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구역의 도로시(13)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2019.12.09 10:19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지금 소녀는 처음 대면했을 때와 비슷한 꼴을 하고 있었다. 의자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뒤로 손이 묶인 채였다. 다나의 잠옷을 입어서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했다. 다나를 기습하려다가 실패하고 뭐라 헛소리를 늘어놓는 동안 2층으로 온 로딘이 소녀를 손쉽게 제압했고, 심문을 해야 한다며 저렇게 다시 묶어둔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의 기습 실패 이후로 소녀는 어쩐지 다시 공격해 올 의사를 잃은 것 같았다. 묘하게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대체 그 회심의 무기는, 게다가 다나의 정체를 곧장 알아차리게 만든 그 장치는 뭐였을까? 굳이 묶어 둘 필요까지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다나는 로딘에게 지시해서 소녀를 서재로 데려왔다.

의자 하나를 끌어다 소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조명 아래에서 보니 이국적인 외모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델이나 이드 출신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델프론 행성계도 여러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곳이긴 했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저런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변두리 행성계에서 왔을 지도 모른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이 봄이라고 밝혔다. 본명인지 가명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나가 계속 그녀를 ‘꼬마’라고 부르자 신경질을 내며 말했을 뿐이다.

“내 이름, ‘봄’이라고. 신분증 봤으면 알잖아. 읽을 줄 몰라?”

“신분증 없던데. 목뒤는 물론이고, 뇌까지 헤집었는데도 안 나오던데.”

“…….”

그 말에 봄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내밀었다가 다시 무신경한 얼굴로 돌아왔다.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억지로 표정을 숨기려는 듯한 얼굴이었다. 다나에게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식으로 훈련받은 요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아니면, 아예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다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신분증을 칩에 넣어주겠다고 누군가 약속했나 보군. 사기당한 거야.”

“그런 게 아니야.”

단호하게 부정했지만, 봄에게서 또다시 당혹한 표정이 드러났다.

“어디서 왔지?”

“말 안 해.”

“내가 계속 모르면, 넌 죽을 텐데.”

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불거리며 털어놓으면, 난 여길 나가자마자 죽을걸.”

“안 털어놓으면 내 로봇에게 살해당하겠지.”

다나가 조용히 협박하자, 로딘이 옆에서 자신은 사람을 죽이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당신은,,, 사람을 죽일 것 같지는 않은데. 고치는 쪽이잖아.”

“물론. 내 손으로는 잘 안 죽여. 죽이는 건 내가 아니라 로딘이라니까.”

다나의 말에 로딘이 다시 구시렁댔다. 다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 진짜 나이를 알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봄은 그 말에 물끄러미 다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순순히 털어놓으면, 당신이 대체 어떻게 빅 브로큰 이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지 말해줄거야? 난 지금 유령과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엄청 궁금하거든.”

다나는 의자 뒤쪽으로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이 꼬마는 슬슬 자신이 받은 미션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어느 쪽에 붙는 것이 유리한지를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십 대 소녀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흔쾌히 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

“내가 왜?”

“…….”

다나의 예상대로 봄은 변두리 행성에서 왔다. 델프론까지 오려면 열 번도 넘게 터미널을 통과해야 하는 곳, 그래서 대부분은 오는 과정에서 진저리가 나 포기하게 될 만큼 먼 곳에서. 다나는 은하계 전역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먼 곳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초광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우주에서도 사람의 시야는 자신이 갈 수 있는 반경으로 제한되기 마련이었다. 행성 연합이 생겨나며 중심에 가까운 인간 거주지에는 표면적인 평화가 찾아왔지만, 중심에서 밀려난 곳에서는 여전히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다.

봄은 자신이 있던 행성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나는 대충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변두리까지 가지 않아도 에보니움 때문에 전쟁에 휘말린 행성은 흔했다. 당장 인간이 제대로 살기도 힘든 환경이 되어버린 행성 이드만 보아도 그랬다. 에보니움 채굴은 행성 환경을 바꿔 버린다. 오랜 채굴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행성까지 착취했다. 사람들을 우주 곳곳으로 보내기 위해 행성 하나씩을 불태워 연료로 쓰고 있는 셈이었다.

(1804)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