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구역의 도로시(15)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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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션 17의 중심에 있는 우주항 도킹 베이는 거대한 무인 공장처럼 보였다. 도킹 베이를 둥글게 감싼 탑승동 가장 안쪽은 터널로 가득 차 있고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화물이나 로봇과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뻥 뚫린 우주 공간과 곧장 연결된 통로로 끊임없이 오가는 우주선들만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행성 델에서 외우주로, 혹은 외우주에서 델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우주선들이다. 일부는 관광 목적의 크루즈였다. 아마 델로 향하는 크루즈일 것이다.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일부러 우주항에 며칠쯤 정박해 행성과는 다른 분위기를 즐기려는 외부인들이 있었다.

탑승동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방문객들의 주머니를 유혹하는 가게들이 펼쳐지고, 그곳은 낯선 얼굴을 한 사람들로 북적이겠지만, 두 사람의 오늘 목적지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난 여기가 마음에 들어. 몸이 가벼워지거든.”

우주항 탑승동과 도킹 베이는 인공 중력장을 최소로만 유지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회전을 걸지 않는 중력장의 유지에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한 무중력 상태도 거주 구역의 중력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놓이곤 했다.

탑승동에 자주 오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균형을 잡기 어려울 텐데, 봄은 꽤 잘 따라 걷고 있었다. 대신 다시 불빛이 환한 곳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긴장한 기색이었다.

봄의 푸른색 피부는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처럼 로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다간 수상한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다나는 최대한 보통의 소녀처럼 보일만한 옷을 사다 입혔다. 멀끔한 모습을 한 것을 보니 몸집이 작을 뿐이지 생각했던 것만큼 어리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나는 봄에게 진짜 나이를 물으려다가, 어차피 다나 자신의 진짜 나이조차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묻지 않았다.

탑승동으로 들어서자 와글거리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공기 중의 낯선 냄새들이 우주항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섞여 이질적인 공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통제된 것 같으면서도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찬 어지러운 공간. 몇몇 사람들이 다나와 봄을 건드리며 바쁘게 어디론가 지나갔고, 그중 일부는 봄에게 흘끗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봄은 탑승동에 들어서자 흥미로워하는 듯한 시선으로 주위를 정신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델프론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봄처럼 이국적인 외모를 한 사람들도 적잖아 있었다. 봄에게 지시를 내린 이들이 누구든, 침입자들을 구할 때 굳이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이든 도움이든 절박한 사람들은 저곳 변두리 어디에나 있다.

다나는 봄의 고향에 관한 단서를 얻기 위해 혹시 봄과 닮은 외모를 한 외부인은 없는지 둘러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았다. 봄은 인파 사이를 능숙하게 헤쳐나가면서, 우주항의 구조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까지 꼼꼼히 눈에 담고 있는 듯했다. 숨기려고 했지만, 호기심과 놀라움이 표정에 언뜻 보였다.

“이곳을 이미 통과해왔다면서.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하네.”

“그때는 지시를 따르기 바빴어요.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세뇌 상태였다는 말이군.”

“아니라니까요. 분명 의식이 있었어요. 뉴런 칩에 사고와 기억을 다 맡긴 평범한 멍청이들과 저는 달라요.”

“그럼 널 도와준 직원도 아주 잘 기억하겠네.”

봄은 뭐라 항의하려는 표정을 지었다가 작게 투덜거렸다.

“그건, 일단 봐야 알 것 같아요.”

도와주겠다고 한 이후로 봄은 묘하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손한 태도라고 해도 그다지 예의 바른 건 아니지만 다나를 죽이려고 할 때의 태도보다는 나았다.

물론 지금 이건 일종의 거래에 가까웠다. 다나에게 원하는 것을 주어야, 봄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다나에게는 그냥 손쉽게 외면해버릴 수도 있는 거래였다. 봄은 빠른 눈치로 그 불균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왜?”

“이걸 해서 당신은 뭘 얻죠?”

“스테이션의 안위?”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다나와 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입항 심사장과 곧장 연결된 지역이어서 짐을 되찾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봄은 다나에게 최대한 밀착해서 걸으면서도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예요. 어차피 날 돕기 위해서는 떠나야 하잖아요. 스테이션의 안위 따위, 어떻게 되든 떠나버릴 건데, 떠날 수 있으면 그게 왜 중요하죠? 여긴 당신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못 믿겠다고?”

“의도를 모르겠다는 거죠.”

사실상 같은 말인지도 몰랐다. 다나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것과, 다나를 못 믿겠다는 말은. 거래를 제안할 때부터 봄이 의심스러워하는 것은 알았지만 다나는 굳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는 않았다.

“나도 스테이션 밖에서 찾는 것이 있어. 슬슬 직접 가볼 때가 되었지.”

“그럼 왜 하필 지금이죠? 수십 년 동안 여기 살았다면서요.”

봄이 로비 중심의 거대한 기둥에서 방향을 크게 꺾으며 말했다.

“당신은 언제든지 떠날 기회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안 떠난 거지.”

봄은 다나의 대답에 불만스레 이쪽을 흘끗 바라보았지만, 다나가 구체적인 답을 주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찾던 봄의 시선이 멈추어 섰다.

“저쪽이에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힘든 입구였다. 주위의 벽과 같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봄이 먼저 한 걸음 다가서며 다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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