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알고 있다’(The Nature of Life and Death)는 꽃가루가 범죄 사건에 있어 얼마나 강력한 증거가 되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퍼트리샤 윌트셔(Patricia Wiltshire)라는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화분학자이며 고고학자이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25년간 300건 이상의 까다로운 범죄 사건을 해결해 온 법의생태학 선구자이다.
꽃가루는 살인이나 실종사건에서 범인을 정확히 찾아주는 매우 강력한 증거 역할을 한다. 꽃가루가 가진 증거능력을 바탕으로 여성 화분학자가 범인을 찾는 과정을 읽다 보면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추리 작가가 쓴 흥미진진한 소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
꽃가루와 포자는 균주에 훼손되지 않으면 수천 년 또는 수만 년 동안 보존된다. 고고학이나 생태학에 동원하면 꽃가루는 현장을 마치 사진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재현하게 도와준다.
두 소년이 우연히 무거운 가방을 발견해서 열어보니 그 안에 미라처럼 변한 시신이 들어있었다. 시신 일부는 검은 비닐로 꽁꽁 쌓였다. 비닐 안 허벅지에 노란 시카모어 나뭇잎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퍼트리샤 윌트셔는 시카모어 나뭇잎에서 여러 가지 꽃가루를 채취했다. 장미과 유형 꽃가루가 많았고 클레마티스, 시카모어, 소나무, 자작나무 꽃가루도 섞여 있었다. 퍼트리샤 윌트셔는 ‘잘 정돈되지 않은 정원’을 떠 올렸다.
사진 보다 더 자세한 꽃가루 증거들
시신의 주인공은 예멘이민자였다. 매물로 나온 그 집에 들어가니 역시나 뒷문 바로 밖에서 훼손된 커다란 장미 덤불 잔해를 발견했다. 정원 나머지 부분은 정리되었고, 표토는 전부 치워졌다. 시카모어 나무는 차고와 옆집 정원에 늘어져 있었다.
범인 검거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잔혹한 성격의 노인은 아들과 손자에게 거칠게 대했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자를 혼내 준다는 명목으로 칼을 꺼내 들었다. 아들과 손자는 순간적으로 그 칼을 빼앗아 아버지이면서 할아버지인 그를 찔러 죽인 뒤 시신을 처리해서 길거리에 버렸던 것이다.
이 책에는 데이트 강간의 범인을 잡는 사례가 여럿 나온다. 데이트 도중 강간했는지 아닌지 젊은 남녀가 서로 우길 때 범인을 가려내는 일 같은 것이다.
물론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으나, 재판을 진행할 경우, 여성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증언해야 한다. 여성에게 더욱 불리하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럴 때 화분학자가 제시하는 꽃가루 증거는 당사자의 고백을 이끌어내는 매우 강력한 증거 역할을 한다.
어떤 젊은 남성은 우발적으로 애인을 목졸라 죽였다. 놀랍고 흥분된 상태에서 남성은 시신을 자동차에 싣고 숲속에 들어가서 유기하고 돌아왔다. 범인은 시신을 어디에 유기했는지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법의생태학자는 범인이 착용했던 신발과 옷, 그리고 범인이 몰고 간 자동차에서 매우 구체적인 증거를 채취한다. 현미경으로 어떤 나무의 꽃가루가 있는지 확인하고, 숫자를 센다. 이를 근거로 퍼트리샤 윌트셔는 현장의 모습을 경찰관에게 알려주고 경찰관들은 시신을 찾아냈다.
장미꽃이 있는 작은 정원에 잠시 머물렀던 두 젊은 남녀의 데이트 강간 사건의 경우, 저자는 남자의 재킷과 바지와 무릎에 묻은 꽃가루와 흙을 토대로 강간임을 밝혀냈다.
남성의 웃옷 앞부분과 뒷부분에 남은 꽃가루의 분포가 다르고, 남성의 무릎과 팔꿈치에 묻은 흙과 흙에 묻은 꽃가루는 강간임을 외친다.
식물학, 고고학, 화분학으로 폭넓은 경험을 쌓던 그녀에게 어느 날 경찰관이 전화를 걸었다. 피살당한 시신의 범인을 찾는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그동안 예상치 못했던 강력사건의 해결사로 변신했다.
그녀는 자동차에 남은 꽃가루와 자동차 바퀴에 묻은 흙을 조사했다. 현장을 방문한 저자는 시신이 발견된 산울타리의 정확한 지점을 콕 찍어줬다. 증거물로 남은 꽃가루 집합체는 시신이 발견된 지점의 식물 식생을 사진처럼 보여줬던 것이다.
정말 평범한 식물학자의 놀라운 변신은 기초과학의 예기치 못한 유용성에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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