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구역의 도로시 (19)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상점들은 복잡한 미로처럼 놓여 있었다. 지하 구조를 잘 안다고 기세 좋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말한 만큼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다나는 누군가 이미 위에서 지하로 내려왔던 흔적을 찾아냈다. 모두가 바깥으로 빠져나간 와중에 반대로 출구에서 먼 쪽으로 걸어간 흔적이 있었다. 그쪽 방향은 다나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금고의 위치와도 같았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접근하자 화물들이 지하 천장까지 쌓인 창고가 나타났다. 이 창고의 끝은 경매장으로 연결되고 그 부근에는 경매에 내놓을 물품들을 임시로 보관하는 보관실이 있다

ⓒ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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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와 봄은 계속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어디서든 로봇이 튀어나올 수 있었다. 창고는 온갖 화물 컨테이너와 테이블, 운반 장치가 난잡하게 흩어져 있어 몸을 숨기며 이동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순간 드르륵 소리가 났다. 다나가 다급히 봄을 잡아끌어 몸을 숨겼다. 구석에서 갑자기 보안 로봇 세 대가 줄지어 걸어 나왔다. 미끄러지다시피 등장한 로봇들 뒤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나는 지하로 내려온 사람들을 살폈다.

“정말 여기로 오라고 한 거 맞아? 지시를 잘못 들은 거 아니고?”

“맞아.”

“이 퀴퀴한 지하에?”

“조용히 해. 침입자가 있을 지도 몰라.”

그들은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의 기척에 곧 소리를 줄였다. 다나는 그들이 내려온 곳이 지상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또 다른 입구라는 걸 알았다. 아까 다나가 들어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닫혀 있어 들어올 수 없던 문이었다. 그들은 이곳의 통로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 분명했다.

내려온 사람은 여섯 명이었는데, 네 명은 우주항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밀항자들. 먼 행성에서 온 이질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 혹시 델이 개조인간들을 직접 투입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러나 방금 전의 대화로 짐작해보건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지금 이것이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제 역할을 하는 게 맞나? 나보다도 허약해 보이는데.”

남자 한 명이 또다시 투덜거렸다. 밀항자 두 명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움직이는 그들을 지켜보던 다나는 그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캐서린이었다. 캐서린은 지금까지 굳은 얼굴로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고, 지금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척 혼란스러운 듯했다.

컨테이너 뒤에 숨어 있던 다나가 봄에게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지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활성화 장치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설령 그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찾는지 모른다 해도, 밀항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다. 조금 전 확인했듯이 개조된 뉴런 칩은 밀항자들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니까.

그들은 스테이션 거주민들의 뉴런 칩을 리셋할 생각인 것이다.

밀항자들 중에는 봄과 같은 행성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도 한 명 보였다. 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나를 향해 무언가 원하는 듯한 눈짓을 보냈지만, 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구할 수는 없다. 봄에게서 칩을 분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가까웠다. 하필 봄이 다나의 집에 침입하지 않았더라면, 봄도 지금 저 자리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저 사람들은 다나가 구할 수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아마 관리국에서도 이 사건의 배후를 아는 직원은 소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자칫 수틀리면 밀항자들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오직 일부만이 자세한 상황을 아는 게 나을 테니까.

로봇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주의하며, 그리고 지상에서 온 무리와 약간 거리를 벌린 채 그들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예상보다도 안쪽까지 들어가야 했다. 여기에 출구가 있을까? 봄은 긴장한 얼굴이 역력했고, 다나는 애써 침착하게 굴었지만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없는 것은 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만큼 살았으니 목숨이 아깝지는 않으나, 봄을 데리고 온 게 잘못된 선택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지나가는 동안 문들은 모두 열려 있었는데 관리국에서 탈출 경보를 작동시킨 탓에 자동으로 열린 듯했다. 그러나 물건들을 보관하는 높은 창살은 모두 자물쇠로 직접 잠겨 있었다. 열쇠가 없다면 결코 열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 뭘 찾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캐서린의 목소리였다.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밀항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침입자들이 노리고 있는 중요한 장치. 그 밖에는 우리가 알 필요는 없어.”

짧은 대화를 통해 다나는 이제 캐서린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이 다나를 묘하게 안심시켰고, 동시에 조금 슬픈 기분도 들게 했다. 개인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그가 속한 집단 때문에 적대하게 되는 일은 다나가 젊은 시절에 얼마든지 겪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살상 무기를 여기에 가져오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인 일일까. 캐서린을 다나의 손으로 죽일 일은 없을 테니.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이제 밀항자들이 완전히 앞서 걸어갔고,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마침내 경매장 안쪽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보안 로봇들이 계속 돌아다니며 소음을 냈고, 다나와 봄은 최대한 보안 로봇들의 규칙적인 소음에 맞추어 소리를 죽인 채로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어떤 금고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금고는 다른 거대한 보관함들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크기였다. 통째로 가져갈 수는 없게끔 벽 안에 매몰되어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막을게요.’

