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녹지 않는 홍적세 공원의 비밀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대형 초식동물이 영구동토층 해동 막아

1993년에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은 코스타리카 서해안의 한 섬에 세워진 테마파크가 배경이다. 이 공원에는 복제 기술로 부활한 티라노사우루스, 브론토사우루스, 벨로시랩터 같은 공룡들이 활보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멸종한 매머드가 지배했던 약 1만 년 전의 대초원 생태계를 재현하기 위한 공원이 있다. 1988년부터 시작돼 1996년에 문을 연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홍적세) 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시베리아 북동부 콜리마강 부근에 있는 이 공원에는 순록, 야생말, 무스, 들소, 사향소, 야크 등의 대형 초식동물들이 20㎢ 넓이의 울타리 안에서 서식하고 있다. 러시아 과학자 세르게이 지모프와 그의 아들 니키타 지모프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목표는 생태계의 변화를 통한 기후 효과에 대한 연구다.

들소, 순록, 야생말 등의 대형 초식동물의 서식 밀도를 높이면 영구동토층의 해동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Image by skeeze from Pixabay

홍적세 동안 시베리아를 지배했던 대초원 생태계는 약 1만 년 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이끼와 숲이 우거진 툰드라/타이가 생태계로 대체되었다. 이와 동시에 홍적세 동안 시베리아를 활보한 대부분의 대형 초식동물도 이 지역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시베리아에 대형 초식동물을 다시 뛰어놀게 하면 예전의 대초원 생태계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게 지모프 부자의 바람이다. 그렇게 될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영구동토층의 해동을 막아 대기 중의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발굽으로 눈을 다져서 보온 효과 떨어뜨려

그런데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던 지모프 부자의 바람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크리스티안 비어 박사팀은 대형 초식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게 되면 지구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영구동토층이 녹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지에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플라이스토세 공원처럼 1㎢ 당 114마리의 대형 초식동물이 서식할 경우 겨울철에 쌓이는 눈의 평균 깊이가 50% 감소된다. 그에 따라 2100년까지 3.8℃ 정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영구동토층의 온도 상승을 2.1℃로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의 효과라면 대형 초식동물의 개입만으로 2100년까지 전 세계 영구동토층의 80%를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그럼 과연 눈의 깊이 감소와 영구동토층의 해빙 방지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시베리아의 겨울에 쌓이는 두껍고 푹신한 눈은 단열재 역할을 해 그 밑의 땅을 따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형 초식동물들이 돌아다니면서 쌓인 눈을 다지게 되면 눈의 밀도가 높아져 그 같은 보온 효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것.

연구에 의하면 눈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열전달율은 50~65% 높아진다. 즉, 토양과 대기 사이의 역 전달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므로, 겨울철의 차가운 기온이 토양을 훨씬 더 차갑게 얼림으로써 연간 평균 토양 온도를 낮추게 된다.

대형 초식동물들이 풀을 찾느라 눈을 파헤치면 눈의 보온 효과는 더욱 떨어지게 된다. 또한 대형 초식동물들이 살면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확대된다. 그렇게 되면 여름철에도 뜨거운 햇빛이 반사돼 지표 온도가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두운 숲은 초원보다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 영구동토층 해동

영구동토층은 이제까지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는 탄소 창고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온도가 상승해 해동되면 영구동토층이 품고 있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기후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기후학계에서는 영구동토층의 해동을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 중 하나라고 일컫기도 한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티핑 포인트가 일어날 경우 영구동토층은 2100년까지 11~143기가톤의 탄소를 대기 중으로 추가 방출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모든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가 매년 10기가 톤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양인 셈이다.

지난해 미국 알래스카대학 연구진은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애초 예상보다 70년이나 빨리 녹고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만년설이 녹아 함몰된 지형에 물이 고여 연못이 형성되거나 벌써 초목이 무성해지기 시작한 곳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독일 함부르크대학 연구진의 연구는 야생동물이 영구동토층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에 불과하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수의 초식동물들이 도입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부작용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연구진 역시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들은 영구동토층에서 대형 초식동물의 서식 밀도를 증가시키는 노력은 모든 것을 감안해도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을 능가한다고 밝혔다.

플라이스토세 공원에는 현재 1㎢ 당 114마리의 초식동물이 서식하는 데 비해 그 주변의 자연 경관에서는 1㎢ 당 평균 5마리만이 서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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