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놀이의 품격, 과학을 알면 더 재밌어진다

[‘0’에 과학기술을 더하다] (7) 놀이에 과학기술을 더하다

어린이 인기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제곡은 ‘노는 게 제일 좋아’다. 좌충우돌하며 ‘노는 이야기’ 속에서 뽀로로와 친구들은 항상 즐겁다.

때로는 산 위에서 굴러 내려오면서 크기가 커진 눈덩이에 파묻히기도 하고, 힘센 포비가 그네를 세게 밀면 하늘로 날아가기도 한다. 어느 날은 똑똑한 친구 에디가 만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요리 온도를 잘 못 맞춰 쿠키를 태운 루피에게는 위로를 건넨다.

이처럼 에피소드별로 놀이의 도구와 유형은 다르지만,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이 영상 속에는 놀이의 속성과 놀이 자체의 의미가 잘 표현돼 있다. ‘노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명제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간은 누구나 놀이를 좋아한다. 놀이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최첨단 놀이기구가 놀이문화를 견인하고 있는 현재에도 인간은 놀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놀이가 과학을 만난다면 재미가 반감될까? 그렇지 않다.

보편적으로 놀이와 과학은 이원 대립의 지점에 있다고 인식하지만, 놀이에 더해진 과학 원리와 과학 기술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고도 적극적이다. 따라서 놀이의 품격은, 과학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놀이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최첨단 놀이기구가 놀이문화를 견인하고 있는 현재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은 놀이를 좋아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놀이의 ‘0’, 구조적 질서와 외부 영역과의 융합

사실 그간 놀이는 사회적 기의로 인해 평가절하된 면이 없지 않았다. 문화의 부속으로 여겨졌고, ‘일’과 대조되어 무목적 활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더해졌다.

하지만 역사학자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종전의 놀이 개념을 역전시켰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에서 파악하여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이를 좋아한다”는 주장과 함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개념을 만들어냈다.

호모 루덴스와 놀이 개념을 추적해보면, 마치 무질서와 무목적이 횡행할 것 같은 놀이가 상당히 규칙적이며, 질서가 전제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호이징가는 “놀이의 핵심은 규칙을 따르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즉, 그에 따르면 놀이는 구조적 질서의 엄격함과 외부 영역과의 융합에 자유를 허용한 문화의 원천인 셈이다.

어린 시절 놀이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놀이의 소재가 됐고, 그것이 놀이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우리의 놀이’ 안으로 들어오면 놀이의 규칙을 준수하며 하나의 놀이문화가 됐다.

이렇듯 놀이는 태생적으로 어떤 외부 영역과의 융합에 개방돼 있다. 자연 현상인 바람이 놀이가 되고, 주변 물질의 고유한 에너지가 놀이의 방법이 된다. 그리고 철저한 수학적 계산이 놀이의 도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호이징가는 놀이의 사회적 성격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좀 더 포괄적 시각으로 본다면 놀이는 자유, 그 자체다. 태생적으로 과학이라는 외부 영역의 자리는 마련해 둔 셈이다.

호모 루덴스와 놀이 개념을 추적해보면, 놀이가 상당히 규칙적이며, 질서가 전제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전통놀이부터 테마파크에는 과학원리가 숨겨져 있다?

놀이와 과학의 결합은 두 가지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먼저 과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놀이 방법이 되는 것, 두 번째는 과학이 적용되어 놀이 기구나 장난감을 만드는 것 등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전통놀이 중 팽이놀이가 있다. 요즘 어린이들의 팽이와는 외형이 다르지만, 끝이 뾰족하고 원형으로 된 구조는 같다. 이 놀이는 회전하는 팽이가 넘어지지 않게 오래 버티거나, 상대방의 팽이와 부딪쳐 넘어지지 않는 겨루기가 대표적인 놀이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팽이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놀이다.

또 연날리기 역시 과학 원리가 적용된 유명한 놀이 중 하나다. 연을 하늘 높이 날리고 오래 날리기 위해서는 연줄을 당기거나 실타래를 더 풀기도 한다. 이 행동은 일시적으로 공기의 흐름과 압력을 조정하는 베르누이의 원리가 적용된다.

테마파크의 백미, 롤러코스터는 상승과 하강 운동을 반복하여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놀이기구다. 특히 에너지가 전환될 때 잠깐의 무중력 상태인 제로 타임(zero time)에서 탑승자들은 가장 큰 짜릿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학자와 수학자들의 수많은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롤러코스터는 상승과 하강 운동을 반복하여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놀이기구다. Ⓒ게티이미지뱅크

놀이도구가 과학에 도움을 주다?

놀이에 과학기술이 적용된 사례뿐만 아니라, 놀잇감이 과학에 적용되기도 한다.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레고 블록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예술 교육의 총체로 인정돼 관심이 뜨겁다. 아이들이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공학·수학적 아이디어와 예술이 놀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팀(STEAM) 교육에서는 레고를 활용하고 있으며, 레고 에듀케이션의 STEAM 파크에는 전미유아교육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the Education of Young Children)의 과학, 수학 및 기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에 ‘제조 프로세스 혁신’ 전공필수과목에서 레고를 이용하여 공장 자동화 설비를 만들어 작동해보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 최근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의료 연구 실험실에서는 놀이도구의 원리를 이용해 환자의 혈액 속 성분을 분리해 내는 원심분리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일명 ‘실팽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어린이들이 주변에 흔히 찾을 수 있는 종이판과 실, 실을 잡을 수 있는 나무 손잡이만 있으면 뚝딱 만들어서 놀 수 있는 장난감이다. 이 간단한 장난감의 원리를 이용해서 의료기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혈액 내 말라리아 기생충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도 과학 교과목에서 장난감의 원리를 밝히는 활동이 점차 늘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물리 문제를 탐구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국제청소년물리토너먼트(International Young Physicists’ Tournament, IYPT)에는 장난감의 물리적 원리를 탐구하는 문제가 다수 출제되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이제는 어느 한 분야의 독주는 없다. 융합과 연계를 통해 과학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과 인접 영역도 동반 발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때 평가절하됐던 놀이에서 과학 원리를 발견하고,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장난감이 과학 학습의 도구가 되고, 과학 발전에 초석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히 놀이의 진화라 여겨지는 이 기대감 또한 즐거운 놀이가 아닐까.

한때 평가절하됐던 놀이가 과학 발전의 초석이 되면서, 놀이의 품격이 살아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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