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구역의 도로시(17)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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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한 직원을 비품 창고로 끌고 오는 동안 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사람을 자기 손으로 기절 시켜본 게 처음인 듯했다. 험난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도 사이보그 팔을 달기 전까지는 평범한 소녀였을 테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나는 남자의 목덜미에서 기억 칩을 분리해 냈다. 봄이 옆에서 가방을 열어 분석 장치를 꺼냈다. 제대로 작동해야 할 텐데. 칩에서 특정 기억을 찾아내는 건 기억 브로커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해본 일이었지만, 이런 비좁은 비품 창고에서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분석 장치의 전원을 켜고 가동을 기다리는 동안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남자의 머리 부근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네 팔의 그 무기, 혹시 뉴런 칩을 태우는 건가?”

“아니에요. 그냥 일시적인 충격 효과에 가깝다고 했어요.”

봄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지만 그런 다음에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는 듯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실제로는 충격을 주는 것 이상일 텐데, 아직 자신의 무기가 가진 위력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행인지 남자는 죽지 않았다.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지자 봄이 얼른 바닥에 놓여 있던 마취 총을 다나에게 건넸고, 다나는 남자의 목뒤를 겨누었다. 마취 탄환은 살상력은 없었지만 남자를 얌전히 기절시키는 데에 제 몫을 다했다.

“직접 쏘지는 못하겠어?”

“아직은……”

봄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우물쭈물 대답했다.

조악한 간이 장치로 기억을 분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초기 스캔도 세 번이나 시도한 다음에야 성공했고, 다나가 가져온 빈 기억 칩에 복제하려고 해도 계속 오류 메시지를 출력했다. 남자가 깨어나기까지, 혹은 누군가 직원의 실종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다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넣어 기억을 검색했다. 뉴런 칩, 밀항자, 기밀 임무. 간이 장치의 스캔 능력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쓸데없는 더미 데이터만 잔뜩 떠올랐다. 옆에서 봄이 초조한 듯 장치를 들여다보았다.

“넌 바깥을 잘 감시해.”

아직 복도로 접근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억 분석이라면 다나의 정비소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관리국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관리국 내부에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일단 여기를 나간 이후에는, 경비가 더 삼엄해질 것이고, 다시는 관리국 내부로 침입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특정 키워드로 기억을 검색하는 대신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어쩌면, 남자의 강한 정서 경험과 연결된 충격적인 기억을 정렬해보는 건 어떨까? 예전에 두어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몇 년간 기억 데이터베이스를 다룬 경혐이 유효했다. 사람의 강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을수록 기억의 강도 역시 높았다.

분석 장치에 명령어를 기입하자 정렬이 시작되었다. 하나씩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나는 영상의 요약본을 넘기듯 남자의 기억들을 빠른 속도로 재생했다.

가장 맨 위에 정렬된 것은 부상을 입은 경험이었다. 도망치는 밀항자를 추격하는 장면이 이어지다가 플라스마 무기를 다리에 맞았고, 그대로 다리가 타버렸다. 다나는 징그러운 다리의 단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기절한 남자의 다리를 흘끗 보니 다리 한쪽 정강이 밑 일부가 기계로 대체한 듯 울퉁불퉁해 보였다.

다나는 그 기억에서 밀항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억을 반복 재생했지만 특별한 점은 없었다.

다음 기억, 그다음 기억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남자는 스테이션으로 반입되는 불법 무기를 단속하려다 도망치는 범죄자들로부터 공격당하는 일이 잦았다. 때로는 밀항자를 체포하려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똑같은 패턴의 부상과 살인 경험이 반복되었다. 다음에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 봄이 다음 장면으로 넘기려는 다나를 제지했다.

“이거예요. 여기에…”

멈춘 장면에서 남자는 어떤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에서 기록되는 기억은 그의 손과 넘어가는 종이들을 비추었는데, 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보았던 종이를 넘겼다가 다시 돌아와서 보고, 또다시 보았다. 봄이 특정 장면에서 멈춤 버튼을 눌렀다.

“이건 제 이름이에요. 우리 행성 문자로 쓰인 것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네요.”

외국어로 쓰인 이름들의 목록이었다. 문서 맨 위에는 기밀문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리스트를 읽고 있던 남자는 뉴런 칩으로 통역된 발음을 보았겠지만, 지금 칩을 빼낸 다나에게는 낯선 문자들로만 보였다. 봄의 이름이 여기 있다면, 이것이 지금까지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나는 연관 기억을 정렬했다. 몇 개의 기억들이 연결되어 분석 장치의 모니터에 떠올랐다. 기억을 빠르게 넘겨가며 대강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누군가가 목소리로 지시하고 있었다. 관리국 직원 일부는 기밀 목록을 전달받았다. 그 목록의 사람들은 별도의 입항 절차 없이 승인을 내어주라는 지시였다. 지금 이 남자는 단지 지시를 따랐을 뿐이었다.

남자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입항 심사부서에 소속된 직원으로, 원래는 밀항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정밀 조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이 ‘리스트’를 전달받은 이후로 그의 주요 업무가 변경되었다. 그가 기밀 리스트와 대조하여 입항을 허가해 준 사람들 대부분은 봄과 같이 델프론에서 흔치 않은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 일부는 행성 이드 출신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남자의 기억 속 밀항자들의 얼굴을 지켜보던 봄이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다들 어디로 갔을까…”

그 말에 다나는 새로운 기록을 검색해보았다. 몰래 들어온 사람들은 출항 역시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남자의 기억에서는 그들이 빠져나간 기록이 없었다.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어딘가에 가둔 기록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거주 구역으로 온 것인가? 하지만 다나는 거주 구역에서 밀항자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이식한 칩이 네게 지시를 한다고 말했었나?”

“네. 지시를 따라서 스테이션에 기계를 설치했어요.”

“지시를 따른 건 네 자의였지?”

“그럴 거예요.”

봄은 확신이 없어 보였다. 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착각이야. 이건 자의를 가진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야.”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스테이션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뉴런 칩 테러, 그리고 칩의 명령을 자의라고 믿으며 따르는 사이보그 밀항자들.

델은 스테이션 17을 완전히 그들의 통제 하에 놓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연합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거주민들을 다 죽이거나 말도 안되는 쫓아내기란 쉽지 않다. 설령 점령한 이후에도 대놓고 불법 에보니움과 지하 시장을 운영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다나는 기밀 리스트와 관련된 기억을 재정렬했다. 사건의 배후와 연관된 복잡한 일들은 다나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당장 벌어질 테러를 막는 것뿐이다.

“찾았다.”

핵심 기억이 모니터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기억 속에서 어떤 전자서류를 보고 있었다. 스테이션의 구조도가 화면을 채웠다. 복잡한 지도였지만 다나는 거기에 자신의 정비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캐서린이 말했던 집들도 표시되어 있었다. 원형 마크가 일정 간격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계 장치의 영향력을 고려해 설치한 것 같았다.

그리고 설치한 기계들은 스테이션 17의 거주 구역을 거의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오직 우주항과 도킹베이만이 장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이었다.

남자의 시선이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활성화 프로토콜이었다. 손가락이 글자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나가 그 장면에서 멈춤 버튼을 눌렀다. 해상도 낮은 영상을 거쳐 정보들이 느리게 입력되기 시작했다.

‘기계 장치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그때 귀를 찢을 듯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나와 봄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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