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통제구역의 도로시(14)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2019.12.10 08:55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델 정부가 스테이션 17에서 유통되는 불법 자원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전쟁 이후 에보니움의 채취가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델 정부도 협약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드의 주민들이 몰래 에보니움을 채취하고, 델 정부는 그것을 묵과했다. 자원들은 스테이션 17을 거쳐 행성 델로 흘러 들어간다. 이드가 이미 오랜 착취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진 행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지 타산을 따져본 다음, 이드의 마지막 남은 자원이 바닥날 때까지 채굴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네가 받았다는 그 지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내가 받은 지시는 간단한 시술을 받고, 작은 기계 장치를 스테이션 거주 구역의 정해진 장소에 설치하라는 게 다였어.”

“간단한 시술이라면?”

“그러니까,,, 봤잖아. 내 머릿속에 연결된 기계 부분 말이야. 난 못 봤지만.”

“그래. 아주 조악하고 엉망진창이던데. 빨리 제거하는 게 좋을 거야.”

다나의 말에 봄은 불만스러운 듯 작게 투덜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 말고 어떤 사람들이 또 지시를 받았는지는 몰라. 그냥 구역을 나눠서 배당한 것까지만 알아. 그들은 나에게 변조된 목소리로만 지시했어. 뇌 시술을 하면 사람들의 눈을 쉽게 피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

“이곳에 설치한 기계 장치가 무슨 일을 할지는 몰랐다는 건가?”

“나는,,, 그게 뉴런 칩에 작용할 거라는 짐작만 했어. 그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거든. 다만 내가 받은 이 팔의 무기가 뉴런 칩을 일시적으로 교란하는 거였으니, 비슷한 기술일 거라고 생각했어.”

봄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얇은 피부밑으로 삽입되어 희미하게 비치는 기계 장치가 보였다. 아마 어제 다나에게 달려들면서 작동시킨 무기였을 것이다. 그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다나가 빅 브로큰 이전의 사람이라는 것까지 추론한 건 좀 놀랍기는 했다.

어쨌든 다나는 그런 기술을 여태 듣도 보도 못했다. 뉴런 칩을 교란할 수 있는 기술이라니. 모든 사람이 뉴런 칩을 장착하고 다니는 세상이니 잘만 사용하면 웬만한 재래식 무기보다도 파괴력이 강할 것이다. 이 스테이션에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있다고?

역시 스테이션 사람들을 다 죽이려는 걸까? 그런 것치고는 일을 꽤 귀찮고 복잡하게 만든 것 같았다.

“하다가 죽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죽여야 하는 일이라고는 전혀 짐작 못 했어. 애초에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도 말해주지 않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면 망설였을 거야.”

봄의 말에 다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는 죽일 듯이 달려들던데. 날 죽이려는 게 아니었나?”

“결국 당신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잖아.”

봄이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다나가 자신의 뺨에 남은 상처를 가리켰다. 봄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나를 노려보았다. 한참 노려본 끝에 다시 봄이 입을 열었다.

“성공하면 우리를 행성에서 데려갈 브로커를 주선해주겠다고 했어.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가족들을 다 데리고 떠날 방법이 없었으니까.”

“실패하면?”

“그런 건 계약서에 없었어.”

“실패했으니 네 가족을 죽이지 않을까?”

“아니. 내 생각에는,,, 굳이 손댈 필요도 없을 거야.”

봄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냥 놔두면 얼마 못 가 죽을 테니까. 사실 지금도 언니들이 살아 있는지 확신이 없어.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거든.”

모순적이게도, 에보니움 때문에 전쟁에 휘말린 행성을 떠나는 일은 에보니움으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연합이 엄격한 에보니움 통제를 시작한 이유는 쏟아지는 우주 난민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정식 절차를 밟거나, 혹은 불법 우주선을 운행하는 브로커를 고용해야 했다. 아마 봄이 약속받은 것은 후자의 일이겠지만, 후자 역시 거금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성공했다면 그들이 네게 약속을 지켰으리라고 생각해?”

“아마 그랬겠지. 당신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나가 말했다.

“어쨌든 한 가지 약속은 이미 어겼지.”

“뭐가?”

“네겐 그들이 약속한 신분증이 없어.”

“그렇지만,,,”

무어라고 항의하는 듯했지만, 봄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 우주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불법 루트를 통해 이동했을 테니 신분 증명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분 증명이 안 되면서 어떻게 스테이션에 들어왔지? 넌 너무 눈에 띄는 이국적인 외모를 하고 있잖아. 입항 심사가 엄격할 텐데.”

“아. 맞아. 바로 그거야.”

갑자기 의기양양한 표정이 봄의 얼굴에 떠올랐다.

“입항 심사를 하던 직원들이 날 그냥 보내줬어. 임플란트 신분 증명을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역시, 당신이 내 뇌 속에서 그걸 놓쳤거나, 아니면,,,”

봄이 말하다가 무언가 당황한 듯 말을 멈췄다.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건 다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면, 그 직원들이 한통속이었거나. 그렇지?”

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는 듯했다.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다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나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짐작 가는 바도 있었다. 누군가 이 스테이션을 노리고 있는 이상, 더는 지금까지와 같은 일상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처음 한 번을 막아내더라도 계속해서 이런 일이 이어질 것이다.

원한다면, 다나는 스테이션을 그냥 떠나버릴 수도 있다.

다나는 스테이션에 특별한 애착이 없었다. 이곳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만 필요 때문에 머물 뿐인 정거장 같은 곳이었다. 터미널을 통과할 때의 지독한 멀미가 아니었다면 다나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해 줄 다른 환경을 진작 찾아갔을지도. 어쩌면 다나는 오랫동안 이런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까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스테이션이 이런 식으로 당장 와해되는 것 역시 다나가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제안을 하나 하지.”

다나가 봄에게 말했다.

“나를 도우면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어.”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