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의미를 지닌 ‘천남성’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

사마귀 대가리 같은 잎이 있는 이 천남성은 흉악하게도 생겼지만 입에 대기만 하면 화상이 걸릴 것처럼 따갑고 심각한 염증이 생긴다. 옥수수처럼 달리는 열매도 독이 강하고 뿌리는 씁쓸한 맛이 나는데 또한 많이 먹으면 죽고 만다

 – 성석제의 소설『투명인간』 중에서

신록 우거진 초여름, 한라산 중산간 숲길에서 아주 특이한 식물을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산속에서 옥수수를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옥수수와 닮았어도 분명 옥수수는 아니었다. 누군가 독초 천남성이라고 알려주었다.

습기가 많은 곳에 사는 천남성은 다년생 식물로 5~7월에 꽃을 피운다. 열매는 작은 옥수수처럼 보이며, 잘 익으면 빨간 물이 들어 사마귀(螳螂) 눈처럼 보이므로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것을 신기하다고 만지면 손에도 독이 묻어 고생을 할 수 있다. 왕조시대에는 사약(賜藥)의 재료로도 쓸 정도로 맹독성이다.

천남성 열매.익으면 붉게 변한다. ⓒ 박지욱

천남성 열매.익으면 붉게 변한다. ⓒ 박지욱

그런데 ‘사마귀 눈깔’ 정도로 붙을 그 이름은 왜 천남성(天南星)이란 어려운 이름이 붙었을까? 이런저런 설이 있다. 이 식물의 독성이 극양성(極陽性)이고, 하늘에서 극양성에 해당하는 별이 가장 남쪽(陽)의 별 즉, 천남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별 이름을 가져다 식물 이름을 지은 것이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이 서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었다. 이를 테면 별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사의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술(占星術)도 있었고, 세상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별(자리)의 이름을 붙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근세기 유럽에서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물질을 발견할 때마다 별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보면 우라늄(uranium)은 우라누스(Uranus, 천왕성), 플루토늄(plutonium)은 플루토(Pluto,  명왕성), 넵토늄(neptunium)은 넵튠(Neptune, 해왕성)에서 보듯 행성의 이름을 따서 신물질의 이름을 지었다. 그러니 동아시아에서 하늘의 별이름을 따서 식물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그러면 천남성은 어떤 별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 하늘’에 보이는 별은 노인성(老人星)이므로 천남성을 노인성으로 보기도 한다. 노인성은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별로 수성(壽星)으로도 불렀다.

노인성의 존재는 필자가 제주에 와서 처음 알았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을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한라산의 남쪽 기슭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성은 남반구에서는 잘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면 지평선/수평선 아래에서 뜨고 지는 별이라 관측이 쉽지 않다.

그렇게 보면 한라산 남쪽 기슭 고지대에 자리잡은 서귀포천문과학관은 노인성을 볼 수 있는 최적의 명당이다.그래서 이곳에서는 ‘노인성 관측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연중 언제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10월 말에는 새벽 6시, 11월 말에는 새벽 3시, 12월 말에는 새벽 1시, 1월 말에는 밤 11시, 2월 말에는 저녁 9시, 3월 말에는 저녁 7시경이다.

대략 정남쪽 수평선 위에서 5° 높은 위치에 보인다. 수평선에서 대략 손가락 두 개를 포개면 노인성 고도가 된다. 워낙 낮게 떠서 수평선 위에 안개나 구름이 있다면 보기 힘들다. 그럴 때는 제주시에 위치한 국립제주박물관의 노인성 특별전(2019년 3월 19일~6월 16일)을 통해 다소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노인성의 도시 답게 서귀포에는 봄맞이 축제에서 ‘남극노인성제’도 재연한다. 아울러 이 도시에서는 천남성과 관련된 지명도 찾을 수 있다. 외돌개와 천지연 폭포 사이에는 남성마을이 그것이다. 마을 인근의 삼매봉 오름의 정상을 일컫는 이름 남성대(南星臺)를 마을의 이름으로 삼았다. 남성대란 ‘남성(南星)’ 즉, 천남성을 잘 볼 수 있다고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이 마을이‘무병장수’의 마을로 알려진 것도 노인성과 관련이 있다.

서귀포시 남성마을 ⓒ박지욱

서귀포시 남성마을 ⓒ박지욱

노인성은 서양에서는 카노푸스(Canopus)라 부른다. 용골자리(Carina)에서 가장 밝은 별(알파성)로 지구로부터 310광년 떨어져 있다. 카노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수로 안내인(pilot)의 이름이다. 그는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원정대의 뱃길을 안내했다. 카노푸스 별이 속한 용골자리도 배의 구조물인 용골(龍骨)에서 따온 이름이니 그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하지만 카노푸스는 뱃사람들의 항해에도 무척 중요한 별이었다.

용골자리는 배의 구조물에서 딴 이름이다 ⓒ 박지욱

용골자리는 배의 구조물에서 딴 이름이다 ⓒ 박지욱

북반구의 밤하늘 북쪽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붙박이 별 북극성이 있다. 뱃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별이다. 하지만 남반구의 밤하늘에서 북극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카노푸스가 남쪽 하늘에 붙박이 별로 떠있다. 그래서 남반구의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은 카노푸스를 보고 뱃길을 잡으니 그리스 수로 안내인의 이름이 이 별에 붙은 이유를 짐작할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북극성이나 카노푸스로 길을 잡은 항해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먼 우주를 비행하는 우주선들은 카노푸스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는다고 하니 길잡이 (별)카노푸스의 명성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다.

브라질 국기에는 남반구 하늘에 있는 많은 별(자리)들이 새겨져 있다.그중 분홍색 원 안에 든 것이 카노푸스다. ⓒ ScienceTimes

브라질 국기에는 남반구 하늘에 있는 많은 별(자리)들이 새겨져 있다.그중 분홍색 원 안에 든 것이 카노푸스다.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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