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아’

로봇이 바꾸는 세상(8) 로봇 연인

2014년 국내 개봉한 호아킨 피닉스 주연 <그녀(Her)>와 2015년 개봉한 영화 <엑스마키나>는 장르나 주제의식은 다르지만 인공지능 로봇을 사랑하는 인간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영화에서 로봇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이용당하거나 버림받는다.

<엑스마키나>에서는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어 자신을 도와준 주인공을 버리고 탈출하는 인공지능 로봇 ‘에바’가, <그녀>에서는 주인공 테오도르를 포함해 동시에 641명과 사랑을 나누다 결국 더 큰 사랑(더 큰 용량 혹은 더 큰 학습의 세계)을 찾아 떠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만다’가 각각 배신의 아이콘이 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인간 특유의 취약성과 외로움으로 인해 로봇과의 사랑에 빠질 개연성은 충분히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만 인간이 느끼는 사랑, 고독감, 연민, 질투 등의 감정에 대한 성찰을 인공지능이라는 매개를 통해 비춰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로봇과의 (지속적이고 상호적인) 사랑은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듯 하다.

인공지능 사만다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그녀'

인공지능 사만다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그녀’ ⓒ 유니버설픽처스

여러가지 로봇 담론 가운데서도 유독 사랑에 관해서는 인간이 꽤 자신만만한 것처럼 보인다. 로봇이 사람보다 힘이 세고,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심지어 예술의 영역까지 넘보더라도 사랑의 영역에서는 감히 인간의 자리를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로봇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도쿄에 사는 60대 센지 나카지마씨는 사오리라는 로봇 인형과 동거 중이다. 그는 사오리를 데리고 쇼핑도 다니고 산책도 하며 목욕도 시켜주고 심지어는 성생활도 즐긴다.

니카지마는 사오리를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외로움을 덜어주는 동반자라고 믿고 있다.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며 돈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게 그가 사오리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는 예상과 달리 부인과 자녀 둘을 두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자신이 3D프린터로 제작한 로봇 인무바타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 과학자 릴리에 대한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녀는 로봇과 약혼 상태에 있으며 프랑스에서 사람과 로봇간 결혼이 허용되면 바로 결혼하겠다고 밝혔다.

릴리는 19세에 처음으로 로봇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으며 사람에게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전하며 “우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인형과 사랑에 빠진 일본 남성 나카지마씨. ⓒ 로봇신문

인형과 사랑에 빠진 일본 남성 나카지마씨. ⓒ 로봇신문

니카지마와 릴리의 사례는 단지 독특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직은 생소하고 희한한 이야기지만 앞으로 이런 류의 사례들은 숱하게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런던시티대학의 에드리언 척 교수는 “로봇과의 결혼이 황당한 것으로 들리겠지만 수십 년 전에는 동성애 결혼도 마찬가지였으며 1970년대까지 미국 일부 주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서로 결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며 “2050년이면 로봇 파트너와 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온라인 할인쿠폰업체인 바우처코즈프로(VoucherCodesPro)가 2816명의 영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1%가 로봇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런던대학 연구팀이 18~67세 남성 2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더 파격적인 비율이 나왔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오는 2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준 뒤 ‘향후 5년 내에 섹스 로봇을 살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가 무려 40.3%에 달했다.

아직은 섹스봇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 대화를 알아듣고 반응하며, 감정을 살피고, 적당한 집안일까지 해주는 동반자 로봇이 나온다면 그 흡입력은 상상 이상일 수도 있다.

리얼돌을 판매하고 있는 어비스 크리에이션 ⓒ 어비스 크리에이션

리얼돌을 판매하고 있는 어비스 크리에이션 ⓒ 어비스 크리에이션

이미 섹스봇은 전세계적으로 ‘핫한’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시작은 섹스봇이지만 이후에는 진정한 동반자 로봇을 지향한다.

섹스봇의 대표 주자는 2010년 등장한 트루컴패니언의 록시(Roxxxy)다. 록시는 인공지능 전문가 더글러스 하인스가 개발한 섹스로봇으로 키 170cm, 몸무게 54kg의 여성을 상징한다. 눈동자 색깔, 헤어스타일 등 열 가지 조건에 맞춰 외형을 선택할 수 있으며 심지어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 주도적인 성격,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 등 다섯가지 성격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며 심장이 뛰고 잠꼬대를 하거나 코도 곤다. 트루컴패니언은 궁극적으로 섹스도우미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동반자로서 록시를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트루컴패니언은 여성과 게이남성을 위해 남자 섹스봇 록키(Rocky)도 출시했다. 가격은 7000~9000달러 선으로 고가이지만 이미 수 천대가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록시에 도전장을 낸 리얼돌(RealDoll)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외곽에 소재한 어비스 크리에이션은 섹스로봇인 리얼돌을 올해 선보인다. 리얼돌은 얼굴과 몸매는 물론 성기까지 거의 인간에 가깝도록 갖추었고 체온을 가지며 터치에 반응하는 등 극사실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창업자 맷 맥멀렌은 20년동안 섹스봇 개발에 몰두해왔으며 인간들이 캐릭터에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로봇 ‘에리카’도 일본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오사카대학, 교토대학 연구진이 공동으로 개발한 에리카는 23세의 실물 크기 로봇으로 사람과 유사한 피부를 갖고 있으며 대화가 가능하다.

