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농업과 로봇이 만나 ‘어그리테크’

로봇이 바꾸는 세상(11) 농업 로봇

미국 아이다호주 남파에서는 아이다봇이라 불리는 로봇이 과수원의 과실수 사이를 다니며 농장 일을 대신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스웨스트나사렛대학이 개발한 아이다봇은 무선주파수 식별기술을 이용해 전자태그가 달려있는 나무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관리한다.

로봇이 과일 나무로부터 얻어진 이미지 색상을 분석해 ‘나무 1과 나무 8이 화학 요법이 필요하다’는 식의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농부가 일일이 과수원을 다니며 직접 눈으로 과일나무 상태를 파악했으며 필요한 조치 역시 수작업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진전이다. 과일 작물의 크기와 각 나무에 열릴 열매의 수를 추산해 수확량을 예측하는 부분까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비영리 로봇 연구기관인 미국 SRI인터내셔널에서 분사한 농업용 로봇 개발업체인 어번던트 로보틱스는 사과따는 로봇 시제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어번던트는 사과는 매년 생산량이 90만 파운드로 미국에서 두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지만 사람의 노동에 의존한 수확방식은 지난 20년간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과 수확로봇은 사과를 인지할 수 있는 비전시스템과 사과를 진공으로 잡아 딸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 초당 1개의 사과를 수확한다.

일본 사가현에 있는 사가대학교는 지난해 여름 농업에 최적화된 어그리드론을 개발했다. 어그리드론은 적외선과 열카메라를 이용해 벌레와 해충이 모여있는 구역을 찾아내고 이 구역에 살충제를 집중적으로 투하한다. 콩과 감자를 심은 농장에서 테스트한 결과 나방 등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50종의 해충을 찾아내 박멸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농장에 무차별적인 살포가 아니라 필요한 곳을 찾아 투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살충제 피해를 최소화하고 토양 보호에도 효과적이다.

일리노이대, 코넬대가 개발한 농작물 관리 로봇 ⓒ phys.org

일리노이대, 코넬대가 개발한 농작물 관리 로봇 ⓒ phys.org

농업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최근 6차 산업, 창농(創農), 스마트팜, 정밀 농업 등 농업의 혁신과 새로운 농업 시대를 의미하는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로봇이 농업 혁신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등장했다. 일부 기계화에도 불구하고 농부 등 사람의 노동력과 직관에만 의존해온 농업이 인공지능과 자율 로봇의 도움으로 훨씬 더 빠른 시간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훨씬 더 많은 작물을 수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농업 혁신을 이루기 위한 시도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위 사례처럼 필요한 작물에만 농약을 살포하는 드론을 비롯해 잡초 뽑아주는 로봇, 자동 과일 수확기, 농작물 성장 관리를 돕는 로봇 등 기술과 농업의 결합, 이른바 ‘어그리테크(AgriTech)’가 메가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대학과 지역 카운티, 기술 기업 등이 협업해 이뤄지는 이 어그리테크 혁명의 중심에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자리잡고 있다.

영국 컨설팅 업체 ID테크엑스리서치가 지난해 하반기 발간한 ‘농업 로봇과 드론 2016~2026: 기술, 시장 그리고 플레이어’ 보고서에 따르면 마니아층의 취미도구로만 여겨지던 드론은 농업 분야에서는 이미 2016년 30억 달러의 글로벌 시장을 형성했다.

2022년이면 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100억 달러 규모로 늘어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ID테크엑스가 거론한 어그리테크를 위한 로봇으로는 우유짜는 로봇, 자율 트랙터, 농업용 르돈, 잡초뽑는 로봇, 과일 수확기 등이 꼽힌다.

노스웨스트나사렛대학 연구진들이 개발한 과일나무 관리 로봇 아이다봇.  ⓒ 노스웨스트나사렛대학

노스웨스트나사렛대학 연구진들이 개발한 과일나무 관리 로봇 아이다봇. ⓒ 노스웨스트나사렛대학

미국에서는 대학이 매우 적극적이다. 일리노이대학과 코넬대학은 농작물 성장 및 관리와 생산 최적화를 가능하게 하는 로봇을 연구하고 있으며 2021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로봇은 농지를 돌아다니며 농작물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농작물 관리는 농부가 일일이 육안으로 개별 농작물의 상태를 확인한다음 조치를 취하는 ‘감각에 의존하는’ 방식이었으나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해 분석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

로봇은 초분광(hyperspectral) 고해상도 열 카메라와 날씨 모니터 및 펄스 레이저 스캐너를 이용해 각 식물의 줄기 직경 높이, 잎 면적과 같은 표현형 정보를 수집하고 토양의 온도, 수분 함량과 같은 환경 조건을 평가해준다. 이를 통해 각 농지 및 전체 생산량을 파악할 수 있으며 경작자가 이 데이터를 이용해 수확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로봇의 가격은 5000~1만달러 가량으로 미국의 대규모 농장의 경우 농업 장비 한 대에 수십만 달러가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경쟁력이 있다.

