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누가 소수의 비밀을 풀 것인가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12) 가우스와 리만

세상을 바꾼 수학 천재 중 근대 수학의 기틀을 마련한 가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는 19세기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18세기 수학 이론과 방법론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는 베른하르트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과 함께 소수의 세계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스승인 가우스의 뒤를 이어 소수의 비밀에 도전한 제자 리만은 지금도 풀지 못하고 있는 세계 7대 난제인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을 발표했다.

16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문제의 증명을 해내지 못한 ‘리만 가설’, 그들은 왜 소수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했을까.

근대 수학의 기틀을 마련한 천재가우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18세기 수학 이론에 혁명적인 공헌을 남겼다. 그는 대수학, 해석학, 기하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수학을 수리 물리학으로부터 독립시켜 순수 수학의 기틀을 마련한 근대 수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아이작 뉴턴, 아르키메데스와 함께 세계 3대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 김은영/ ScienceTimes

그는 평소 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가우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셈법으로 계산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주로 주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양배추나 감자 다발을 계산하면서 놀았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수학 신동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1부터 100까지 더한 수를 구하라는 문제를 보고 단번에 5050이라는 답을 구한 일화는 유명하다. 가우스는 숫자를 일일이 더하지 않고 수열을 이용해 계산했다. 수열이란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배열되어 있는 수의 열을 말한다.

가우스가 사용한 방식은 등차수열의 합을 이용한 것이다. 등차수열이란 어떤 수와 그 수에 차례로 일정한 수를 더하여 얻어지는 수열이다. 가우스는 겨우 9살 때 이미 등차수열의 해법을 꿰뚫어 본 것이다. 가우스는 스스로 수의 규칙성을 깨닫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가우스는 독일의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때문에 공부를 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의 영재성을 알아본 어머니와 학교의 지원으로 학업을 계속하며 독일 괴딩겐 대학에 조기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 놀라운 일을 벌이는데 바로 정17각형의 작도법을 증명한 것이다. 수학에서는 자와 컴퍼스만으로 선과 도형을 그리는 것을 ‘작도’라고 한다. 정17각형의 작도법은 2000년간 풀 수 없는 난제였다. 가우스는 19세에 이 난제를 풀어버렸다.

세레스의 궤도. 가우스는 화성과 목성 사이를 공전하는 세레스의 위치를 계산해냈다. ⓒ 위키미디어

가우스는 수학뿐 아니라 천문학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세레스의 공전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 낸 일이다. 세레스는 1801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주세페 피아치가 발견한 왜행성이다. 가우스는 세레스의 공전궤도를 계산해 다음에 나타날 지점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발견한 최소 제곱법을 이용해 이와 같은 계산을 할 수 있었다.

160년 동안 풀지 못한 난제의 주인공리만’

300만 이하의 소수를 모두 밝혀내는 등 가우스는 소수에 매료되어 소수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우스의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 또한 오차가 없는 완전한 소수의 개수 측정 공식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리만은 기하학과 해석학에 폭넓은 업적을 남겼다. 리만은 상대성 이론에 사용되는 개념과 방법에 영향을 주는 등 근대 수학과 근대 이론 물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조한다.

리만 또한 스승 가우스 못지않은 수학의 천재였다. 그는 학창 시절 교사의 지도 능력을 넘어서는 뛰어난 수학 실력을 보였다. 일찍이 미적분학과 정수론을 통달했다.

리만은 수학에서 물리학으로 학문의 영역을 확장했다. 현대 물리학에서의 장이론(場理論)도 리만이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근대 수리 물리학의 근간이 될 여러 가지 다양한 독창적인 개념을 발전시켰다.

천년의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을 만들어낸 베른하르트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 ⓒ 위키미디어

리만의 유명세는 그가 1859년 발표한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로 더욱 높아졌다. 리만 가설은 소수들의 분포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리만은 소수의 배열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는 2000년 세계 7대 수학 난제를 내고 한 문제 당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리만 가설도 그중 하나로 선정됐지만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리만 가설은 양자물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혹자는 리만 가설이 풀리면 현존하는 공개키의 암호 체계를 무력화해서 큰 혼란을 줄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양자역학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것이라며 흥분하기도 한다.

무엇이 됐건 오랫동안 수많은 수학 천재들을 괴롭히던 리만 가설의 비밀이 밝혀진다면 세계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학문적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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