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구역의 도로시(7)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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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드라이브와 초광속 항행의 부작용은 터미널의 발견 이후에도 한동안 인류를 태양계에 붙잡아 둘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인류가 ‘빅 브로큰’ 이후 원치 않게 지구를 떠나게 되면서, 인간은 스스로 새로운 종이 되기를 선택했다. 우주 개발 시대의 이동과 정착에 걸맞은 개조 유전자 블록들이 등장했고 그렇게 개량된 인간이 또다시 개량된 후대를 만들었다. 각자 다른 행성에 정착한 그룹들이 상호 교배조차 줄곧 실패할 만큼 상이한 유전자를 갖게 되자, 비로소 연합 전역에서 유전자 개량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인류는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속도의 진화를 경험한 셈이었다.

검증 없는 개량의 결과로 사람들은 지구에 살던 시절에 비해 기억력 감퇴와 뉴런 응축 현상을 자주 겪었다. 그러나 빅 브로큰 이후의 지배적인 사상은 ‘기술로 등장한 부작용은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곧이어 뇌를 보조하는 뉴런 칩이 등장했고, 보편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다나가 정보 브로커로 쏠쏠하게 기억 지도를 사들이는 일이 가능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뉴런 칩 시술을 한다. 행성 델에서 행성계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필요 없는 귀족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뉴런 칩은 두피와 두개골 인근의 신경 말단까지 통제하므로, 두통을 겪지 않는 것은 칩의 사소한 부작용 중 하나였다.

다나는 그 이상한 현상에 대해 캐묻고 싶었지만, 유미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뭐, 그런 말들이 있긴 했는데. 그냥 기분 탓일 수도 있죠. 뉴런 칩이 사소한 신경성 통증은 잘 억제한다지만, 기분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아마 유미는 이 사건 자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유미와의 대화는 큰 소득은 없었지만, 특별 레시피로 제조된 술은 맛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때요? 다나가 말 걸면 엄청 반가워할 텐데.”

유미가 주점 뒤편의 유난히 왁자지껄한 테이블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가장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중년 남자들 사이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다나는 별로 좋아하는 그룹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유용한 정보를 얻을지도 모른다. 다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시야 한쪽을 붉은 메시지가 가리며 깜빡거렸다.

[침입 경보]

이어지는 것은 로딘의 목소리였다.

[침입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문을 개방할까요? 처분? 생포?]

다나는 몇 모금 남은 술잔을 바에 내려놓았다. 의아한 유미의 눈빛이 다나를 향했다. 다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만 로딘에게 지시했다.

[내부로 유인한 다음 생포해. 내 말 잊었어?]

[알겠습니다.]

다나는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별말 없이 떠나는 다나의 뒷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것 같았다. 술에 대체 무엇을 넣은 건지, 잘 취하지 않는 편인데도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유미는 캐서린을 신뢰하지 말라고 했지만, 유미 역시 전적으로 믿을 수만은 없다. 어쨌든 이제 그 도둑의 얼굴을 볼 때였다.

로딘이 정비소 가운데에 묶어 놓은 것은 커다란 로브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아이였다. 도망칠 수 없도록 손목과 발목을 의자에 단단히 결박했는데, 소녀의 작은 몸집은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아 다소 과한 처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로딘이 생포를 위해 마취 탄을 사용했는지 축 늘어졌고 숨은 쉬고 있었다. 약간 푸른빛을 띠는 피부색으로 보아 델 출신은 아니었다. 꽤 먼 외지 출신 같았다.

소녀의 이국적인 외모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울룩불룩 밖으로 튀어나온 흔적이 있는 로브였다. 로브는 회색에 얼룩이 잔뜩 묻어있고, 소녀의 키에 비해서 지나치게 컸다. 소녀를 거의 쓰레기봉투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다나는 무심코 로브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다가, 몇 걸음 물러나 로딘을 불렀다.

“로딘. 저 겉옷을 걷어내 봐.”

로딘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 기계 팔을 길게 확장해 로브를 들어 올렸다. 안쪽에서 단단히 끈으로 묶여 있어 곧장 걷히지는 않았다. 로딘의 기계 팔에서 나이프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자 마취되었을 것이 분명한 소녀가 순간 꿈틀거렸고, 로딘의 팔이 멈칫했다. 그러나 소녀는 다시 늘어졌다.

로딘은 로브를 고정하고 있던 끈을 칼로 잘라냈다. 넝마 같은 천이 의자 위로 흘러내렸고, 동시에 무언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요란한 금속성의 소리가 났다. 다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언뜻 날카로운 것처럼 보이는 작은 금속 제품들. 다나는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것들은 무기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고치거나 개조하거나 설치할 때 쓰는 장비들이었다. 즉, 소녀가 로브 안쪽에 숨기고 있던 것들은 살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출장 정비를 나온 수리공의 장비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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