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 디자이너이다!

[교육현장의 목소리] 인성에 기반을 둔 상상력과 창조력 기르기 프로젝트

▲ 나는 디자이너다. 수업 디자이너다. 앞으로도 소화가 잘 되는, 영양을 듬뿍 담은, 차곡차곡 잘 정리된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 할 것이다. ⓒScienceTimes



“우리는 앞으로도 늘 추억을 나눌 것이고, 책 속에 푹 빠질 것입니다. 변함없이 저녁을 요리할 것이고, 경기를 볼 것입니다. 여전히 회의를 할 것이고, 홈 무비를 만들거나, 배우는 일도 멈추지 않겠지요. 다만 그 방법만은 같지 않을 것입니다.” (iPad 2 We’ll Always 광고)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잘 어울리는 차분한 배철수 씨의 iPad 2 We’ll Always 광고의 내레이션. 정신이 번쩍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바뀌어져 들렸다.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도 가르치고, 배울 것입니다. 다만 그 ‘방법’만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5차 산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필요’가 아닌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욕망은 실용, 편리, 기능을 넘어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 시대는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이에 맞춰 인재육성 패러다임도 변화를 지나 진화의 단계에 돌입했다.

2000년 중학교에 첫 발령이 난 이후 고등학교를 거쳐 2009년 광주과학고등학교에 입성했다. 첫 발령 이후 방학 때마다 배낭 하나 메고 일본, 터키, 북유럽, 남유럽,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전국국어교사모임 활동을 하면서, 연극과 독서 지도에 열을 올렸다.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언어영역 등급에 울고 웃는, 수능 언어영역 맞춤 교사로 살았다.

그러다가 수학‧과학에 탁월한 영재들이 모인 과학고에 왔다. 한 학년이 20명씩 네 개 반이고, 2학년 때 조기졸업을 해서 3학년은 20명으로, 총 학생수가 180명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2학년 때 카이스트, 포항공대, 지스트 등으로 조기 진학한다. 하지만 ‘창의적 글로벌 과학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는 우리학교에서의 근무는 지식전달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창의성 발현의 조력자로 진화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학생들의 평가와 멘토 아무개 선생님의 질문도 나를 성장하게 했다. “좋은 수업이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수업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멘토 선생님과의 첫만남, 첫 질문도 나를 성장시켰다. ” 너, 수업 못하지?, 너 책 안 읽지?” 라고.

변화는 현상을 유지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는 위기의 순간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다른 방법을 찾을 때 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양한 교수법이나 창의성 관련 책을 읽고, 강의에 참석했다.

학생들이 수업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수업 내용에 더 집중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별 활동을 통해 집단지성의 힘으로 배운 것을 통합하고 매력적인 결과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멋진 결과물은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疏通)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감각적 체험과 이성, 환상과 실재, 직관과 지성, 가슴과 머리와 배라는 서로 다른 것들이 잘 비벼질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이 갔다. 이때 나는 PBL 창의교수법을 만났다.

▲ PBL의 속성- 나선형 ⓒScienceTimes

PBL(Problem Based Learning)은 말 그대로 문제에 기반한 학습이다. PBL이란 ‘지식은 구성된다’는 구성주의 원칙이 반영된 실천적 모형이다. 이 모형은 ‘문제’를 도출하고, 그것의 해결과정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주도성과 문제해결력이 길러진다. 이 모형은 여러 번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질문 → 과제제시 → 방법안내 → 활동 → 결과공유 → 다시활동 → 과제발표 → 성찰 → 질문’ 이라는 반복과 심화의 나선형 수업으로 재구조화했다.

1. 교과서 단원을 상황별, 단계별, 계절별로 재구성
예를 들어 입학식을 막 치른 1학년 학생들의 첫 단원으로 ‘국어(하) 2. 좋은 책, 좋은 강의 (2)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의 가치’ 를 선택했다. 입학사정관제로 뽑힌, 목표가 뚜렷한 입학생이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친구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 ‘나는 왜 과학고에 왔지? 나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가 있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2. 단원 시작 전, PBL에 기반한 수업계획서 작성
수업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수업 계획서를 스크린에 띄워 우리가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공유했다. 이 때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학생들에게 질문하며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갔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훌륭한 방법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한 이 방법은 수업요소가 누락됨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게 했고, 허둥대지 않고 필요한 요소가 제 때 투입되게 했다.

