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유전체를 연구하면 신약이 보인다

정신질환에 이어 항이뇨 치료 성분 발견

동북아지역 해안에만 서식하는 낙지는 다리가 8개인 문어와 친척 사이인 해양생물이다. 이렇게 8개의 다리를 가진 해양생물들은 2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엄청난 모성애를 가졌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등한 뇌를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똑똑하다는 점이다.

지능이 높다 보니 주변의 움직임을 흉내 내거나 모방할 수 있으며, 8개의 다리로 섬세한 조종이 가능하다. 이는 낙지가 ‘두족류’에 속하는 해양생물이기 때문이다.

낙지 유전체에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이 발견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두족류란 문어나 오징어처럼 머리에 다리가 붙어있는 해양생물들을 가리킨다. 뇌의 크기는 인간의 두뇌에 비해 1/5000 수준이지만, 무척추동물 중 뇌 용량이 몸체의 크기에 대비해서 가장 크며 사고능력과 학습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낙지가 지능만 높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유익한 성분을 체내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견되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람에게 유익한 성분이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경조절 물질이다.

정신질환 관련 치료에 효과적인 세파로토신

낙지는 원래 보양식으로 유명한 식재료 중 하나다. 간의 부담을 줄여 주어 자양강장제 등에 많이 사용되는 타우린(taurine)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칼로리이고,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며, 빈혈 예방과 시력 회복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지친 체력을 보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식재료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최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소속 연구진은 낙지에서 자양강장 성분 외에도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신경조절 물질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둬 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해당 연구는 해양생물자원관이 유전체 분야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포스트게놈 다부처 유전체 사업’의 일환으로 거둔 성과다.

연구진이 발견한 신경조절 물질은 모두 2종으로서 세파로토신(cephalotocin)과 스펙신(spexin)이다. 2종 모두 신경계의 간접적인 기능 조절 및 직접적인 신경전달 물질로 작용하는 펩타이드(peptide)들이다.

뇌기능 개선 신경전달물질 작동 원리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세파로토신의 경우 인간과 유사한 포유류 동물인 쥐에 투여했을 때, 뇌세포 내의 산소전달을 유도하고 인지 기능 및 감정과 관련된 행동을 조절하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 때 나타나는 우울증을 감소시키는 항스트레스 기능을 지녔음도 확인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낙지의 신경조절 물질이 포유류 동물에도 효능이 있음을 확인한 성과다.

이에 대해 해양생물자원관의 관계자는 “세파로토신은 이미 유전체 정보 분석이 완료되어 있다”라고 언급하며 “세파로토신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세파로토신 유사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여 다양한 종류의 신경 조절물질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측했다.

스펙신의 경우도 세파로토신과 비슷하다. 세파로토신보다 기능이 덜 알려진 펩타이드이지만, 공포와 불안 그리고 식욕 등 뇌기능을 조절하는 효능을 갖고 있어서 정신질환과 관련한 치료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작용 없는 항이뇨 효과도 발견

세파로토신의 효능과 관련하여 의료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성능이 발견되었기 때문인데, 바로 ‘항이뇨 작용(antidiuretic activity)’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항이뇨란 소변량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말한다. 항이뇨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강력한 항이뇨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배설기관계인 신장의 세뇨관에서 수분의 재흡수를 촉진시키는 작용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

이 같은 낙지 유전체의 항이뇨 효과는 해양생물자원관과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공동 연구진이 밝혀냈다. 낙지 유전체에 포함된 물질인 세파로토신이 항이뇨 작용과 연관된 성분인 V2 수용체를 활성화하여 수분이 몸속으로 다시 흡수되는 것을 촉진함으로써 소변을 억제하는 것이다.

실험용 집쥐의 소변량 감소 효과 비교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공동 연구진은 이 같은 기전이 생체에도 적용이 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세파로토신을 투여했다. 그 결과 생리식염수를 투여했을 때보다 세파로토신을 투여했을 때가 소변량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소변량은 줄어들지만, 삼투 농도는 높아져서 노폐물의 체외 배출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낙지의 세파로토신은 시판 중인 항이뇨제와 유사한 효과를 보이면서도, 혈압 상승 같은 부작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시판 중인 항이뇨제는 혈압이 올라가는 등의 부작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연구진은 세파로토신을 활용할 경우 부작용이 적은 항이뇨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항이뇨제 국내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나이가 60대 이상인 성인들 중 70% 이상이 야간뇨로 인한 수면 방해를 경험한 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제품화가 되면 향후 시장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시장은 평가하고 있다.

특히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따라 해외 생물자원의 이용이 어려워진 만큼, 국내에서 나는 낙지를 통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유용 성분이 개발된다면, 향후 유망 분야인 해양 생물공학 산업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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