봄이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그러나 다나는 뛰쳐나가려는 자세를 취하는 봄을 팔로 가로막았다. 미세한 움직임에 다나의 뜻을 깨달은 봄이 의아한 눈빛으로 다나를 보았다. 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신호를 할 때까지.’

다음 순간에는 봄도 계획을 이해했는지, 얌전히 다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들이 금고를 열 때까지는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보안 장치는 무척 복잡하다. 다나가 직접 금고를 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 전에 직원들을 처리하면 활성화 장치를 완전히 파괴할 기회를 잃는다.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 열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러 겹의 보안이 되어 있는 금고는 여는 데에만도 시간이 걸렸다. 철컥거리며 잠금 장치가 움직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 끔찍하게도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지막 열쇠를 끼워 맞추기 전에, 잠금 장치를 돌리던 직원의 손이 멈췄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밀항자가 직원의 손을 멈추게 한 것 같았다.

다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밀항자들이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어떤 짧은 신호가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시간이 촉박하다고 들었는데요.”

밀항자 중 한 명이 직원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다나는 빠르게 사람의 수를 헤아렸다. 세 명이 금고 바로 앞에, 두 명이 경계 태세를 취한 상태이고, 나머지 한 명은…

“침입자가 있군.”

다나가 미처 마취 총을 꺼내들기도 전에 누군가 다나를 뒤에서 찍어 눌렀다. 직전까지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뉴런 칩을 빼내서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다. 고통이 밀려들었다. 다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과감한데.”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다른 직원들의 시선도 다나와 봄을 향했다.

“간단한 임무조차 해결하지 못한 배신자도 있네요.”

밀항자 한 명이 말했다. 봄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주보니 유니폼을 입은 나머지 직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일부는 아는 얼굴이었고, 일부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무기를 든 긴장된 얼굴 사이에는 함께 차를 자주 마셨던 얼굴도 끼어 있었다. 캐서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총을 천천히 돌렸다. 하지만 다나가 아닌 봄을 겨누고 있었다.

다나는 바닥으로 떨어진 마취 총을 주워들기 위해 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을 감수하며 팔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직원이 다나의 팔을 더 세게 짓밟았다. 애초에 살상 무기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아니면 더 철저한 대비를…. 캐서린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었다니. 지금 후회해보아도 소용없었다.

그때 폭탄이 터지는 폭발음이 났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다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위력이 큰 폭발이 아니었다. 폭발 자체는 살상력이 없었다. 곧 실내가 연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콜록이며 기침을 했다. 시야가 거의 가려져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실수로 연기탄을 터뜨린 것일까?

봄이 기어서 다나에게로 접근했다. 신발을 벗어 내던진 것 같았다. 다나는 아주 가까이 있는 봄의 얼굴만을 겨우 볼 수 있었다. 보안로봇들이 작동 오류를 내는지 직원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다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금고의 마지막 잠금장치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 기회를 노려야 한다.

“지금이야!”

다나가 신호를 보내며 앞서 나갔고 봄이 무기를 꺼낸 채 뒤따랐다. 다나는 바닥으로 몸을 던져 마취 총을 주워들었다. 다치더라도 봄이 금고에 도달하도록 길을 틀 생각이었다. 탄환 하나가 다나를 비껴 지나갔다. 누군가 뛰어가는 봄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방금 금고를 연 직원이 품에 활성화 장치를 안고 있었다. 다나는 마취 탄환을 낮은 위치로 쏘았다. 직원의 다리가 고꾸라졌고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다나는 장치 하나를 봄에게로 던졌다. 아직 직원이 손에 두 개를 꽉 쥐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아 오는 보안로봇과 사람들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두 번째 연기탄이 터졌다.

다나는 지금 이 상황을 파악할 것도 없이 마지막 마취 탄을 직원의 팔을 향해 쏘았다. 그리고 몸을 던져 두 번째 기계를 뺏었다. 다나의 혼자 힘으로는 덩치 있는 남자의 손을 붙잡기 어려웠지만, 어느새 다가온 봄이 직원의 팔꿈치를 힘껏 찍어 눌렀다. 봄이 기계를 가까스로 빼앗아 품에 안았을 때 누군가 다나의 어깨를 홱 돌렸다.

“이쪽이에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유미였다.

“아직 안 끝났어. 저걸 뺏어야 해.”

“이미 늦었어요.”

다나는 아직 혼란 중에 있는 봄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유미가 세 번째 연기탄을 작동시켰다. 전혀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지하창고 속에서 어깨에 닿는 손과 목소리만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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