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당근을 많이 먹으면 밤눈이 밝아진다?

[과학기술 넘나들기] 식품에 관한 잘못된 속설(2)

“당근을 많이 먹으면 밤눈이 밝아진다”는 얘기 또한 식품에 대한 널리 알려진 속설이다.

이 역시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그럴듯한 과학적 개연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대중들에게 더욱 혼란을 부채질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근이라는 식품의 성분과 야간 시력의 관련성뿐 아니라, 이러한 속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 등도 함께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당근 ⓒ Susan Slater

당근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쌍떡잎식물로서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6세기부터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채소로서 식용하는 뿌리 부분은 단맛이 나며 비타민과 영양소가 풍부해서 여러 요리에 널리 쓰인다. 특히 당근은 녹황색 채소 중에서 베타카로틴의 함량이 가장 높은데, 식물성 색소인 카로틴(Carotene)이라는 명칭 자체가 당근의 영어 이름인 ‘Carrot’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타카로틴은 인체 내에서 흡수되면 비타민A로 전환이 되는데, 물론 비타민A는 눈의 건강 특히 야간 시력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영양소이다. “비타민A가 부족하면 야맹증에 걸리기 쉽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온 기본적인 상식이다.

사람 눈의 망막 안에 있는 시각세포 중에서 빛의 명암을 감지하는 것은 가늘고 긴 막대 모양으로 생긴 간상세포(桿狀細胞, rod cell)이다. 간상세포는 0.1Lux 이하의 어두운 빛도 감지할 수 있는데, 이는 세포막에 함유되어 있는 시홍(視紅) 즉 로돕신(Rhodopsin)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막대 모양인 간상세포(위쪽)의 전자현미경 이미지 ⓒ Helga Kolb

로돕신은 고정되어 있는 막단백질인 옵신(Opsin)과 빛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레티날(Retinal)로 구성된 복합단백질이다. 로돕신은 빛을 받으면 광화학반응에 의해 레티날이 옵신으로부터 쉽게 분리되며,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가 옵신을 활성화하여 간상세포를 흥분시킴으로써 시각을 형성하여 대뇌에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로돕신이 많을수록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으며, 간상세포가 지속적으로 빛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광화학반응으로 분해되는 로돕신이 계속 다시 합성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로돕신을 이루는 레티날은 바로 비타민A로부터 공급되기 때문에, 비타민A가 부족하면 로돕신의 재합성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밤눈이 어두워지는 야맹증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타민A의 부족이 야맹증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작정 비타민A나 베타카로틴을 많이 섭취한다고 해서 야간 시력이 크게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야맹증을 겪지 않는 정상인의 경우, 아무리 당근을 많이 먹어도 밤눈이 더욱 밝아지지는 않는다. 비타민A와 레티날이 풍부하게 공급되어 로돕신이 많아진다 한들, 사람 눈의 망막에서 광화학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최저 조도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타민A는 수용성이 아닌 지용성 비타민이기 때문에, 너무 과량으로 섭취하면 도리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간상세포에 함유된 단백질 로돕신 ⓒ 위키미디어

당근이 야간 시력을 높인다는 속설의 유래는 약 80년 전인 제2차 세계대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전투기가 본격적으로 활약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독일 양국은 상대국에 대한 공습과 아울러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곤 하였다. 특히 전쟁 초기에 독일의 폭격기들은 야간 공습으로 영국에 큰 피해를 주었지만, 갈수록 영국 전투기들의 반격을 받고 독일 폭격기들이 격추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영국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귀신같이 독일 폭격기들을 찾아내어 요격하곤 하였는데, 당연히 독일군에서는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온 얘기가 바로 “영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당근을 많이 먹어서 밤눈이 대단히 밝아졌다.”는 잘못된 속설이었다.

특히 야간 공중전에서 수많은 독일 폭격기를 격추하여 에이스의 반열에 오른 영국 공군의 한 조종사는 ‘고양이 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실제로 그는 당근을 많이 먹지도 않았고 야간 시력도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독일군 조종사들은 아무리 당근을 많이 먹어도 밤눈이 별로 밝아지지 않았다.

그 비결은 바로 영국 공군이 새로 개발한 레이더 기술에 있었는데, 이를 비밀에 부치고 상대방에 혼란을 주고자 일부러 그런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었다. 또한 당근은 전쟁으로 농산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영국이, 자국 내에서 텃밭 재배를 통하여 생산을 장려하던 채소이기도 하였다. 단맛이 나는 당근은 해외로부터의 수입이 힘들었던 설탕 등을 대신할만한 먹거리로서, 국민적 당근 증산 캠페인이 연막전술과 아울러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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