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니체와 다이너마이트

[TePRI Report] 세계사 속 과학기술

한시대의 분위기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분이라면, 니체는 훌륭한 지식인이다.

1844년에 태어나 1880년대에 대표작들을 쓴 그는 당대의 분위기를 ‘퇴폐(decadence)’라는 한 마디로 요약했다. 활력이 넘치는 전성기는 벌써 지났고, 이제 모든 것이 저무는 마지막 단계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인정한다. 자기 자신도 ‘퇴폐한 자’라고 스스로 폭로한다. 니체의 시대 진단은 그리스 비극의 비장함을 넘어 길 잃은 아이의 막막함에 이른다.

과연 니체의 시대는 그토록 절망적이었을까? 세계가 훨씬 더 넓어지고 복잡해져서, 이제 어떤 개인도 시스템 전체를 환히 굽어볼 수 없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1832년에 사망한 괴테만 해도 예술, 과학, 철학, 정치에 두루 정통한 지식인일 수 있었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서 온 유럽의 사랑을 받았고, ‘색채론’을 써서 뉴턴의 광학과 대결했으며, 당대 독일의 낭만주의자 집단들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로 교류하는 독보적인 사상가였고, 교육 및 문화 행정에 깊이 관여하는 고위 정치가이기도 했다.

이런 만능 지식인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른바 ‘괴테 시대(일반적으로 1770~1830)’는 니체에게 비현실적인 전설과 다름없었다. 과학계 내부에서도 런던 왕립학회 같은 포괄적인 모임보다는 세분화된 지질학회, 천문학회, 물리학회 등이 발전을 주도하고 있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필두로 유럽 곳곳에서 거듭 일어나는 봉기 혹은 소요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민중이라는 다소 낯선 세력의 부상을 차츰 인정하게 만들었다. 경제는 식민지에서 유입되는 부를 부분적인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외견상 긍정적인 이 변화조차도 일부 지식인들에게는 혼란과 불안의 요인일 따름이었다.

한 마디로, 니체 시대의 지식인은 문득 자신의 왜소함을 절감할 만했다. 복잡한 세계 앞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지식과 문화와 기술 앞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민중 앞에서, 마치 독자적인 엔진을 보유하기라도 한 것처럼 무섭게 성장하는 경제 앞에서, 당대의 지식인은 한편으로 움츠러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무언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만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위키백과

프리드리히 니체 ⓒ위키백과

그리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지식인들이 전적으로 신뢰해온 이성은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전적으로 옳은 깨달음을 앞세우는 사상가들이 한 시대를 이끌게 되는데, 바로 그 선봉에 니체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깨달음을 대폭 과장하여 이성을 무력한 허수아비나 악랄한 거짓말쟁이로까지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니체보다 12년 늦게 태어난 프로이트를 들 수 있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개인의 삶을 주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자아가 아니다. 삶의 주인은 자아가 아닌 무언가 혹은 누군가이고, 자아는 자신의 것이 아닌 낯선 삶에 대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구성하여 타인들에게 내보이고 싶어 하는 허수아비나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

아무튼 이 글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니체가 남긴 한 문구다. 당대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 움츠러들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 그는 자서전적 작품인 ‘이 사람을 보라(1888년 저술, 1908년 출판)’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대체로 니체의 글은 심각하게 읽어야 할지, 호쾌하게 웃으며 읽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떻게 호모사피엔스 종의 한 개체가 20센티미터짜리 막대형 폭발물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위 인용문에 은유법이 쓰였음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니체는 자신이 우상파괴자로서 지닌 폭발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이너마이트를 거론했을 것이다. 또한 어쩌면 나는 위험한 놈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오늘날 힙합 공연에 어울릴 법한 거드름도 섞여있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니체의 펜이 저 인용문을 적던 시기에 다이너마이트는 그리 오래된 제품이 아니었다.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특허를 받은 때가 1867년, 그러니까 저 문장이 나오기 21년 전이다. 당대 사회의 변화 속도가 지금보다 느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또 니체는 건설업자나 광산업자가 아니라 고전문헌학 교수직에서 물러나 은둔한 저술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니체가 자신을 다이너마이트와 동일시한다는 점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요샛말로 하면, 그는 ‘얼리어답터’다.

다이너마이트 이전에 인류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폭발물은 사실상 화약이 유일했다. 9세기에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은 질산칼륨, 황, 숯의 혼합물이며, 급격한 연소를 통해 에너지를 방출한다. 반면에 다이너마이트에서 에너지가 방출되는 메커니즘은 연소가 아니라 ‘폭발(detonation)’이다.

니체는 자신을 다이어마이트로 표현했다.  ⓒgettyimagesbank

니체는 자신을 다이어마이트로 표현했다. ⓒ게티이미지

핵심적인 차이는 산소의 개입 여부다. 화약의 연소를 위해서는 산소가 필수적인 반면,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은 산소와 무관하다. 다이너마이트의 작용 성분인 니트로글리세린 분자가 압력을 받아 분해될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다시 압력으로 작용하여 인근의 다른 니트로글리세린 분자들을 분해시키는 연쇄반응이 순간적으로 확산되어 모든 니트로글리세린 분자들이 거의 동시에 분해된다. 그리고 이때 한꺼번에 방출된 에너지가 열과 충격파를 일으킨다.

노벨이 이뤄낸 발명의 핵심은, 아주 민감해서 쉽게 폭발하기 때문에 실용성이 없었던 액체 니트로글리세린을 흡수제에 스며들게 해서 더 둔감하게 만든 것, 그리고 그 흡수제를 막대 모양으로 가공하고 그 중심에 폭발을 일으키는 장치(뇌관)를 설치한 것이다.

요컨대 통제된 폭발이 핵심이다. 폭발력과 위험성만 따지면, 순수 니트로글리세린이 다이너마이트를 훨씬 능가한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는 안전하게 제작하고 운반하여 딱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만 방출하게 만들 수 있다는 획기적인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만약에 니체가 막강한 폭발력과 막무가내의 통제 불가능성을 자부하며 저 인용문을 썼다면, 차라리 ‘나는 니트로글리세린이다.’라고 했어야 더 적합하다. 실제로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처럼 폭발적으로 걸작들을 쓰다가 느닷없이 1889년 초에 정신적으로 붕괴하여 사실상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는 니트로글리세린보다는 다이너마이트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유능한 우상파괴자라면, 합리적으로 선택한 목표물을 정확히 파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우상파괴자였던 니체는 오늘날 도리어 우상이 되었다. 다이너마트의 파괴력 덕분에 제정된 노벨상은 최고의 권위를 누리며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자아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으나, 이제 위협의 주요 원천은 생물학적 충동이나 무의식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돌이켜보면, 시대가 온통 퇴폐로 물들었다는 진단도, 자아가 온통 왜소하기만 하다는 폭로도 한때의 유행이었을 따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성과 자아와 역사가 기존의 통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진실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니체 시대의 지식인들은 영원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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