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 융합의 선구자를 만나다

백남준 개인전, 학고재 갤러리서 열려

학고재갤러리에서  백남준의 ‘W3’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3월 15일까지 진행될 이번 전시회는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선구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융합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 수 십 년 전 선구자들이 어떻게 기술과 예술을 융합해갔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www’를 예측한 작품 ‘W3’

이번 전시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W3, 1963년도 싱글채널비디오 작품, 비디오조각’ 등이 그것이다. 전시 제목인 ‘W3’는 미래 미디어 환경을 예측한 작가의 이상적 아이디어가 실현된 그의 대표작이다. 이미 1974년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란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현대사회의 웹문화와 대중매체를 예견했다. 이번 작품도 그의 예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총 64개 모니터가 ’x‘자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각각의 모니터는 전체 재생 시간 20분가량의 영상이 일초 간격으로 옆 모니터에 전달된다. 전체 화면이 연속적 동작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총 64개 모니터가 ’x‘자 형상을 하고 있다. ⓒ 학고재갤러리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총 64개 모니터가 ’x‘자 형상을 하고 있다. ⓒ 학고재갤러리

 

비디오아트의 초기작 선 보여

‘1963년도 싱글채널비디오’ 부분에서는 5개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백남준은 독일 파르나스갤러리에서 1963년 생애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전(展)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의 영역은 한정적이었다. 정보전달하는 매체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백남준은 이 텔레비전을 대담하게 예술품으로 변모시켜 세상에 공개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5개 작품도 그 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디오아트의 아주 초기작이기도 한 이 작품들은 그래서 그 의미와 중요성이 크다. 물론 이후 작가의 감독 하에 1995년 비디오플레이어, CD플레이어 사용 등의 기술적 부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기는 했다.

‘두개의 TV 세트에 음파 입력’은 한 개의 TV 위에 다른 TV가 올려 놓인 작품이다. 그리고 각각의 TV모니터는 음악이 나오는 서로 다른DVD플레어와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관람객들은 그 음악을 들을 수 없지만 그 전파를 수신한 TV는 전파파동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래 TV는 가로로 위에 있는 TV는 세로로 말이다. 그야말로 소리가 어떤 모양을 만드는지를 시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평 달걀 구르기 TV’와 ’수직 구르기 TV’는 전파가 하나는 수평으로 하나는 수직으로 흐르는 작품으로 다소 철학적이다. 그중 ‘수평 달걀 구르기 TV’ 모니터에서는 태아처럼 웅크려 있는 나체의 여인의 모습이 마치 달걀 속 노른자와도 닮고 엄마 뱃속의 태아와도 비슷하다. TV 밑에 있는 송신기로 강약을 조절하면 그 전파에 의해 달걀의 모습이 가로로 지직 거리며 왜곡된다. 비뚤 비뚤 자른 종이 끝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달걀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 ’수직 구르기 TV’는 원통모형이 돌아가면서 그 모형에 투영된 영상을 보여준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이 원통모형대로 도는데, 전파가 이번에는 세로로 흘러 영상을 왜곡시킨다. 작가는 화면의 깊이와 시간을 조작하여 ‘추상적인 시간’에 대해 묻고 있다.

‘수평 달걀 구르기 TV' 모니터에서는 태아처럼 웅크려 있는 나체의 여인의 모습이 마치 달걀 속 노른자와도 닮고 엄마 뱃속의 태아와도 비슷하다.

‘수평 달걀 구르기 TV’ 모니터에서는 태아처럼 웅크려 있는 나체의 여인의 모습이 마치 달걀 속 노른자와도 닮고 엄마 뱃속의 태아와도 비슷하다. ⓒ 학고재갤러리

이외에도 기억의 잔상효과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인 ‘흰 잔재에 대한 발판 스위치 실험’과 교류 신호 전압의 시간적 변화를 브라운관에 비추는 진동 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기록 또는 표시하는 장치인 ‘오실로스코프 TV’가 있다.