UC버클리, UC머서드, UC데이비스 등 3개 캘리포니아대학(UC) 연구자들은 연간 수백만 갤런의 물을 절약하면서도 정밀농업을 구현할 수 있는 협업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진행하는 RAPID(Robot-Assisted Precision Irrigation & Diagnostics) 프로젝트는 농지의 개별 시설별로 정밀 관개 기술을 사용해 물을 아끼는 기술이다. 가뭄이 잦은 지역이나 사막 기후 지역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물 조절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포도 나무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와 나파밸리의 포도농장에서 적외선 감지와 드론 기술을 활용해 너무 많거나 너무 적게 물을 받는 개별 식물을 체크하는 방식이다. 유럽도 드론과 무인 트랙터 등 농업 로봇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젖소들에게 사료를 주는 렐리사의 로봇 주노 ⓒ 렐리

젖소들에게 사료를 주는 렐리사의 로봇 주노 ⓒ 렐리

로봇신문에 따르면 EU가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농업 로봇 프로젝트가 최소 6개 이상으로 이를 통해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유기농법을 통한 프리미엄 작물 재배, 소비자 기호에 맞는 생산 등을 꾀하고 있다.

이 가운데 EU가 400만 유로를 투입한 RHEA 프로젝트는 다수의 무인 트랙터와 드론을 이용해 밀농사를 짓는 로봇 시스템이다. 센서를 탑재한 드론이 경작지에서 잡초를 구분하고 제초제를 뿌리는데 제초제를 최대 75%까지 줄이면서 잡초의 90%를 제거해준다. 이 로봇은 현재 온실 파프리카 재배에 활용되고 있으며 유럽에서 연간 13억 kg의 파프리카를 생산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MARS 프로젝트는 ‘모바일 농업 로봇 군집’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형 로봇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대의 소형 로봇을 투입해 동시다발적으로 농장을 관리하는 것이다. 옥수수 농사에 활용되고 있으며 군집 로봇들이 상호 협력하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태블릿으로 클라우드에 접속해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렐리는 우유짜는 로봇을 공급하는 네덜란드 업체로 전세계적으로 2만대 가량 공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젖소가 이동하면서 자동으로 착유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축사 자동 청소 로봇과 자동 사료공급 로봇도 판매하고 있다.

영국 링컨대 과학자들은 노르웨이 생명과학대와 공동으로 농업용 로봇 토발드를 지난해 10월 개발했다. 토발드는 다목적, 경량의 로봇 운반 플랫폼이면서 농작물과 토양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센서 기능도 갖추고 있다. 작물 관리 잡초 제거 등도 가능하며 특히 고르지 않은 지형에서 농지사이를 이동하는 유연성이 돋보인다.

축산업이 발달한 호주에서는 로봇을 이용해 가축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광활한 초원 위에 가축들을 방목하고 있지만 땅이 워낙 넓고 가축이 많아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드니대학에서는 팜봇이라는 로봇을 개발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호주 북구 알리스 스프링 인근 4000평방km의 축산농장에서 가축들의 풀 섭취 정도는 물론 체온이나 걷는 모습 등을 통해 가축의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메타로보틱스가 이 개발한 농업용 무인항공 방제기 반디 ⓒ 로봇신문

메타로보틱스가 이 개발한 농업용 무인항공 방제기 반디 ⓒ 로봇신문

우리나라의 경우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정보화로 인해 농업은 ‘한물간’ 산업으로 인식돼왔다. 외국 농산물의 대량 수입, 턱없이 부족한 농촌 일손, 수급 유통의 구조적인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점점 경쟁력을 잃어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좋은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증가하고 자의든 타의든 도시에서 밀려난 청장년층의 귀농, 귀촌이 늘고 있으며 모바일과 인터넷을 활용한 직거래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움직임은 아니지만 지난해 전북지역에는 농업용 로봇융합센터가 들어서는 등 농업용 로봇 개발과 활용이 시작되고 있다. 올해부터 청년 창업 지원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적극 나서면서 어그리테크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창농도 기대된다. 농림부는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등을 통해 전국 6개 지역에 권역별 창농 거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농업용 로봇 활용 사례도 나오고 있다. 경남 함안에 있는 좋은아침토마토농장의 경우 로봇방제기를 이용해 농약 사용량 20% 감소, 노동비 절감은 물론 농약 살포에 따른 건강 문제 개선 등의 효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수 대표는 지난해 말 열린 ‘미래 농업 생태계 기반 조성을 위한 농업용 로봇 산업 육성 대토론회’에 참석해 “토마토 농사로 1600평의 온실에서 연간 2억 5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며 “로봇을 통해 여러가지 성과를 많이 얻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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