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낮과 밤의 변화가 없는 ‘아이볼 행성’

[과학기술 넘나들기] 제2의 지구를 위한 까다로운 조건들(2)

이른바 ‘슈퍼 지구’, 즉 지구를 닮은 외계행성으로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려면, 일단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영역(Goldilocks zone)에 위치해야 하며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산소를 포함한 대기와 딱딱한 암석층을 지녀야 하며 크기와 밀도, 물질의 조성 등도 지구와 유사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발견된 외계행성 중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꽤 있어서 학계와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모항성이 태양보다 너무 작아서 행성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면, 역시 제2의 지구가 되기에는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런 외계행성의 대표적인 경우로서 트라피스트-1(TRAPPIST-1) 주위를 공전하는 7개의 외계행성을 비롯하여 프록시마b(Proxima b)가 있다. 프록시마b의 모항성은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로서, 센타우루스 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알파 센타우리의 두 항성으로부터 약간 떨어져서 이들과 함께 3중 쌍성계를 이룬다.

프록시마b와 모항성의 상상도 ⓒ ESO/M. Kornmessser

지구로부터 4.24광년의 거리에 위치한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양계 밖의 항성 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프록시마b는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골디락스 행성인데, 이 외계행성의 모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적색왜성으로서 태양보다 훨씬 작다. 적색왜성은 근거리 항성 중에서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은하계에 흔한 항성이지만, 밝지 않기 때문에 관측하기는 쉽지 않다.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반지름은 태양의 1/7 수준이며, 질량은 태양의 12% 정도로서 방출하는 열과 에너지는 태양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적색왜성을 모항성으로 둔 외계행성이 골디락스 조건을 만족하려면,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공전을 해야만 한다. 모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로부터 759만 km 떨어져 있는 프록시마b는 수성보다도 공전 반지름이 작은 셈인데,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의 1/20에 불과하고 공전 주기는 11.2일이다.

프록시마b가 제2의 지구가 되기에는 다소 어려운 이유는 적색왜성인 모항성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골디락스 영역에 위치해서 모항성으로부터 받는 전체 에너지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양과 엇비슷하다 해도, 빛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항성을 분류하는 H-R도 및 태양의 위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태양은 항성을 분류하는 도표인 헤르츠스프룽-러셀도(Hertzsprung-Russell diagram, H-R도) 상의 주계열성 중에서도 이른바 G2 분광형을 지니는 항성이다. 항성이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은 표면의 온도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데, 절대온도 5860K인 태양에 비해 적색왜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표면 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은 약 3040K 정도로서 M5 분광형으로 분류된다.

지구상의 식물의 잎이 초록색인 이유는 광합성을 위해 태양빛의 주요 스펙트럼 파장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데, 만약에 프록시마b에 고등식물이 살기 위해서는 잎이 검은색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표면 온도가 낮은 모항성 빛의 스펙트럼에 적응하려면 적외선 대역을 포함한 모든 파장의 빛을 조금이라도 더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록시마b에 고등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더욱 큰 문제는 모항성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기조력이 대단히 커진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태양보다 질량이 작다고 해도 프록시마b의 공전 반지름이 지구의 1/20 정도라면, 기조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으로 추측된다. 모항성에 의한 기조력이 이처럼 커지면 행성은 자체 자전을 사실상 못하게 되어, 마치 항상 같은 면만을 보이면서 지구를 공전하는 달처럼 공전과 자전주기가 같아지는 동주기자전(Synchronous rotation) 행성이 된다.

즉 지구처럼 낮과 밤이 교대로 찾아오지 않고 조석고정(潮汐固定, Tidal locking)이 되어, 행성의 반쪽에는 영원한 낮이, 나머지 반쪽에는 영원한 밤이 계속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조석고정이 된 행성은 반은 얼어붙고 나머지 반은 매우 뜨거울 것이므로, 마치 사람 눈을 닮았을 것이라 해서 일명 ‘아이볼 행성(Eyeball planet)’이라고도 부른다. 트라피스트-1의 외계행성들과 프록시마b를 비롯한 상당수 외계행성이 이러한 아이볼 행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볼행성으로 추정되는 트라피스트-1f의 상상도 ⓒ 위키미디어

일부 과학자들은 낮과 밤이 계속되는 각 반쪽의 경계에 위치한 지역은 쾌적한 온도일 것이므로 그곳에 생명체가 살 수도 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환경에 맞춰서 고등생명체가 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낮과 밤의 변화가 없는 외계행성을 과연 ‘제2의 지구’라 부를 수 있을지 여러 가지로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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