡 박사는 “우리가 박각시과 나방에서 발견한 사실은 곤충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학습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것은 이 같은 나방들의 행동 변화가 진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급격히 증가하는 곤충 사망률

이번 연구는 곤충들이 대기오염으로 변질된 꽃향기라도 학습을 통해 재빨리 먹이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대기오염은 여전히 식물과 꽃가루받이 곤충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곤충들이 대기오염으로 처음부터 아예 꽃을 찾지 못하게 되면 그 같은 학습조차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곤충들의 경우 박각시과 나방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냄새에 대한 학습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 연구 결과는 곤충 페로몬 관련 전문 국제학술지인 ‘화학생태학회지((Journal of Chemical Ecology)’ 2020년 9월 호에 게재됐다.

브린 쿡 박사는 “우리의 연구는 이제 시작점에 불과하다”며 “현장 연구를 통해 앞으로 어떤 꽃과 곤충이 어떤 오염물질에 대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는 자연 생태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같은 변화가 식물과 곤충 간의 화학적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사실 대기오염은 꽃향기뿐만 아니라 암컷 곤충들이 수컷을 유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성 페로몬도 변화시킨다.

최근 들어 곤충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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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한얼 2020년 9월 7일4:11 오후

    대기오염과 기후변화가 작은 곤충의 행동패턴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니 새삼 청정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알거 같아요. 갈수록 환경 오염으로 생태계에 많은 변화가 오고 있어서 환경에 대한관심을 갖고 살아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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