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앞선 문호개방

베르메르 ‘지리학자’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초행길이라도 목적지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다. GPS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 시스템 덕분이다.

GPS가 활용되기 전에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서 지도가 필요했다.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기호로 표시한 지도는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 <지리학자>-1668~1669년, 캔버스에 유채, 53*46,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미술 연구소


지도의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는 지리학자를 그린 작품이 베르메르의 ‘지리학자’다.

풍성한 가운을 입은 학자가 사분의 기구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고 양탄자가 깔려 있는 탁자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다. 펼쳐진 지도와 사분의 기구는 남자가 지리학자라는 것을 상징한다.

사분의는 천체 고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던 항해 기구로 0과 90도의 눈금이 있는 4분의 금속 고리가 달려 있다. 사분의는 실제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했다.

작품 속의 남자가 사분의를 들고 있는 것은 지도에 표시돼 있는 지점 간의 거리를 계산 중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영감이 떠올랐다는 것을 암시한다.

창문으로 들어온 밝은 햇살은 지리학자의 영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며 귀 뒤로 넘긴 머리는 연구 중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리학자 뒤 가구에는 지구의와 책이 놓여 있고 벽에 지도가 걸려 있으며 바닥에는 종이 뭉치가 흐트러져 있다.

지구의는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의 관심을 나타낸다. 당시 네덜란드는 자원은 풍부하지 않았지만 문호를 일찍 개방하여 부를 축적해 유럽의 최강대국이 됐다.

무역으로 돈을 번 네덜란드 상인들은 새로운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해상 무역의 중요성을 깨달은 상인들은 지구의, 지도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암스테르담은 그들의 욕구에 맞춰 목판에 지도를 새겨 인쇄한 지도책을 발행했다.

또한 지도는 네덜란드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매개체로 상인은 물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중산층들도 지도를 사서 집에 장식용으로 걸어 두었을 정도다. 벽에 걸려 있는 지도는 당시 발행된 벽걸이용 지도로 지리학자의 애국심을 의미한다.

가구 위의 지구의는 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 네덜란드의 분위기를 나타내며 기구의 소중함을 표현하기 위해 창문에 빛을 받아 반짝이도록 연출했다.

얀 베르메르(1632~1675)는 이 작품에서 지리학자의 콧날을 중심으로 한쪽은 밝게, 한쪽은 어둡게 묘사하고 있는데, 강한 명암대비는 학자의 표정을 진지하면서도 학문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가구와 지도 사이에 있는 글은 베르메르의 서명으로 이 작품은 베르메르의 작품 중 제작년도가 적혀 있는 세 점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천문학자’인데, 두 작품은 과학사의 대변혁이 이뤄지던 시기에 제작됐다.

17세기 중반 보수주의 과학자들은 천체의 운행이나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신의 뜻에 거슬린다고 여겨 과학적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고대의 학자들이 발견한 것을 일부러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루이 14세가 파리에 천문대를 건립하도록 지시하면서 과학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천문학의 발달이 중요했던 것은 바닷길을 통한 교역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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