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구역의 도로시(12)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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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세 시에도 다나는 서재에서 기억 칩을 분석하느라 깨어있었다. 물론 예전부터 해왔던 다나의 추적 대상을 찾는 일도 겸사겸사 같이 진행 중이었지만, 지금은 신경이 완전히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혹시 수집한 정보 중에서 이번의 수상한 사건이나 스테이션을 위협하는 세력들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전까지 진행했던 다나의 개인적인 추적은 현재로서는 딱히 위험한 일과 관련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다나의 취미에 가깝지만, 지금처럼 스테이션에 직접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 건 곤란했다.

다나가 딱히 스테이션에 애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동안 거쳐왔던 많은 정착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곳의 무례하고 무신경한, 대체로 나이를 먹은 주민들은 이제 지긋지긋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기가 망하면 또 정착할 곳을 찾기 위해 우주를 떠돌아야 한다. 다나는 다시는 터미널 드라이브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할 때마다 멀미와 구토를 피할 수가 없었다.

기억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오늘 밤도 특별히 얻은 것은 없었다. 워낙 막대한 정보량이어서 처음부터 뭘 기대한 건 아니었다. 원래도 기억 추적은 차근차근 오랜 시간을 살펴보아야 단서를 하나 얻을까 말까 였다.

그때 다나는 서재 밖에서 또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추적이 쉬웠다. 서재 밖으로 나가보니 1층으로 내려가는 문을 열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환자복이 따로 없어 이브에게 빌려온 너덜한 잠옷 하나를 입혀두었는데, 땡땡이 잠옷을 입은 모습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우스웠다.

게다가 열흘 동안 기절해있다가 방금 일어났으니 몸이 멀쩡할 리도 없다. 그 꼴이 되고도 몰래 도망치려고 하다니, 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녀석인가. 진작 창문을 다 밀폐하고 파손 방지 장치를 달아둔 것이 다행이었다.

소녀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다나를 발견했다. 곧 상황을 파악한 소녀의 얼굴에 체념이 떠올랐다. 문은 열리지 않고, 도망칠 곳도 없었다. 다나가 픽 웃으며 물었다.

“어딜 가?”

“…….”

“꼬맹아. 그냥 가는 게 어딨어.”

“…….”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한 건지는 털어놓고 가야지.”

무기는 당연히 뇌 시술을 할 때 모두 뺏었다. 그렇지만 소녀는 양 주먹을 들어 올려 경계 태세를 취했다. 당장 빈손으로라도 다나를 후려갈길 듯한 태도였다. 팔을 절개해 볼 생각을 못 해서 그간은 몰랐던 것이지만, 지금 보아하니 조악한 사이보그 시술이 팔에도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나이에 시술을 덕지덕지 한 걸까?

다나는 뉴런 칩을 통해 로딘을 호출했다. 총이 있으니 혼자서도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귀중한 정보원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얌전히 포기하면 살려 보내줄 수도 있어. 궁금한 게 많거든.”

소녀가 다나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나는 옆으로 몸을 꺾었다. 위력은 약했지만 아주 날렵했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뺨을 스쳐 가는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각한 통증은 아니었다. 몸을 던지다시피 한 소녀는 이제 다나를 지나쳐 복도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소녀는 씩씩거리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 하나를 짚고 있었다. 마치 다나에게 무언가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였다.

다나는 소녀가 무슨 행동을 할지 기다렸다. 짧은 침묵이 흘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얼떨떨한 듯이 입을 먼저 연 것은 소녀였다. 당황스러운 건 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번 더 맹랑하게 달려든다면 다리를 쏘아버리려고 했는데, 왜 죽일 듯이 살기를 품고 뛰어들어서는 뺨만 갈기고 저런 태도란 말인가.

“이거, 혹시 불량인가?”

소녀가 중얼거렸다. 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되었다. 다나에게 달려드는 순간 무언가 팔에 숨겨두었던 장치를 작동시킨 것 같았는데, 그게 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잠깐만.”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대체 얼마나 나이를 먹은 거야? 말이 돼? 그럼 한 400살쯤 된 건가?”

너무나 무례한 태도에 잠시 다나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소녀가 단번에 다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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