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남극에 있는 또 하나의 우리말 지명

미국 연구진이 명명한 ‘전재규 해저화산’

서울 북한산의 인수봉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벽등반 코스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극대륙의 위버반도 남서쪽의 한 봉우리에도 ‘인수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버반도에 자리 잡은 가파른 경사의 장방형 봉우리에는 ‘울산바위봉’이란 이름이, 남극 바톤반도의 넓은 고위평탄면에는 ‘세석평원’이란 이름이 각각 붙었다.

이 지명들은 그동안 세종과학기지에 근무하는 남극대원들이 불러오던 이름으로 ‘남극지명사전(CGA)’에 정식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이번에 등재되는 한국식 남극 지명은 이외에도 ‘아우라지계곡’, ‘부리곶’, ‘미리내빙하’, ‘마포항’, ‘반달곶’, ‘우이동계곡’, ‘삼각봉’ 등 총 10개이다.

▲ 이번에 남극지명사전에 등재된 한국식 지명의 위치도. ⓒ국토해양부


우리나라가 남극지명사전에 국제지명을 등록한 것은 지난해(17개)에 이어 두 번째로, 이제 총 27개의 국제지명을 보유하게 됐다.

지난달 12일에는 우리나라가 남극에 두 번째로 추진하는 ‘장보고 과학기지’ 건설이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남극에 기지를 새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남극조약 33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1988년에 건설한 세종기지는 남극점으로부터 3천500킬로미터, 남극대륙과도 1천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남극에서의 다양한 연구활동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은 장보고기지는 남극점에서 1천700킬로미터 떨어진 테라노바 만에 들어서므로 남극대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토해양부에 의하면 장보고기지는 다음 달부터 국내에서 구조물을 조립해 사전 점검을 한 뒤 올 연말부터 남극 현지에서 착공할 예정이다. 2014년 3월에 완공되는 장보고기지는 연면적 4천458평방미터에 최대 6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장보고기지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남극에 2개 이상의 기지를 가진 아홉 번째 국가가 된다.

2개 남극기지 보유한 9번째 국가

남극에서 최근에 들려온 희소식이 또 하나 있다. 올해 초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운석탐사팀은 독자적으로 탐사에 나서 남극대륙의 빅토리아 산악지대에서 무게 52그램의 운석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수집된 운석의 80%가 발견될 정도로 남극은 운석의 보물창고이며 생성 당시 상태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보존돼 있어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 그동안 우리 연구팀도 남극에서 수차례 운석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극에서 전해지는 이런 희소식들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다. 사실, 남극 대륙에 우리나라식 지명을 처음으로 붙인 국가는 따로 있다. 2007년 7월 모나코에서 개최된 ‘국제해저지명소위원회’에서 미국은 남극 북단에서 발견된 해저화산에 ‘전재규 해저화산’이란 명칭을 신청해 등재했다.

또 남극에 사는 세균에도 전재규에서 비롯된 이름을 지닌 종이 있다. 지난 2004년 국내 연구진이 남극 세종기지 부근에서 새로운 세균을 발견했는데, 마침 그 세균이 미생물 분류학상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속에 해당했다.

연구진은 세종기지의 이름을 따 새로운 속을 ‘세종기아(Sejongia)’라고 명명한 후 2개의 신종 세균 중 하나에 전재규 대원의 성을 따 ‘세종기아 전니아이(Sejongia jeonii)’라는 이름을 붙인 것.

미국 연구진이 새로 발견한 해저화산에 전재규라는 이름을 붙이고, 국내 연구진이 처음으로 국제학회의 공인을 받은 남극의 신종 세균에 전재규의 성을 붙인 것은 2003년 말 남극에서 순직한 전재규 대원의 희생이 그만큼 고귀했기 때문이다.

전재규 순직 후 쇄빙건조선 건조 약속

당시 전재규 대원을 비롯한 세종기지 근무자들은 전임 대원들을 고무보트에 태워 칠레의 공군기지로 후송한 뒤 돌아가던 중에 실종됐다. 고무보트 2대 중 1대가 먼저 실종되자 무사히 세종기지에 도착했던 전재규 대원이 동료들과 함께 다시 나와 실종 보트를 수색하던 도중 모두 함께 실종된 것.

다행히 먼저 실종된 보트와 전재규 대원이 탄 보트의 대원 등 총 8명 중 7명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전재규 대원은 끝내 숨진 채로 발견됐다.

▲ 해빙에 정박한 아라온호의 모습 ⓒ극지연구소

이 사고가 발생한 직후 정부는 고무보트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고 세종기지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 등 안전장비를 현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쇄빙연구선이 바로 ‘전 세계 모든 바다를 누비며’라는 뜻의 아라온호다.

아라온호는 2010년 초 남극에서의 첫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지난해 말에는 13일간 남극의 해빙이 둘러싸여 있던 러시아의 조난 어선 스파르타호를 무사히 구조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번에 남극조약 당사국들이 장보고기지 건설에 관한 동의를 예상보다 빠르게 해준 것도 남극을 누비는 쇄빙선 아라온호의 활약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극에서 주로 이뤄지는 극지연구 중 한 분야인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인 이슈이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요한 과제이다. 또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미지의 대륙인 남극은 2048년까지 자원 개발을 금지하도록 돼 있는 남극조약의 규정 기한이 다한 뒤에는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로 떠오를 수 있다.

우리가 먼 미래를 바라보며 남극의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면, 동료를 구하기 위해 차가운 남극의 해안가에서 숨을 거둔 고 전재규 대원의 희생도 그리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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