2014년 프랑스의 한 아티스트가 제작한 미래 섹스로의 내부 모습  ⓒ 데일리메일

2014년 프랑스의 한 아티스트가 제작한 미래 섹스로의 내부 모습 ⓒ 데일리메일

학계에서는 사랑과 섹스의 영역에서 로봇의 등장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로봇과 동반자 관계가 형성돼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과 인간 관계 상실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경계하는 학자들로 나뉘어 한치 양보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AI 전문가 데이비드 레비(David Levy)는 대표적인 낙관론자이다. 그가 쓴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Love and Sex with Robots)’ 책에는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2050년에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사양에 맞는 연인이나 배우자를 주문할 수 있고 인간 연인들끼리 못하는 정교한 사랑의 대화도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래학자인 이안 피어슨(Ian Pearson) 박사 역시 오는 2050년이면 로봇과의 성관계가 사람간의 성관계보다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로봇이 가족 구성원으로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대 심리학 교수인 게리 마커스(Gary Marcus)도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며 “로봇의 감정이 고도로 채워질 때까지는 우리가 지금 강아지에게 느끼는 유대감처럼 로봇과도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특히 사랑이 복잡하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갈등의 해결과 감정 노동이 필요한 반면 로봇과의 유대감은 관계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 엑스마키나의 한 장면. ⓒ 엑스마키나

영화 엑스마키나의 한 장면. ⓒ 엑스마키나

로봇과의 사랑, 로봇 동반자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특히 섹스봇에 대해서는 청소년기의 왜곡된 성 개념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로봇전문가인 데몬포트대학 캐트린 리처드슨 박사는”섹스봇이 인간의 자연스럽고 오래된 관계형성에 해롭게 작용할 우려가 크다”며 “영국으로 섹스로봇이 수입되는 것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쉐필드대학 컴퓨터공학자인 노엘 샤키(Noel Sharkey) 교수는 “미래에 10대 청소년들이 섹스로봇에 순결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며 “이는 정상적인 남녀 관계의 형성을 저해하며 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실제로 섹스로봇에 집착할수록 수행 불안이나 애착 장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응용과학대학에서 기계 윤리를 연구하고 있는 올리버 벤델 교수는 “결혼은 자녀 출산과 양육을 포함해 상호 권리와 의무를 규제하기 위한 인간 사이의 계약”이라며 “언젠가는 로봇이 진짜 의무와 권리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다지 믿지 않는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공개적인 요구와 여론 압력으로 인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2050년 합법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사랑과 위안을 찾아나서는 인간들 

물론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랑을 그 자체로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개념을 바꿔놓을 수는 있다.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상호작용과 행위들의 실체를 하나씩 분리해내 그 중 학습 가능한 것들이 ‘로봇과의 사랑’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이미 같은 종족과의 사랑에 지쳐 다른 종류의 사랑을 찾아나서고 있다. 경제 불황과 경기 침제, 사라지는 일자리, 쳇바퀴도는 일상에 지쳐가면서 대가와 감정노동이 필요한 각종 관계들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남성 5명 중 1명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 2014년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30세 이하의 일본 성인 남성 가운데 3분의 1은 이성과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으며 16~24세 일본 여성의 45%와 남성의 25%는 성관계나 성접촉을 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성관계 자체에 흥미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이성과의 낭만적 사랑에 따른 성관계를 부담스러워하면서 기피현상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섹스봇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2050년이면 로봇과 결혼하고 동거하는 생활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corbis

지금은 섹스봇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2050년이면 로봇과 결혼하고 동거하는 생활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corbis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연애 기피, 결혼 기피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게임에 몰입하고, 전화보다는 문자와 메신저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연애와 결혼보다는 반려동물을 키우며 혼밥, 혼술로 살아가는 것이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시대, 로봇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때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냐, 아니냐는 무의미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런던시티대학의 애드리언 척 교수는 “사람들은 결혼과 사랑을 좋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인간들끼리의 사랑과 결혼은 매우 불행하기 때문에 인간과의 나쁜 결혼보다는 로봇과의 결혼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2050년에 실제 로봇과의 결혼이 현실화할지는 모르지만 로봇이 인간 동반자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사랑이 아니어도 같이 사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로봇과의 동거는 많은 잠재적인 문제를 내포한다. 결혼과 출산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유지될지, 사회적 재상산 구조는 어떤 변화를 맞을지, 로봇 동반자 시대의 가족 개념과 성윤리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심각하고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사랑만은 자신있다고 너스레를 떨 때 어쩌면 로봇은 인간이 가장 취약하고 두려워하는 부분을 파고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의 사만다나 <엑스마키나>의 에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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