기술이 여는 미래 희망을 담아낸 로봇작품들

백남준은 자신의 작품과 삶에 영향을 끼친 여러 방면의 인물들을 로봇작품으로 제작하여 오마주했는데, ‘비디오 조각’ 파트에서 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샬롯’은  아방가르드 첼리스트 샬롯 무어에 대한 오마주이다. 뉴욕으로 활동을 넓힌 백남준은 샬롯 무어를 만나면서 오디오, 비디오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합한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샬롯 무어는 암 환자였는데도 불구하고 투병 고통 속에서 모르핀을 투여 받으면 퍼포먼스를 행하기도 했다. 작가는 그 모습이 ‘마치 신들린 무당의 굿판 같았다.’고 소회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 가운데에는 인간 얼굴의 형상인 듯한 첼로가 세워져 있고, 11개의 모니터 화면에서는 샬롯의 퍼포먼스 장면이 재생된다. 원색 계열의 화려한 전선들은 무당이 제의식때 입는 의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제례 행사에 나온 추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은  아방가르드 첼리스트 샬롯 무어에 대한 오마주이다.  ⓒ 학고재갤러리

‘샬롯’은 아방가르드 첼리스트 샬롯 무어에 대한 오마주이다. ⓒ 학고재갤러리

톨스토이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도 있다. 바로 ‘톨스토이’이다. 언뜻 허수아비 형상을 한 로봇처럼 보인다. 신사 모자를 쓰고 얼굴 부분에게 시계가 설치되어 있으며 가슴에는 모니터가 있다. 말년에 장자와 노자의 도가에 관심이 많았던 톨스토이. 선불교와 도교와 같은 동양철학을 흡수하면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던 백남준. 이 작품에서 동양적 느낌이 나는 이유이다.

‘테크노보이Ⅱ’는 익살스럽다. 버려진 라디오, 트랜지스터, 카메라와 모니터를 융합해 만든 이 작품은 해학적이기까지 해 관람객들에게 미소 짓게 하기도 한다. 기계를 의인화 시킨 이 작품을 통해 로봇이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은 은은한 조명과 오래된 카펫위에 위치한 카메라 로봇(시간 기록 장치), 액자(시간 기록 현상물 보관 장치)와 작가의 기록영상(시간 변환 장치)들을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환기 시키는 도구들이자 당시의 감정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들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유롭게 뒤섞인 시간 여행, 즉 노스탤지어 여행을 권유하고 있다.

사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은 백남준이 1992년도에 쓴 글의 제목이다. 작가는 “노스탤지어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단순히 기억을 환기하는 행위나 느낌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타인이 우리에게 주는 피드백 못지않은, 혹은 그 피드백보다 훨씬 큰 (제곱근의)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의 머리글에 ”1950년 이전의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공간을 발견했다면 1960년 이후 비디오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시간을 발견했다.”고 말하며 “비디오는 일직선으로 나가는 시간의 화살을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 있고, 방향을 뒤바꾸고 뒤집을 수 있으며, 그 흐름을 휘게 하거나 비틀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작품은 바로 이런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은 은은한 조명과 오래된 카펫위에 위치한 카메라 로봇(시간 기록 장치), 액자(시간 기록 현상물 보관 장치)와 작가의 기록영상(시간 변환 장치)들을 구성되어 있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은 은은한 조명과 오래된 카펫위에 위치한 카메라 로봇(시간 기록 장치), 액자(시간 기록 현상물 보관 장치)와 작가의 기록영상(시간 변환 장치)들을 구성되어 있다. ⓒ 학고재갤러리

그밖에도 원양어선에서 석유를 사용하여 불을 밝히던 램프 안에 조그마한 텔레비전을 넣은 ‘램프’가 있다. 이 작품은 비디오 아트를 통하여 기술이 환하게 미래를 밝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기술과 미디어가 인간의 미래를 환하게 밝힐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불교의 선 사상을 담은 ‘금붕어를 위한 소나티네’는 1960년대 텔레비전 수상기의 내부 회로를 모두 비워내고 이것을 금붕어의 사적 공간인 어항으로 변화시켰는데, 관람객들이 이 작품을 보면 차분해지면서 명상의 효과를 느끼게 된다.

(8115)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