▲ 조별 ‘아트저널로 표현한 문학작품의 제목 추측하기’ ⓒScienceTimes


3. 학습목표를 달성하는 창의적 과제 발굴 제시
[3월] 국어(하) 2. 좋은 책, 좋은 강의 (2)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의 가치
목표 : ‘과학의 가치’에 대한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다.
– 주제 : 우리 조는 ‘과학의 가치’를 ○○○ 이라고 생각한다.
– 형식 : (중)수필 서론 본론 과학의 가치1•2•3•4 결론

[4~6월] 국어 (상) 5. 우리말, 우리글 톺아보기 (0) 말의 힘 단원 설정
목표 : ‘말의 힘’에 대해 연구실험보고서를 쓰고, 발표할 수 있다.
– 주제 : 우리 조는 ‘말의 힘’ ○○○에 관해 연구실험보고서를 쓸 수 있다.
– 형식 : 연구실험보고서
– 유의점 : ‘언어’관련 실험 후, 보고서 작성과 PPT 발표

[7~8월] 국어 (상) 6. 개성과 안목 ⑴ 너를 기다리는 동안 ⑵ 권태
목표 : 반별 개성을 살려 ‘2011 창의적 광주과학고 사랑 Project’에 참여한다.
– 주제 : 광주과학고를 배경으로 ‘개성과 안목’을 발휘해 한 장씩 사진 찍기
– 형식 : 반별로 총 20장의 사진을 모아 협력하여 스토리텔링 영상을 만들 것.

[9월] 국어 (상) 3. 글읽기 세상읽기 ⑴ 동물의 복지 ⑵ 기후변화와 국제협약
목표 : 조별 ‘동물의 복지,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다.
– 주제 : 대주제 (동물의 복지, 기후변화) 소주제 (조별로 정하기)
– 형식 : 자유로운 형식•자신 있는 형식 (확산을 염두에 둘 것)

▲ 조별 ‘사과를 묘사하고 스토리텔링하기’ ⓒScienceTimes


[10월] 국어 (상) 4. 문학, 흐르는 강물처럼 ⑵ 관동별곡
목표 : ‘창의적 발상’을 ‘새로운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 주제 : 대주제 (창의적 발상) 소주제 (자유롭게 각자 정하기)
– 방법 : [야외수업] 대상을 선택해 창의적 발상으로, 새롭게 표현.
– 형식 : 지식채널e script (script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할 것)

나는 디자이너다. 수업 디자이너다. 앞으로도 소화가 잘 되는, 영양을 듬뿍 담은, 차곡차곡 잘 정리된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 할 것이다. 자유롭고, 인격이 존중되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수업을 만들어 갈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수업이 되었으면 한다.

교실이 조별 활동과 창의적 과제로 살아 움직인다. 창의적 수업을 경험하는 학생과 교사는 반짝인다. 즐거움의 물결이 흐른다. 이 창조하는 경험은 학생을 몰입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 개인 ‘자연에서 대상물을 정하고, 새롭게 표현하기’ ⓒScienceTimes


『생각의 탄생』 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라는 열 세 가지 생각 도구를 말한 바 있다. 국어 수업은 PBL이라는 나선형 수업 구조 속에, 이 생각 도구들로 얻은 주관적 통찰을 객관적인 언어로 변환하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가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창조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온 동네가 키운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기성세대는 꿈나무들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꿈나무들이 막연한 상상의 세계에서 창조적인 상상의 세계로,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징검다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이 교육기부 문화가 활성화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교실이 질 높은 창조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감 있게 도전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우리 사회가 같이 만들 수 있다.

인성에 기반을 둔, 갈고 닦은 상상력과 창조력은 학생이 미래 사회의 주체가 되었을 때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 역량이다. 해 낼 수 있다는 내일의 자신감을 갖은 청소년의 밝은 얼굴을 떠올려 본다. 지구촌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소통하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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